“떠도는 영혼 쉴곳이라도”…10월항쟁 72주기 합동위령제 열려

지난해 발의된 진상규명·명예회복 법안 국회 행안위에서 계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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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쉴 곳이라도 마련해주십시오” 4월 5일 오전 11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댐 수변전망대 앞에 마련된 제사상을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채영희(71) 10월항쟁유족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같은 곳에서 위령탑을 마련해 희생자를 한곳에 모시고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기대가 또, 무너졌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법안’이 발의됐지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1946년 대구경북 일대에서 미군정에 저항한 10월항쟁, 그리고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 국가로부터 피해를 입었지만, 이승만·박정희 정부는 국가에 의한 학살을 외면했고, 오히려 ‘빨갱이 자식’이라는 오명을 안겼다. 제삿날도 몰랐고, 대규모 학살이 이뤄졌다는 가창골(가창댐 준공 이후 수몰)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이 나고서야 가창골에 모였다. 2009년부터 매년 7월 31일 합동위령제를 지냈고, 올해부터는 억울한 넋들을 기리기 좋다는 한식(양력 4월 5일 또는 6일에 해당)에 맞춰 제를 모시기로 했다.

이틀 전 제주 4.3 70주기 추념식이 대규모로 열렸던 터라 이날 ‘10월항쟁 72주기 민간인 희생자 68주기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희생자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했다.

▲10월항쟁 72주기, 민간인희생자 68주기 합동위령제

이날 위령제에는 10월항쟁유족회와 더불어 강병현 한국전쟁유족회장, 이중흥 제주4.3행불인유족협의회장, 양성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 전재경 대구시 자치행정국장, 김혜정 대구시의원, 문규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또, 이상식, 임대윤 대구시장 예비후보, 남칠우 수성구청장 후보 등 더불어민주당 출마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희생자 추모와 더불어 “특별법 제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은 “위령제는 돌아가신 어버이들의 영혼과 살아있는 자식 간의 교류이자 잊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이라며 “다음해에는 유택을 마련하여 편안히 모실 수 있도록 또 한번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채영희 회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대구시는 위령탑 세울 부지를 물색 중에 있으며 우리 유족들에게 희망적인 약속을 해주셨다”며 “여기 같이 모이신 분들이 10월 항쟁을 잊지 말아 달라. 46년 10월 항쟁의 역사를 밝혀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말했다.

전재경 대구시 자치행정국장은 김승수 행정부시장(시장 권한대행)의 추도사를 대독했다. 김승수 부시장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발생한 10월 항쟁을 비롯하여 1949년 6월 국민보도연맹사건, 1950년 7월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은 국가 폭력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한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이었다”며 “이제라도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국가 권력이 정의롭고 정당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도사를 보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월항쟁이 그때를 살아가던 대중적 요구로 발생한 아픈 역사이며 다양한 계층, 계급이 참여한 자발적이고 성숙한 국민지성과 열기를 담은 역사임을 기억하고 새겨야할 것”이라며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명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10월항쟁은 미군정의 식량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된 국민저항권적 성격의 항쟁이었고, 어떤 정치세력의 일방적인 리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중행동이었다. 식량문제, 토지문제, 친일경찰문제였다”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10월항쟁진샹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10월항쟁 72주기, 민간인희생자 68주기 합동위령제 참가자들이 추모식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0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10.1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2009년 대구사건관련자 및 대구보도연맹관련자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또, 2016년 7월 27일 ‘10월 항쟁 및 민간인 희생과 위령 사업 등에 관한 조례’가 대구시의회에서 통과했다. 이후 위령탑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장소 선정과 관련해 달성군·가창면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까지 미뤄지고 있다.

2017년 3월 9일 이개호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의원 11명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기본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