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된 딸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었다. 유치원과 달리 ‘지각’과 ‘숙제’가 있는 학교. 지각을 면하려 부스스 졸린 눈을 비비며 잠도 덜 깬 채로 아침밥을 밀어 넣고 책가방과 신주머니, 준비물을 챙겨 누구보다 제일 먼저 집을 나섰다.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까지 마치고 태권도학원, 미술학원 뺑뺑이를 돌고 집에 오면 또 숙제를 해야 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또박또박 따라 쓰고 학교에서 빌린 책을 읽었다. 피곤한지 잠자리에 누우면 곯아떨어지기 바빴다. 선택과 책임이 분명한 학교는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배워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많았다.
그래도 몇 달 전과 달리 의젓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스스로 뭔가를 하려 했고, 잘 하려 애를 썼다. 마치 ‘나도 이제 애 아니거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쁘고 신나는 학교, 학교에서 공개수업을 한다고 했다. 분위기는 어떤지, 적응은 잘 하는지, 뭘 배우고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공개수업 몇 일 전부터 참 설렜다. 연예인 보러 가는 ‘공개방송’보다 딸 아이 ‘공개수업’이 더 기대됐다.
공개수업 당일, 한껏 꾸민 엄마들이 늦을세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요즘 유행한다는 바바리 자켓을 많이 입고 나왔다. 우리 아내도 마찬가지다. 간간이 아빠들도 보인다. 다행이다. 교실 뒤편에 슬그머니 서니 딸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부끄러운 듯 반가운 듯 묘한 웃음을 짓는다.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묘한 순간이다. 교실은 아이들이 그린 그림, 직접 만든 가족소개, 키우는 화분으로 정성과 온기가 가득하다.
힘차게 동요를 같이 부르고 수업을 시작했다. 공개수업은 주제는 ‘나 소개하기’. 이름, 나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등을 짝꿍, 모둠, 전체가 같이 이야기하고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했던 우리 때와는 달랐다. 아이의 표정 하나, 행동 하나를 살피며 내가 수업에 집중했다. 물론 가끔 사진도 찍어가면서.
그런데 어디선가 계속 ‘쿵’, ‘쿵’ 방아 찧는 소리가 난다. 한 남자아이가 계속해서 의자를 까딱까딱하면서 바닥을 찍고 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고 장난을 쳤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이의 방아 찧기는 계속됐고, 아예 드러누울 듯한 기세로 점점 더 의자를 기울인다. 의자가 넘어갈 것 같아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수업에 방해되는 아이의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 이제는 우리 아이보다 그 아이를 더 관심 있게 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개수업 ‘요주의 인물’이다.
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그 아이를 부르며 타일렀지만,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공개수업에 참여한 모든 엄마·아빠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켰을 것이 틀림없다. 그 뒤에는 굳은 표정의 엄마·아빠가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일까? ‘아이고, 저 속은 또 어떨까’하고 부모의 표정을 살피다가 아이를 쳐다보다가 내가 다 긴장이 된다.
마지막으로 엄마·아빠에게 와서 자신을 소개하고 준비한 색종이 목걸이(학교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하나가 있다면 돌돌 말은 색종이 목걸이가 아닐까 싶다)를 걸어주고 칭찬 스티커를 받는 시간이었다. 모두 으쓱하며 반가운 엄마·아빠에게 향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아까 그 아이는 선생님에게 간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스티커를 받는다. 갑자기 마음이 뭉클했다. 아뿔싸, 엄마·아빠가 안 왔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뒤에 굳은 표정의 엄마·아빠는 그 아이 짝꿍의 부모였다. 그제야 왜 그리 시종일관 근심 가득한 표정일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증도 풀렸다.
다른 아이들이 어깨를 으쓱이며 반가운 해후를 보내고 있을 때도 그 아이는 여전히 혼자였다. 당연히 계속 장난을 치면서 말이다. 반에서 유일하게 엄마·아빠가 참여하지 못한 아이. 엄마를 많이 기다렸겠지? 얼마나 친구들이 부러울까? 상실감과 슬픔이 전해졌다. 그 감정을 온전히 짓궂은 장난과 행동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삐딱하게 쳐다봤던 ‘요주의 인물’에 대한 나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었다. 사정을 알고 나니 비로소 그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고,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부모의 말과 행동, 사랑과 관심에 따라 아이의 감정과 행동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나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내가 나쁘게 볼뿐이다. 제대로 보고 싶다면 편견을 지워야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두운 곳을 지날 때는 선글라스를 벗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