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부터 온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어딘가에서 봤는데,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뚜렷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방안이 엉망이 됐다. 어디 뒀더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저녁 늦게 사무실도 찾았다. 없었다. 어딨냐, 기자증.
바로 내일, 19일 대구시의회는 ‘대구시 자치구·군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마련한 기초의회 4인 선거구를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갤 공산이 컸다. 시의회는 19일을 앞두고 공성전을 준비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문은 굳게 걸어잠그고, 경계가 삼엄해졌다.
시의회는 지난 15일부터 태세를 갖췄다. 이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과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4인 선거구 지키기를 선언했다. 정의당 대구시당은 시의회 입구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입구에 들어서며 청경에게 가볍게 목례하며 출입하던 시의회가 이날부터 문을 걸어 잠갔다. 청경 둘, 셋이 입구를 지키며 신원을 확인했다.
같은 날 단식 농성을 시작한 장태수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 김성년 부위원장과 인터뷰했다. 잠시 쉬는 동안 화장실을 쓰려고 시의회로 들어가려다 가벼운 제지를 당했다. “어디 가십니까?”, “화장실 가요. 화장실” 좀 전까지 바로 옆에서 두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사진찍는 걸 지켜봤던 그들이지만, 인터뷰는 인터뷰, 출입은 출입이었다. “당일날 기자증 없으면 출입 안 될 거라고, 어떤 기자한테 이야기하던데요” 장태수 위원장이 귀띔했다.
바야흐로 결전의 날, 시의회는 더 강하게 출입을 통제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시의회 입구에서 진행된 시민단체와 정당의 기자회견을 간단히 취재하고 의회 입구로 향했다. 15일보다 더 많은 청경과 의회 관계자들이 입구에서부터 경계태세로 기자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취재하러 왔습니다” 어젯밤 간신히 찾아 목에 건 기자증으로 청경이 손을 뻗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들어선 시의회 1층 로비에는 40여 명의 시의회 직원들로 붐볐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 잠근 문 너머로 시민단체와 정당 관계자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오전 9시 45분경, 기자회견이 마무리되고 취재하던 기자들이 의회 출입을 시작했다. 10시부터 4인 선거구를 쪼갤 기획행정위가 예정돼 있었다. 청경은 출입하는 기자들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 청경은 로비에 서 있는 직원들을 향해 “기자실, 얼굴 모르는 기자 확인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곧이어 기획행정위 방청을 신청한 시민단체, 정당 관계자들이 출입을 시작했다.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이 “무슨 말이 되는 이야길 해요”라며 청경을 향해 목소릴 높였다. “신분증을 모아달라는 게 말이 되냐고요” 방청 신청자들의 신분증을 사전에 받아서 확인하려 한 모양이었다. 시의회는 장 팀장의 항의에 주춤하긴 했지만, 개별적으로 방청자 신분 확인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공성전 준비는 시의회 직원들만 한 건 아니었다. “전체 의원 간담회를 1시 10분에 했어요. 간담회를 하고 나서 바로 본회의장으로 가는 분도 계셨고 본인 방에 있다가 가는 분도 계셨는데 혹시라도 본회의장 입장이 안 될 수 있다. 과거에 늦게 들어가다가 옷이 찢어지거나 한 적도 있다면서 미리 자리에 앉아 있자는 의견들이 있었어요. 우리 상임위는 점심 도시락을 먹었고요. 다른 곳도 아마 거의 도시락이었을 거예요” 한 시의원이 전한 의원들 분위기다.
본회의장 출입이 막혀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비상구로 몰래 잠입한 기억이 있을 테였다. 이날 본회의에 참석한 한국당 의원 20명 중 류규하 의장과 이동희 전 의장은 2005년 12월 24일 새벽이슬을 맞으며 비상구 잠입 경험을 했던 시의원들이다. (관련기사=‘개구멍’ 잠입, 손전등 의결…대구 4인 선거구 ‘쪼개기’와 저항 13년사(‘18.3.18))
본회의는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소속 시의원들의 반대 토론에도 불구하고 찬반 표결이 강행됐다. 기립으로 진행된 투표는 참석한 한국당 시의원 20명 전원의 찬성으로 가볍게 확정됐다. 임인환(바른미래당), 김혜정(더불어민주당) 시의원 등은 앞서 진행된 의원 간담회에서 무기명 투표를 제안했지만 한국당의 반대로 기립 투표로 결정됐다. 한국당 내 혹시 모를 이탈표를 방지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회의를 마친 의원들은 회의 폐회 선언과 함께 썰물처럼 본회의장을 벗어났다. 의장석에서 내려와 가장 늦게 회의장을 벗어난 류규하 의장은 화장실부터 찾았다. “의장님 지켜야지” 화장실 밖에서 의장을 기다리는데 직원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류 의장보다 앞서 화장실을 나오던 또 다른 한국당 시의원은 비아냥 되듯 “규탄한다”고 시민단체와 진보정당 관계자들이 외친 구호를 되뇌었다.
이윽고 류 의장이 나오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들어갑시다. 차라도 한잔하면서···” 류 의장을 따라 의장실로 들어서자, 뒤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5분 남짓 류 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의장실을 나서자 직원이 뒤따라 나오며 잠긴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청경 4명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시의회의 풀어지지 않는 경계심에 놀라며 의회 출구로 향했다. 승전에 안도한 듯 양쪽으로 활짝 열린 출입문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