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패션산업연구원(연구원)이 18년 동안 대구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던 한국패션센터 수탁기관 공모에 참여하지 않아 재공고 끝에 단독 신청한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패션조합)이 수탁자로 최종 선정됐다. 연구원 경영진이 스스로 연구원 역할을 축소했다는 비판과 함께, 수탁 공모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10일 대구시는 ‘대구시 패션디자인개발지원센터 수탁기관 모집’ 공고를 내고 신청을 받았지만, 패션조합이 단독 신청해 유찰됐다. 11월 30일 재공고에도 패션조합만 신청해 최종 수탁기관으로 선정됐다. 대구시는 그동안 연구원과 수의계약을 맺어왔지만, 지난해 처음 위수탁 공고를 냈다. 경쟁을 통해 패션센터 운영에 효율을 꽤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공고, 재공고에도 패션조합만 단독 참여하면서 경쟁을 유도하겠단 의도가 무색해졌다.
<뉴스민>이 확보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연구원은 매년 패션센터에서 5~6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연구원에서 패션센터 근무로 파견한 직원 인건비를 제한 금액이다. 단, 위수탁 계약상 수탁을 통해 얻은 수익은 패션센터에만 쓸 수 있다. 때문에 연구원 외에 다른 기관은 센터 수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대신 패션업계 지원, 연구가 주요 역할인 연구원은 추가 비용 없이 설립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동안 연구원은 패션사업 지원 업무에 부합하는 신진 디자이너 지원, 섬유와 패션 자료가 담긴 리소스룸, 패션쇼장, 다목적 전시실 대여 사업으로 패션센터를 운영해왔다. 그럼에도 연구원은 수탁 공모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첫 공모 당시 원장직무대행을 맡았던 김창규 연구원 경영기획실장은 “설립되고 장기간 수탁해왔지만, 경영적인 측면을 고려해 부서장들과 협의를 통해 고려했다”고 말했다.
윤한영 경영팀장도 “패션센터 운영 사업을 하면서 직원 한 분이 돌아가셨으니까 거기에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 이 사업하면서 직원이 돌아가셨는데 다른 기관들하고 경쟁하는 게 그랬다”면서 “또, 돌아가신 손 차장님 혼자서 여러 역할을 했는데 다른 분들이 대체하려고 하니 인원이 더 필요해서 경영적인 측면도 고려해 연구원 간부들이 고민해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이 언급한 사건은 패션센터에서 책임행정원으로 근무하던 손 모(57) 씨가 대관업무와 관련해 <쿠키뉴스> A 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라는 문자를 남기고 지난해 10월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다. (관련기사=“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목숨 끊은 한국패션센터 직원, ‘언론 갑질’ 의혹(‘17.11.2))
쿠키뉴스 측은 사건 이후 비교적 신속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유족과 협의에 나섰다. 손 씨 사망 후 보름만인 11월 15일 쿠키뉴스는 사고(社告)를 통해 기사가 부적절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반면 연구원은 유족 및 노조와 고인의 명예회복 방안에 대해 합의하는데 난색을 보이면서 장례가 두 달 동안 미뤄졌다. 사망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해명과는 달리 행동한 셈이다. 연구원은 12월 27일에야 노사 합의안을 마련하고 29일 장례를 치렀다.
노조는 고인의 장례가 치러지지 않는 기간 동안 연구원의 책임 있는 해결을 요구했고, 동시에 대구시 수탁기관 공모에 신청하지 않은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노조는 지난해 11월 28일 성명을 통해 “지난 한 달 가까이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과 관련해 아무 권한이 없다며 구체적인 합의를 외면해 온 연구원이 이사회 의결 없이 사업계획서 제출을 포기했다는 점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짚었다.
노조는 “수탁공고에 사업자단체인 패션조합만 사업계획서를 냈고, 관련 사업자단체 대표 출신이 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음도 주목된다”면서 “패션센터 운영이 구성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이해관계에 의해 진행되는 사실에 유감을 표한다”고 김광배 연구원 이사장이 패션조합과 관련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광배 이사장은 지난 11일 연구원 이사회에서 3년 임기 중 1년도 채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장직을 사임했는데, 패션조합은 2011년 김 이사장이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한 단체다. 김 이사장은 조합에서도 이사장을 지냈다. 김 이사장을 포함해 연구원 이사 중 5명이 패션조합 회원사 대표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공모에 참여하라, 말라 결정할 권한이 없다”며 공모는 본인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연구원에서 근무한 직원 B 씨는 손 씨 죽음으로 전시관 관리 업무에 부담이 있고, 경영상 판단에 따라 공모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연구원 측 설명이 석연치 않다고 설명한다.
B 씨는 “대관 업무는 공간 효율성을 위해 했던 부수적인 업무였을 뿐”이라며 “패션센터의 고유 업무는 패션관련업계 지원과 연구가 주목적이다. 건물 관리, 대관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고 연구원 측 주장을 반박했다.
패션센터 위수탁 운영 근거인 ‘대구광역시 패션디자인개발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에는 고유 업무 11가지를 나열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대관 업무는 언급되지 않는다.
더구나 대구시는 이미 2017년 초반부터 패션센터 위수탁 공모계획을 갖고 있었다. 연구원 역시 이를 알고 공모 준비를 해왔다. 대구시는 사전에 수탁기관 공모를 예고했고, 매번 2년씩 연구원과해오던 수의계약을 2017년에는 1년 기간으로만 한정했다.
연구원은 공모를 준비하면서 온라인 대관 신청관리시스템도 개발했다. 하지만 1월 15일 기준으로 대관신청관리시스템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수탁기관은 패션조합으로 적시되지만 홈페이지 주소는 연구원 도메인이 사용된다. 연구원이 개발한 시스템을 조합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패션조합 역시 지난해부터 센터 위수탁 공모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민>이 확인한 패션조합의 패션센터 관리·운영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패션조합은 패션센터 위수탁 공고를 준비라도 한 듯 전기, 보일러, 가스, 위험물 관리 자격증을 취득한 건물 관리 인력을 지난해 초 채용했다. 해당 업무는 연구원에서 고인이 된 손 씨가 담당하던 일이다.
패션센터 수준의 기관 관리를 해본 적이 없는 패션조합은 사업계획서를 통해 시설 관리는 또 다른 용역 업체에 맡긴다고 밝혔고, 관리 실적에도 해당 용역 업체 실적으로 대체했다. 운영 능력이 없다는 걸 스스로 밝힌 걸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대구시 섬유패션과 관계자는 “처음 사업을 수탁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앞으로 구체적 운영과 관련해서는 대구시와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