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달콤한 늦잠을 자고 일어나 사드 반대 성주 카톡방에 올라온 웹자보 한 장을 보고 덜 깬 눈을 비비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동남청년단(사드 반대 운동을 벌여온 성주에 서북청년단이란 단체가 현수막을 걸고 ‘사드 괴담’ 운운하자, 서북청년단과 맞짱 한번 떠보자며 즉흥적으로 결성한 성주 청년들의 모임)이 함을 판다고 이번 JTBC 신년토론회 포스터를 패러디한 웹자보였다.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한 성주 평화나비광장 촛불집회에 오면 의자 깔기, 난로 피우기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는 동남청년단이라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사드가 들어오기 전엔 생판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인데 사드가 들어와 촛불을 들고 투쟁하며 가족처럼 친해진 사람들이다.
얼마후 우리 동남청년단 막내인 미현이가 시집을 간다. 시집가서 잘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남청년단이 함 팔기 행사를 기획했다. 18년 1월 6일 저녁 6시 성주 학산2리 말배미 마을 입구에 파란나비원정대버스가 도착했다.
오늘은 세계최초 함진아비 원정대다. 사드 배치 반대에서 만나던 촛불들이 오늘은 함 파는 구경길에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투쟁 오래 하다보니 이제 별것을 다하네”
“함 팔이 너무 재미있어서 전국출장 다녀야 하는거 아니야”
“동남 함 팔이 전문 컨설팅회사 만들자”
“함 사시오~함 사시오~”
커다란 박스오징어를 얼굴에 쓴 함진아비 김상화 씨가 나타났다. 두 사람 앞날을 환하게 밝힐것 같은 청사초롱이 밝혀졌다. 성주 촛불집회 명사회자 이강태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함 사시오’를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구경꾼들도 같이 불러 보았지만, 누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신부 측에서도 초반 기선 제압이 장난아닌 듯했다.
“버스에 시동걸아라~가자”
“이 동네가 아닌가 봐~”
“함 살 사람 어디 갔나?”
양병철과 삼태기 “함 사시오” 노래로 풍악이 울리고 또다시 함 사시오를 외친다.
그랬더니 드디어 촛불 중 한 명인 심복남 씨가 자그마한 술상을 들고 나왔다.
“함진아비 덩치를 보세요. 상이 이렇게 작아서 되겠나?”
“광장에 촛불들고 온나 여기서 집회나 하자”
함진아비는 상이 너무 작다고, 술이 없다고 투덜투덜댔다.
그러자 신부 고모와 친척 언니가 염탐하러 왔다.
“함을 팔라면 가까이 가서 팔아야지 여기서는 들리지도 않는다. 소리가 들려야 함을 사지, 빨리오소”
“춥지싶은데~빨리 오소”라며 함진아비를 재촉했지만, 굴하지 않고
“이런 동네. 처음 본다. 막걸리 한잔 없노”
“더 큰상으로 가지고 온나”
“열아~다른 신부감 알아보고 있다. 옆 동네로 가야겠다. 이 동네는 팔 동네가 아니다”
이렇게 꼬장을 부리고 있는데 또 다른 술상이 등장했다. 큰 상을 가져오나 했더니 조금 전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상을 가져왔다.
“이 집에 상없나? 큰상 가지고 오라고!”
이강태 씨가 소리쳤다. 갑자기 ‘꼬장’ 방민주 씨가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야는 사드 들어 올 때도 이런 거 안 했는데”
신부 측에서 50만 원이 든 돈봉투를 들고나왔다. 방민주 씨가 일어나 돈봉투를 확인하고 벌떡 일어났고, “신부 숨넘어가요 빨리 들어가요”라는 신부 측 부탁으로 시작 30분 만에 마을회관 앞까지 함진아비가 걸음을 옮겼다.
마을회관앞에 이르자 이강태 사회자가 소리쳤다.
“말배미 주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이희동 씨 장녀 이미현 양 함 들어오는 날입니다. 저녁 드시고 구경빨리 나오세요”
“집은 아직 멀었다. 저기 큰상 차려놨다. 저까지만 가면 된다.”
술 두 잔에 매수당한 성주촛불 음향감독 김광식 씨가 능글맞게 앞으로 가라고 했다.
그러나 강태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말이 배도 고프고 목이 말라서 못가겠답니다.” 이때 갑자기 촛불집회에서 보던 기름난로통이 등장했다.
“이젠 난로에 불 지펴서 따뜻하고 좋습니다. 밤새도록 해도 되겠습니다.”
함진아비가 특유의 눈웃음을 치며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말한다. 신부 어머니인 김정숙 여사님이 등장했다. “상 들고 올 사람이 없다. 저기 상 차려놨다. 우리 동네 사람들 성격이 안 좋다. 동장님이 민원 들어왔단다.” 온갖 앓는 소리를 다 해도 함진아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렸던 커다란 상이 등장한다. 한밤중 논밭에 술상이 차려지고 배가 고팠던 함진아비와 구경꾼들은 배를 채웠다.
동남청년단이 준비한 우리들만의 특별한 함 팔이 게임이 시작됐다. 동남청년단과 신부 측 대결구도로 이뤄진 게임은 동남청년단에게 너무 편파적이었다. 제비뽑기로 노래자랑이 뽑혔다. 실로폰을 든 함진아비가 평가했다. 살면서 노래 부르고 땡을 맞아본 적이 없다는 김정숙 여사님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당신의 의미”를 열창했지만, 함진아비는 냉정했다.”땡”이었다. 그리고 동남청년단 도완영 씨가 학교종이 땡땡땡을 한소절 부르니 “딩동댕”을 쳤다.
너무 편파적이라고 항의하는 신부 측에게 이강태 씨는 너스레를 떨었다.
“지 꼴리는대로 치기 때문에 조용필이 와서 불러도 땡일 수 있다”
열 받은 김정숙 여사님이 함진아비를 뒤에서 확 밀어버렸다.
두 번째 대결 윷놀이. 세상에나 이런 윷이 어디 있나. 원래 4개 중에 하나만 뒷도여야 하는데 4개 윷 모두 X표다. 모가 나오지 않는 이상은 뒤로만 가야 한다. 아무리 던져도 뒷개가 나왔다.
분내 나는 신부 친구를 찾았더니 분칠한 남동생 친구가 나왔다. 이 친구가 레몬 빨리 먹기대회를 뽑았다. 신부 동생 친구와 올해 반백인 동남청년단 조성용 대장이 레몬 빨리 먹고 휘파람 불기 게임을 시작했다. 레몬 한 개를 통째로 먹고 조성용 대장이 먼저 휘파람을 불었다. 혈기왕성한 젊은피를 노익장이 눌러버렸다.
이때 촛불집회 시작할 때 나오는 묵념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함을 팔다 말고 묵념을 했다.
“이 땅에 함을 지다 장렬하게 전사하신 함진아비분들을 위해 일동 묵념”
함진아비가 앞으로 오라고 신부 측에 봉투를 깔았는데 천 원짜리가 든 봉투가 걸렸고, 방민주 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경고를 했다. 이날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했는데 방송을 보던 서미란 씨는“사회자 패고 싶다”고 했고, 서울에 사는 하명동 씨는 ”손님이 오든지 말든지 본방사수할란다”며 현장에 있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렇게 30m 앞으로 오는 데 1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고스톱 대결. 국내 최초로 함 팔던 중 벌어진 고스톱판. 신부 삼촌과 이국민 씨가 고스톱을 쳤다. 이국민 씨 30점, 삼촌 9점이 나와서 돈봉투 30장에 9걸음 앞으로 갔다.
그렇게 동남청년단이 준비한 꼬장이 끝나고, 함이 신랑에게 건네졌다. 신랑은 통쾌하게 박을 깨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가 신부 아버지와 어른들이 함을 펼치고 술을 따라 절을 하고 함을 들고 온 동남청년단은 언제 그렇게 꼬장을 부린 줄도 모르게 공손한 자세로 바뀌었다. 미풍양속에 맞게 하다가 그런 것이니 무례함을 용서하라고 했고, 신부 측 어르신들과 동남청년단이 맞절했다. 맞절하는 걸 옆에서 본 신부는 이제야 시집가는 게 실감이 났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3시간 넘게 추위에 떨며 함 팔이 행사를 한 모두는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끝났다. 그리고 함팔고 받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은 사드 반대 투쟁기금으로 쓰일 거라고 한다.
예전에 어릴 때 드라마에서나 보던 함 팔이. 함 들어오는 것을 처음 봤지만, 아마도 오늘이 제일 떠들썩하고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함 팔이였을 거다.
평소 즐겁게 투쟁하는 것이 모토인 성주촛불답게 오늘도 역시 즐거웠다. 이런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즐거움으로 사드가 나갈 때까지 촛불집회를 할 생각에 행복하다. 오늘 행사로 이미현, 김상렬 커플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빈다.
이렇게 함을 한번 팔아본 동남청년단은 술을 마시며 내가 시집 갈 땐 어떻게 할 것인지 작당하고 있었다. 시집갈 생각이 없었는데, 함을 받기위해서라도 시집을 가야 하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