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어 내 나이는 마흔, 만으로 서른아홉이 됐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만’을 나이 앞에 굳이 붙이고 싶어졌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뭐 큰 대수라고 여덟에서 아홉 넘어갈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앞자리가 삼에서 사로 바뀌니 기분이 묘했다. 어릴 적 ‘몇 살이야?’ 물어가며 그렇게 나이가 먹고 싶었지만, 이제는 큰 자랑거리는 아닌 듯싶었다. 마흔 정도면 많은 것을 성취하고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나이는 먹고. 뭔가 어중간했다. 나는 여전히 삼십 대에 머무르고 싶었다.
불경기 탓일까, 나이를 먹는 탓일까. 연말연초의 들뜬 분위기도 잘 전해지지 않았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고, 추운 날씨 아이들 감기 걱정에 외출은 자제하게 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TV를 켜고 연말결산 시상식을 봐도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남발하는 공동수상에도 그리 열을 받지 않는다. 소싯적(?)에는 제야의 종소리 한 번 듣겠다고 수많은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가기도 하고 날밤도 많이 샜다. 첫 일출을 보기 위해 기를 쓰고 산에 올라가고, 호기롭게 동해로 향했다가 주차장 꼴이 난 도로 사정에 좌절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애 때문에 꼼짝달싹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냥 안 아프면 다행이다.
그래서일까. 몸은 점점 나태해지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과 기대는 점점 줄었다.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 속에 돌아볼 것도 많지 않은 작년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불과하다. 엄마아빠들은 서로의 나이를 거의 묻지 않는다. 아이가 몇 살인지, 어디를 다니는 지가 훨씬 더 궁금하다. 이제는 내 나이가 ‘몇 살’인 것보다는 아이가 ‘한 살’을 더 먹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여덟 살이 되었다. 지난 연말에는 취학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제 곧 아이는 ‘원생’에서 ‘학생’으로 불리게 되고, 나도 근원이 어디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남들이 다 그렇게 부르는 어엿한 ‘학부형’ 된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우리 부부는 그 학부형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학생에 걸맞은 학습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를 썼다.
우선 우리 집의 숙원사업인 쓰레기장인지 창고인지 헷갈릴 정도로 방치되었던 딸 아이 방을 정리했다. 이사와 맞먹는 수고, 정말 큰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고, 망가진 장난감, 쓸모없는 교구와 학용품을 무려 100L 쓰레기봉투 두 개에 꽉꽉 채워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이 지낼만한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왕할머니라 부르는 외증조할머니가 책상도 사주셨고 친할머니와는 몇 차례 쇼핑을 간 끝에 어렵사리 책가방도 샀다.
새해부터는 영어학습지도 시작했다. 곧잘 따라 하고 즐거워했다. 책가방 메기 시작하면 고생 시작이라는데 아직 아이는 자기만의 공간과 물건이 생긴 것이 마냥 신나는 모양이다. 방에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포스트잇에 장래희망도 써서 붙여놓고, 자기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해달라며 생색을 내면서 말이다. 벌써 이 난리를 피우는 것을 보니 이 아이가 커서 수험생이 될 때가 벌써 걱정이다.
둘째 아이는 네 살이 되었지만, 아직 세 살이라고 알고 있다. 나이를 물어보면 무조건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세 살이라 답하면 기특하다 칭찬을 들어온 녀석에게 아직까지 해가 바뀐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누나가 부러웠는지 학교 간다며 틈만 나면 책과 가방을 사달라 했다. 둘째 아이는 다니던 가정 어린이집을 계속 다니기로 했다. 그곳은 올해, 네 살까지만 다니면 졸업을 해야 하지만 적응을 해서 잘 지내고 있는 마당에 환경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다섯 살이 되면 또 걱정이겠지만 그때쯤 되면 자기가 다섯 살이 된다는 것도, 한 살 더 먹는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슬슬 기저귀 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른 집 애들은 벌써부터 쉬야와 응가를 가리는 애들이 많은데 부모의 게으름과 정성의 부족으로 아직까지 기저귀를 못 떼고 있다. 스트레스 안 주려고 기다려 준다고 애써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새해에는 더 내 손에 똥 묻히지 않도록 조금씩 노력해볼 생각이다.
오늘은 딸아이 초등학교 예비소집을 다녀왔다. 오전 10시까지 오라기에 강당 같은 곳에서 뭔가 공식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 학교 설명도 하고, 교가도 가르쳐 주고,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환영도 해주고 그건 거 말이다. 근데 간단한 면담이 전부다. 딱히 별것 없이 정말 그걸로 끝이다. 다른 아빠들보다 젊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 나름대로 옷도 신경 쓰고 머리에 평소 안 바르던 왁스도 발랐는데 뭔가 허무하다. 그래도 책상에 앉아 기다리는 아이는 긴장한 것 같았다. 나도 덩달아 긴장됐다. 짧은 면담을 하는 동안에도 몸을 배배 꼬며 어색한 것이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생판 다른 공간과 낯선 환경에서 얼마나 어려운지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새 출발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새해에 다짐해본다.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커가는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을 한다. 아이들에게 짜증도 덜 내고, 같은 눈높이에서 이해해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하필 새해와 맞물려 아이들의 방학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해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성질이 나고 언성이 높아진다. 또 화를 내고 말았다. 지긋지긋한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역시 새해 다짐은 작심삼일이 진리다. 그래도 내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한 살 더 먹은 아빠와 아이는 조금씩 커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또 많은 것을 얻고 이뤘다. 마흔 살 혹은 만 서른아홉 살, 더 나이를 먹더라도 두 아이 아빠라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