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반도체 제조업체 (주)KEC가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희롱 예방 교육 중 강사에 의해 성희롱이 발생해 논란이 예상된다. 해당 강사는 성희롱에 대한 관점 차이를 설명하려 예시를 들었을 뿐이라고 했지만, 강의 도중 성적 수치심을 느낀 여성 직원이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이후 노동조합이 강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회사에 강사 교체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일부 사원만 이의를 제기했고, 다수는 강의를 잘 들었다고 한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해당 강사의 교육을 예정대로 진행해 성차별·성폭력 문제에 둔감한 기업문화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성의 성적 요구에 연령대별 여성 반응 희화화
강의 도중 수치심 느낀 여직원 뛰쳐나가기도
해당 강사 “성희롱에 대한 관점 차이 설명 위한 예시였다”
노조, 공식 문제 제기했지만 회사 반응은 미온적
KEC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12월 1일, 4일 총 4차례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4회 강의는 모두 구미에서 활동하는 A(50, 여) 강사가 맡았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듣던 B(43, 여) 씨는 강사의 이야기에 수치심을 느끼고 강의장을 뛰쳐나왔다. B 씨에 따르면 A 강사는 남성의 성적 요구에 ‘20대는 택시’, ‘30대는 물안개’, ‘40대는 소주’ 등 연령대별 반응을 설명했다. 연령대에 따라 남성의 성적 요구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B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처음에는 황당했고, 그 다음에는 부끄러웠고, 수치심을 느끼면서 화가 많이 났다. 이런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고 있어야 한다는 데 화가 났고,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법정교육이기 때문에 출석 인증을 받아야 해서 회사 담당자를 만나 강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강의 내용이 적절한지 생각해보고 조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4일에 또 강의가 있으니 조치를 해달라고 했는데 ‘개인의 차이가 아니냐’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공장 내에서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공식적으로 강사 변경 요청을 하기로 했다. 금속노조 KEC지회는 4일 오전 해당 강사가 부적절하므로 교육을 중단하고 다른 강사에 의한 교육을 잡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4일에도 예정대로 A 강사가 성희롱 예방 교육을 2차례 진행했다. A 강사는 사과를 했지만, 일부 직원들은 그날 강의 내용에도 불편한 내용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B 씨는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요. 여자들은 모욕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남자 사원으로부터 그날 강의에서 등장했던 이야기를 들었다는 여성 동료도 있었어요. 성희롱 교육이었는데 성희롱을 배우고 돌아온 거죠”라고 말했다.
A 강사는 논란이 된 내용을 강의 중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희롱에 대한 관점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였다고 반박했다.
A 강사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가해자 입장에서는 재미로 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꺼낸 예시였다. 어떤 웃음강사님이 친근감을 주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이야기를 했다가 강의료를 못 받은 적이 있다며 꺼낸 이야기였다. 행위자 입장에서 재미있으라고 한 이야기지만 다를 수 있다는 걸 사례를 들어 해준 것”이라며 “2014년부터 성희롱 예방 교육을 전국으로 다니면서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강의를 잘 들었다고 악수까지 하고 간 분들도 있었다. 다수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시를 들었다하더라도 적나라한 비유가 다르게 들릴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A 강사는 “4일 강의를 하면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라고 해서 ‘이해력을 높기 위해 예를 들어서 설명했는데 과하게 들렸다면 사과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은 그런 용어를 안 썼다”고 말했다.
사과 이후 강의 내용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 A 강사는 “그날 강의장에 들어가니 경직된 분위기였다. 어떤 분은 계속 인상을 쓰고 있더라. 그래서 인상 좀 펴고 둥글게 살라고 그랬다. 성희롱에서 신고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다. 성희롱이 벌어지면 문제 제기를 하고, 사과를 할 때 진정성이 느껴지면 받아들이고 그때 가서 법에 호소하라고 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B 씨는 “전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나왔거든요. 예시 자체가 부적절한데 예시라 문제가 없다는 게 옳지 않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겉 같아요. 본인이 성희롱 한 것과 진배없다는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노조, “상식적으로 중단됐어야…회사의 낮은 성평등 인식 드러내”
회사, “불편함 느낀 사원은 소수…문제 제기 이해 잘 안가”
여성단체, “오래 뿌리박힌 공장 내 성차별 문화 개선 기회 삼아야”
강사도 문제지만 회사의 미온적인 대처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이종희 금속노조 KEC지회장은 “그런 정도의 문제 제기를 공식적으로 받았으면 상식적으로는 중단됐어야 했다. 그런데 무슨 문제냐는 식으로 회사는 반응했다. 단순히 강의 내용과 강사 문제가 아니라 성평등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낮은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인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는 해당 강의 내용에 대해 불편함을 가진 사원들이 소수이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이덕영 KEC 인사그룹 부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전문교육기관에 추천을 의뢰해 지명도 있고, 강의 경력도 있는 사람을 추천 받았다. 똑같은 내용으로 다른 곳에서 수십 차례 했다. 이의가 있다고 하는데 금속노조 일부 사원들만 이야기가 나왔다. 다수인 다른 노조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강사가 여자고, 그렇게 수치스럽게 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소수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고 있다”며 “모두 성인들이었고, (4일) 강사가 개인적으로 정중히 사과도 했다.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인데 저희는 사실 잘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는 “해당 강사의 이야기는 변명으로 들린다.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들끼리도 쌍방 모니터링에서 적절하지 않은 예로 나온 이야기다. 그리고 예시를 들었을지라도 성적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면 그 자체로 문제”라면서 “강사도 문제지만 이를 방조한 관리자도 문제다. 노동자들의 성평등 인식이 높아져 있는데, 이를 방조한 관리자도 문제다. 그동안 성차별 문화를 묵인했던 노동자들 내부 성찰과 함께 회사 내 성차별적인 제도가 문제의 뿌리라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600여 명이 일하는 KEC 구미공장에서 여성은 절반이 넘는다. 그러나 회사 내 관리자 중에 여성은 1명도 없다. KEC지회에 따르면 고졸 여성이 입사하면 임금체계상 가장 낮은 등급인 J1부터 시작하고, 전문계고졸 남성이 입사하면 한 단계 위인 J2 등급이 적용된다. 또, KEC 내 여성노동자들은 30년 근속을 해도 J3에서 승급이 멈춘다. 반면 남성노동자는 S4, S5까지 승급이 이뤄진다.
KEC는 지난 2010년 3월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노조 전임자 수와 회사 경영권 관여 문제 등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 노조(금속노조 KEC지회)가 6월 21일부터 파업에 들어가자 같은달 30일 새벽 용역업체 경비원 400여 명을 동원해 여성 기숙사에 있던 노조원들을 끌어낸 뒤 부분 직장폐쇄를 단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