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세계인권선언 69주년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가 손아람 작가를 초청한 인권특강 ‘혐오로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열렸다.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소수의견>의 원작자이자 소설 <디마이너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등을 쓴 손아람 작가는 ‘여성혐오’, ‘소수자 혐오’에 관한 발언을 지속하고 있다. 이날도 손 작가는 ‘역차별’이란 말이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1시간 30분여 동안 강연을 진행했다.
‘남성만 군대 간다’, 남성이 위험노동을 전담한다‘
역차별이라는 말 속에 사회적 차별이 담겨 있다
손아람 작가는 ‘혐오 표현과 모욕이 어떻게 다른가?’를 질문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손 작가는 “저에게 흑인처럼 곱슬이다라고 했을 때 제가 모욕을 느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흑인에 대해 의식적이지 않더라도 부정적인 뉘앙스, 사회적 편견에 기대서 표현을 사용하는 순간 사회의 특정한 맥락을 차용하게 되는 것”이라며 “대부분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백인과 흑인에 대한 가치 평가가 집단 무의식적으로 내려진 사회적 맥락이 있기 때문에 혐오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 작가는 ‘역차별’을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었다. ‘남성만 군대 간다’, ‘남성이 위험노동을 전담한다’, ‘남성이 구애하고 여성이 간택한다’, ‘남성이 데이트비용을 낸다’, ‘남성이 가정을 부양한다’ 등 남성이 흔히 역차별이라고 언급하는 말 자체에 사회적 차별 문제가 내포해 있다고 지적했다.
손 작가는 “남자만 군대 간다는 말에 흔히 여자는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훨씬 크다는 식으로 대응을 해요. 이런 방식의 논쟁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피해의 평등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이런 식의 논쟁은 성차별주의자들이 바라는 논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 작가는 “남성이 군대에 가고, 위험노동을 전담한다는 것은 그동안 여성에게 연약함, 소극성, 조신함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남성이 권장했다. 또, 남성이 구애하고 여성이 간택한다는 것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통제해온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은 여자를 비난한다”며 “자기 자신은 쉽게 받아줘야 하지만, 다른 남자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는 여자는 헤프다고 비난한다. 애초에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희망이다”고 말했다.
‘연약함’, ‘소극성’, ‘조신함’은 생물학?
인간의 문화, 의지가 바꾸어온 것들
이어 손 작가는 여성의 ‘연약함’, ‘소극성’, ‘조신함’ 등을 강조할 때 생물학에 기대는 반문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손 작가는 “여자를 차별하니까 약해졌다고? 과학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소극성, 조신함에 대해서도 호르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며 “우리 세계에서 남성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선호하지 않고 놀리고, 기피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될 확률이 높다. 한 세대에서는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나면 생물학에서는 특정 형질이 제거된다고 표현한다. 마치 생물학으로 착오될 만큼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작가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체중이 20% 차이가 난다. 국가별 성평등 지수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신체 격차가 비례하는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는 크고, 북유럽은 작게 나타난다”며 “문화가 우리 생물학을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2백 년만으로도 문화가 우리 생물학을 바꾸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손 작가는 ‘된장년’, ‘보슬아치’, ‘김치녀’ 등 혐오 표현 안에 들어 있는 남성의 욕망에 관해 설명을 이어갔다.
손 작가는 “김치녀가 여성의 경제적 성향을 공격하는 표현으로 쓰이지만, 남성의 욕망을 훨씬 더 강하게 노출하는 표현”이라며 “남성의 경제력과 여성의 외모에 대한 거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남성의 사회적 자원에 대한 여성의 선호를 공격하고, 동시에 많은 남자들은 여성의 신체적 매력에 대해서만 단순화하는 편향을 은폐하는 게 혐오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손 작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매력은 늘 생물학적이라고 해왔는데, 한 사회에서 가장 이득이 되는 인간의 기준이 형성하는 것이라면 남성이 권력을 얻는 사회에서는 권력을 얻기 좋은 자질들이 남성의 매력이 될 것”이라며 “여성이 권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적 자질들이 있어도 매력이 아닐 것이다. 여성에게는 신체적인 매력이 가장 중요한 자질로 형성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성차별이 경제적 차원에서 거의 없다는 스웨덴 같은 국가에서도 생물학적 차이가 나타난다는 반론에 대해 손 작가는 “우리 사회구조가 만들어진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소 1만 년이고, 격차를 해소하기 시작한 것은 짧게 1백 년 정도에 불과하다. 인간의 문화, 인간의 의지가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말했다.
“역차별? 들여다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야기해야 할 시점”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언론이 가해자의 ‘조현병’을 부각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손 작가는 “여성 혐오가 아닌 조현병, 피해망상, 이런 표현을 쓰면서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만들었다. 저 사람은 남성의 대표성이 없는 사람이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런데 정작 조현병을 설명하는 언론은 없었다”고 말했다.
손 작가는 “조현병은 매우 체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무속사회에서는 신병, 빙의로 나타나고, 식민지 국가에서는 집단 살인, 전쟁과 정치혼란기에서는 음모론적 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현대에는 기계, 과학, 미래세계에 대한 망상으로 나타난다”며 “그렇다면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 혼자 나타난 것일까? 문화적 변인이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 역차별이라는 이야기들을 정면에서 들여다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같은 여성들 간에 여성 차별을 용인하고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손아람 작가는 “구조적인 차별이 발생할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상황은 약자와 약자가 싸우는 일”이라며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서도 영세상인들은 임대료 인상 속도를 낮추고 최저임금 올리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도 경제적 약자인데 죽으라고 그러느냐고 반대한다. 차별에 대항하는 싸움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라고 말했다.
작가의 소설 속 여성 인물에 대한 질문에 손아람 작가는 “여성을 그리는 것들이 작품마다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성장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여성들의 세계로 보는 게 쉽지 않고, 저도 그런 실수들을 여러 차례 해왔다. 저도 인지하고 있고, 매 작품마다 조정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아예 성비를 5대5로 할당하고 맞춰보는 게 가능할지 생각하고 있다”며 “성비 할당치를 정해놓지만, 부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되면 안 되니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든다. 오랜 시간 정리하고, 연구하면서 저도 넓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는 9일 오후 3시부터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세계인권선언 19조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를 주제로 언론탄압과 블랙리스트에 대한 토크콘서트를 연다. 대구MBC 기자로 현재 언론노조 MBC본부 수석부본부장인 도건협 기자, 강병규 안동MBC 피디와 뉴스민 이상원 기자, 유명 팟캐스트 방송인 남태우 씨가 패널로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