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세상읽기>가 가을개편으로 오늘이 마지막 방송이었습니다. 제가 꼽아보니까 약 15년 가까이 이 프로그램의 제작과 진행에 참여하면서 동고동락해왔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들이 있어서 긴장했던 것 같고 또 든든했습니다. 저는 더 분발해서 매주 토요일 낮 12시 15분에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 프로도 애청해주시고요. <라디오 세상읽기>는 여기서 끝인사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0월 27일, 만으로 꼬박 15년을 채우고 대구CBS 라디오 정통 시사 프로그램 <라디오 세상읽기>가 ‘끝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마이크로 견제구도 날리고, 돌직구도 던지고, 삼진도 잡는 주간 시사토크쇼. <시사마운드>입니다. 저는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는 이동유 피디 입니다. 기아 타이거즈가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차지했는데, 어떻습니까? 이창원 대표, 한국시리즈 다 보셨습니까? _ 이동유
“아니, 인사도 없이 그냥 바로 이렇게 묻는 건가요? 흐흐하하” _ 이창원
“이게 쑥 들어오는 게 견제구예요” _ 김수민
“이게 뭐야” _ 이창원
“1루 주자한테 물어보고 던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_ 김수민
11월 4일 토요일 낮 12시 15분. 끝인사를 전했던 진행자는 스스로 ‘감독 겸 선수’라면서 ‘시사마운드’ 위에 섰다.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까지 좌우에 대동했다. 감독은 선수 소개도 잊고, 바로 공을 던져 버렸다. 자칫 폭투가 될 뻔한 감독의 실수를 베테랑인 선수들이 가볍게 커버해버린다. 첫 등판은 약간 정신이 없었고, 덕분에 감독과 선수들의 ‘케미’가 더 빛나 보였다.
약 40분간 ‘감독 겸 선수’와 ‘선수’들의 토크로 채워지는 라디오 시사 토크쇼 시사마운드가 청취자들을 처음 만났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정형화된 모델이 있다. 시사마운드는 정형화된 모델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로 탄생했다. 뉴미디어로 각광받는 시사 팟캐스트에 가깝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대구CBS에서 정통 시사 라디오 세상읽기를 제작했고, 진행까지 해온 이동유 피디가 ‘감독 겸 선수’로 진행을 맡고, 여러 방송 프로그램으로 잔뼈가 굵은 문화기획자 이창원 인디공오삼 대표와 라디오 세상읽기를 통해 시사평론가로 데뷔한 전직 구미 시의원 김수민 씨가 고정 패널이다.
“기존 시사 프로에서 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형식을 놓고 나니까 이창원 씨나 김수민 씨는 ‘세상읽기’ 할 때 느낌이랑 시사마운드 넘어온 느낌이 달라요. 일단 밝아졌고, 딱딱함을 탈피했다고 해야 할까. 마음껏 이야기하라고 하죠. 욕만 하지 마라, 방송에서 쓰면 안 되는 말만 아니면 내가 다 편집해줄게, 마음껏 이야기해라. 그러니까 우리도 좀 즐겁고 흥이 나요”
15년 이어온 <라디오 세상읽기> 종영
대구 지역 비주류 소식 전하는 역할 충실
시민사회노동단체 관계자들 아쉬움 표해
새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기존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과정은 방송국 입장에선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구CBS가 지난 15년간 지켜온 라디오 세상읽기는 대구 지역 시민사회노동단체에겐 사라지는 게 아쉬운 프로 중 하나다. 라디오 세상읽기는 상대적으로 주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시민사회노동단체 소식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종영 소식을 전하는 이동유 피디의 SNS에 이들 단체 관계자들이 아쉬움을 전해온 것도 그 때문일 테다.
“지부장(이동유 피디는 전 언론노조 대구CBS지부장이다)님도 섭섭하시지만, 애청하고 늘 고마웠던 우리 조합원들이 더 서운하네요” _ 권택흥 민주노총 대구본부장
“좋은 프로그램이 역사의 길로 사라지는군요” _ 황성재 우리복지시민연합 정책실장
“자전거 수단 분담률 5% 만들면 다시 보기로 했으니,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덕분에 7개월 동안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더욱 멋지게 만들어가요” _ 정현수 대구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저도 오랜 출연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아쉽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_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네요. 지부장님! 동지라 더 편안한 방송이었습니다. 방송의 힘, 다른 프로 맡으셔도 지금처럼 다가가는 친근한 방송일거라 믿습니다” _ 정경희 학교비정규직노조 대구지부장
2002년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한 라디오 세상읽기는 이동유 피디가 이름도 직접 지어 제작해온 자식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이 피디가 보기에도 대구는 보수적인 도시였고 나아가 ‘문을 닫고, 입을 닫은 채 말하지 않는 도시’였다. 세상읽기가 지역 사회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으켜서 문을 열고 말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다양한 시민사회노동단체 관계자들을 마이크 앞에 앉히고 이야기를 전했다. 교육·장애·환경 문제에는 여러 차례 고정 코너까지 만들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대구 주류 언론에서 다 다루지 못하니까, 비주류 영역을 좀 많이 다루려고 했으니까. 시민사회 단체에선 현재 활동하는 분이나 과거 활동한 분들은 거의 다 최소 1번은 세상읽기를 거쳐 갔죠”
지난 2015년부터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진행에 나서기도 했다. 10여 년 마이크 너머에서 제작에만 집중하는 거론 채우지 못하는 갈증이 있었다. 보통의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은 진행자가 프로그램의 총괄 에디터 역할을 한다. CBS 라디오 간판 프로그램인 <김현정의 뉴스쇼>도 김현정 피디가 진행과 에디팅을 책임진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에디터가 진행도 책임지면 인터뷰이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행간의 맥락을 읽고,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적절한 질문을 하면 청취자들에게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행간의 맥락’을 읽고,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적절한 질문과 답변이 쌓이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물론 진행자들에게 꼼꼼하게 원고도 써주고, 의사소통도 많이 하면 극복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하다 보니까 내가 전달하고 싶고, 청취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내용과 진행자가 생각하는 것 차이에 간극이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질문지나 인터뷰 행간에 진행자가 다 묻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런 아쉬움 때문에 ‘그럼 내가 한번 해보자’ 그렇게 된 거죠”
15년 방송하며 느낀 갈증
9월 새 보직, 새 임무로 모멘텀 생겨
자식 같은 ‘세상읽기’ 놓고, ‘시사마운드’ 제작
“황야에서, 황무지에서 출발···데일리 프로그램으로?”
갈증은 직접 운영하는 것만으론 풀리지 않았다. 그 사이 미디어 환경도 급속도로 바뀌었다. 청취자들은 재미와 의미를 함께 찾길 원했고, 기존의 프로그램 운영 방식으론 청취자들의 바뀐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차에 이 피디의 신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9월 이 피디는 편성팀장으로 승진하면서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됐다. 그동안 대구에선 들을 수 없었던 CBS 음악FM 채널(97.1MHz)을 개국하는 일이다. 새 음악FM 채널은 내달 1일 첫 송출을 앞두고 있다. 새 보직, 새 임무는 이 피디에게 물리적 결단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라디오 세상읽기를 그만 손에서 놓아주고, 새로운 걸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라디오 세상읽기가 결정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진 못했죠. 여러 한계가 있긴 했지만, 모바일이라든지 인터넷, 팟캐스트 플랫폼이 많이 생겼고 새로운 환경이 생겼는데 여기에 대응해 뭔가 시도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의 기대치랄까 눈높이도 달라졌죠. 전통의 방식으로만 해왔는데 지금은 짜여진 거보단 자연스러운 거, 딱딱한 거보단 부드러운 걸 원하고, 동시에 들을 것도 있고 생각할 것도 있길 바라잖아요. 그래서 시사마운드를 기획하게 됐어요”
시사마운드는 매주 토요일 낮 12시 15분, 주간 시사 토크쇼 방식으로 지난 4일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첫 방송은 프로그램과 패널을 소개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40분 진행된 첫 방송은 희망찬 미래(?)를 갈망하며 끝났다.
“시사마운드, 토요일 첫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 오늘 어떠셨어요? 이창원 대표?” _ 이동유
“저는 이렇게도 방송이 되나, 이런 생각을 좀 했고요. 다음 게임이 상당히 궁금하네요” _ 이창원
“궁금증을 유발하는? 정말입니까?” _ 이동유
“그렇습니다” _ 이창원
“김수민 평론가님?” _ 이동유
“어떻게 하다 보니까 시간이 후루룩 가버렸는데, 더 잘되어서 이 프로그램이 확대 편성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시간짜리로” _ 김수민
“2시간 짜리로. 아니면 매일, 데일리 프로그램으로” _ 이동유
“너무 혹사야 그건” _ 이창원
“저희가 자리만 잡으면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광고도 붙고, 작가도 넣고” _ 이동유
“그러니까 우리가 광고도 없고 작가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3명이서 모여가지고” _ 이창원
“아주 황야에서 황무지에서 출발했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발전해가는 프로그램으로” _ 이동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