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 안전모 지급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건물 내부 청소 지시

산업현장에서 지진에 대한 안전불감증 만연
노동조합 있는 곳은 작업중지 등 그나마 나은 편
여진 계속되는 가운데 적극적인 노동행정 필요성 제기돼

19:50

지진으로 피해가 컸던 한동대(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가 안전모 지급도 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에게 피해 건물 잔해 청소를 지시했다가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뒤늦게 안전 장비를 지급하는 등 지진 이후에도 노동현장 안전불감증 문제가 여전해 적극적인 노동행정이 요구되고 있다.

15일 오후 2시 29분께 발생한 지진으로 한동대는 건물 외벽이 무너지고, 내부가 갈라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지진 직후에는 학생과 전 직원이 밖으로 대피하며 발빠르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한동대는 직원들이 출근해 16일부터 17일까지 한국전기안전공사, 승강기안전협회, 대한산업안전협회, 한국시설안전공단 등을 통해 강의동과 생활관에 대한 1차 안전 점검을 실시했다. 진단 기계 및 장비를 투입한 정밀 점검은 아니었다.

▲지진이 일어난 15일 저녁 한동대 건물 내부.

16일 강의동과 생활관을 청소하는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도 모두 출근해 건물 외부를 중심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건물 내부에 들어갈 엄두는 내지 못했던 상황에서 청소노동자들은 생활관 담당 직원으로부터 내부 잔해 청소 지시를 받았다.

이종희 경북일반노조 한동대분회장은 “16일에는 관찰하는 정도로 안전 점검이 이뤄졌다. 그때 생활관 관리 팀장이 제일 많이 파손된 창조관에 부서진 타일 같은 잔여물을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괜찮다, 안 죽는다고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놓고 나가자고 했다”며 “잔여 청소하는 게 그리 급한 일도 아닌데 안전모도 지급하지 않고 청소하라는 게 너무 황당해서 노조 차원에서 항의를 하자, 나중에 안전모 구입해서 쓰라는 지시가 다시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동대 홍보실 관계자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15일 지진 이후 다음날 바로 안전 점검을 했다. 저도 안전모를 쓰고 들어갔고,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모두 안전모를 쓰고 들어갔다. 1차 점검 결과 이상이 없어서 청소도 했다”고 해명했다.

한동대 관계자 해명이 사실이라면, 현장 관리자가 안전 문제를 크게 인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한동대는 18~19일 기계 및 장비를 사용해 교내 전체 건물에 대한 안전 점검을 진행했고, 41개 건물중 GLC(언어교육원), GGDC(맞춤형교육센터) 2개 건물은 보수 및 보강 공사 완료시까지 사용제한 판정을 받았다.

지진이 일어난 당일에도 산업현장의 안전불감증 문제는 계속 지적됐다. 고용노동부 포항고용노동지청에 따르면 20일 오후 6시 기준으로 현재까지 지진 피해가 확인된 산업현장은 모두 5곳이다. 이마저도 16일부터 포항고용노동지청이 피해가 큰 북구 지역 현장을 다니며 확인한 결과다.

민주노총 포항지부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현장에서 지진 이후 후속 대책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현대제철, 시노펙스필터, 동일산업, 현대종합특수강, 삼원강재 등은 노사합의 후 작업을 중지하고 합동으로 안전 진단을 벌였다. 금속노조 포항지부는 각 사업장에 ▲주요건물에 대한 긴급 현장 안전진단 ▲자연재해에 따른 조업, 피난 관련 사측 매뉴얼 교육 요구 ▲여진이 계속될 경우 작업중지, 조업재개 기준에 대한 노사 합의 등의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는 산업현장에서는 대부분 작업중지 없이 공장을 가동했다. 대표적은 예가 포스코다. 포스코는 15일 지진 이후에도 일부 공정별로 설비점검 실시 후 작업을 그대로 이어갔다.

▲포스코는 15일 지진 이후에도 정상 가동했다. 고용노동부 포항고용노동지청은 회사의 자체적인 안전 진단 결과를 보고받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전락 민주노총 포항지부장은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상황파악도 하고, 안전진단과 지진 대피 매뉴얼 마련 등을 우리가 먼저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는 곳은 현장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안전진단을 한 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동지청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고용노동지청은 큰 사업장만 3천여 곳이 넘어 일일이 점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포항고용노동지청 산재예방지도과 관계자는 “진원지와 가까운 북구 쪽 공장을 다니며 육안으로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용자가 먼저 연락 온 곳은 없고, 현재까지 작업중지권을 발동한 사업장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