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연수아빠 오늘 포항 갔대” 지진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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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세 번 일 때문에 포항을 간다. 어제(15일)도 볼일을 보고 간단히 요기나 하자싶어 시외버스터미널 앞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창문이 사정없이 흔들리더니 바닥까지 흔들린다. 스펀지를 밟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순간 멀미가 날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웅성거렸고 하필 무거운 가게 문이 한 번에 열리지 않는 바람에 문이 안 열린다고 호들갑을 떠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경북 포항시 흥해읍 진원지 인근 상가. [사진 제공=포항시민 구찬모]
밖으로 나오니 근처 건물 안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있었다. 긴급재난문자는 쉴 새 없이 삑삑 울렸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불안함을 가중시켰다.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모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보인다. 나도 매스꺼운 속을 달래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느라 그렇게 한동안 밖에 있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포항이야? 괜찮아?” 포항 지진 소식을 듣고 바로 전화를 하신 것이다. 역시 자식 걱정하는 건 엄마밖에 없다. 나이 먹어도 역시 엄마가 최고다. 아내에게도 전화가 왔다. “여보, 괜찮아?” 역시 남편 걱정하는 것도 아내밖에 없다. 그리고 또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연수 오늘 유치원에서 포항에서 지진 났다는 소식 듣고 아빠 걱정된다고 엉엉 울었데 ㅠ’ 아차, 그 생각을 못했다. 아니 사실 그런 걱정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전화도 할 수 없는 딸아이가 많이 놀랐을 것이다. 괜히 아침부터 포항 가야 해서 아빠 바쁘니까 유치원 갈 준비 빨리하라고 다그쳤던 것이 후회된다.

나는 괜찮은데 아이가 괜찮지 않았다. 빨리 가서 나의 무사함을 확인시켜줘야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었다. 지진 여파인지 평소보다 많은 차가 거리로 밀려나왔다.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게 아이가 있는 미술학원에 겨우 도착했다. 미술학원 원장님이 안부를 물었다. “아버님. 포항 가셨다면서요. 괜찮으세요?” 옆에 있는 또래 친구들도 “연수아빠 오늘 포항갔다왔데~”라며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 딸아이의 걱정과 울음 덕분에 연수아빠가 오늘 지진이 난 포항에 있었다는 사실은 온 동네에 소문났다.

그런데 어쩐지 일인지 우리 딸은 생각만큼 반가워하지 않았다. 많이 놀라서 그럴까? 잠깐 멍하니 나를 보더니 안겨서 눈물을 글썽거린다. “아빠 많이 걱정했어. 보고 싶었어.” 나도 덩달아 눈물이 핑 돈다. “아빠 괜찮아~왜 울어?” 그렇게 아이는 오후 내내 속앓이를 하며 아빠 걱정을 했던 것이다. 기특하고 미안했다. 그렇게 한참을 꼭 끌어안은 채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다소 유치한 짠내나는 가족휴먼 드라마다. 그래도 해피엔딩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진이 있던 날 저녁에 술자리가 있었다. 다음날 수능시험 때문에 아내가 한 시간 늦게 출근한다는 사실에 여유와 술기운에 도취해 있었다. 그런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지진 때문에 수능이 일주일 밀렸다는 이야기 즉, 내일 정시 출근한다는 말이다. 속상하다. 갑자기 술맛이 뚝 떨어졌다. 적당히 마시고 집에 빨리 가야 했다. 내일 아침 등원도 역시 나의 몫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수능 당일 맞춰놓았던 수험생들과 부모들 심정은 어떨까?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지진 걱정에 불안해하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분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그래도 시험장 곳곳이 위험하다 하고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연기 결정은 현명한 판단이다.

포항 주민들도 나처럼 가족친지의 안부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했겠지만 사실 괜찮지 않다. 가족들의 걱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언제 또 지진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재난에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감은 삶을 위협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위험이 목전에 올 때까지 예보도, 예방도, 대응 방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눈으로 보든, 목소리를 듣는 확인을 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딸이 아빠를 만나 안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재난이 닥쳐도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이 수립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작년 경주 지진이 났을 때다. 다행히 온 식구가 집에 같이 있었다. 갑자기 집이 흔들리고 접시가 덜거덕거렸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간단하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집어치우고 나는 첫째 아이를 아내는 둘째 아이를 안고 무조건 계단을 이용해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별거 아닌 당연하지만 위험하고 절박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지켜야 할지는 분명하다. 딸에게 달려가는 내 마음, 수험생 부모의 마음, 지진 소식에 놀라 가족에게 전화하는 그 마음, 모두 다 같은 그 마음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걱정되는 사람, 궁금한 사람, 그 사람이 아빠 또 내일 포항을 가냐며 묻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그것도 참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