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기념사업 추진”···“김대중·빨갱이 이야기하지 마라!”

[현장] 구미시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식

14:55

“김대중 이야기 하지 마라!”
“빨갱이 이야기 하지 마라!”

분노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4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기념공원에서 구미시는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식’을 열었다. 전국에서 약 1,200명의 인파가 기념공원으로 몰려왔다.

▲11월 14일,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박정희 탄신 기념 숭모제가 열렸다.

기념공원 주차장에는 ‘애국동지회’, ‘해운대 하나포럼’, ‘민족중흥 대전광역시협회’,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참배단’,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각양각색 단체명을 새긴 관광버스가 늘어섰다. 관광버스는 식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속속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성조기를 손에 들거나, 태극기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기념식은 오전 9시 20분 숭모제부터 시작됐다. 전통 제례복을 챙겨 입은 남유진 구미시장이 엄숙한 얼굴로 제를 올렸다. 구미지역 국회의원 백승주, 장석춘 의원도 제례에 동참했다. 지난해 숭모제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김관용 경북 도지사도 숭모제 시작 후 약 20분 뒤 생가에 도착해 제례에 참여했다.

구미참여연대, 구미YMCA, 민주노총 구미지부 등 구미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도 비슷한 시각 기념공원에 도착했다.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박정희 유물 전시관 건립 반대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저분들이 올 수 있으니까···”, “그러면 저분들이 안 오시도록 해주시면 되잖아요” 황대철 구미참여연대 집행위원장과 김한섭 구미경찰서장은 기자회견 장소를 두고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시민사회단체는 애초 ‘박정희 유물 전시관’ 기공식장을 회견 장소로 공지했지만, 충돌을 우려해 현장에서 장소를 변경했다. 실랑이 끝에 기념공원 주차장에서 생가로 향하는 12칸짜리 계단에서 회견을 시작했다. “저희들이 기자회견 하는 건 200억을 들여서 하는 박정희 유물 전시관 반대 기자회견이다. 100주년 행사 방해할 이유 없다” 회견 사회를 맡은 최일배 민주노총 구미지부 사무국장이 발언을 마치자마자 음악 소리가 커졌다. “문재인한테 가서 항의해라!” 보수단체 회원들은 각자 마이크를 들어 소리 지르거나, 확성기를 이용해 음악을 틀며 회견을 방해했다.

▲구미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전 10시 ‘박정희 유물 전시관’ 건립 반대 기자회견을 박정희 기념공원에서 진행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확성기를 이용해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같은 시각 회견장으로부터 약 250m 떨어진 공터에선 ‘박정희 역사 자료관’ 기공식이 진행됐다. 오전 10시 25분께, 숭모제에 참석했던 남유진 시장, 김관용 지사, 백승주, 장석춘 의원을 포함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태환 전 국회의원이 기공식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이 흙을 한 삽 가득 퍼 앞으로 던지자 폭죽이 터졌다. 기공식을 마친 후 남 시장과 김 지사는 함께 기념공원 한 켠에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 사진·휘호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백승주 의원도 뒤따랐다.

“미국 방문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랑 동갑입니다” _ 기념식 관계자
“아, 동갑이에요?” _ 백승주 국회의원
“네, 금년에 100주년 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가뜩이나 혁명하신 분이 선글라스 쓰고 나타났어요” _ 남유진 시장

1961년 11월 14일 5.16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신분으로 미국을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앞에서 남 시장과 백 의원이 웃으며 이야길 나눴다. 짙은 선글라스를 쓴 박 전 대통령과 케네디 전 대통령이 환담하는 사진이 크게 걸렸다. 남 시장과 김 지사는 전시장 가운데 마련한 박정희와 부인 육영수 씨 입간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발을 옮겼다. 자유한국당 이철우 국회의원(경북 김천)이 뒤늦게 전시장에 들어섰다.

▲남유진 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태환 전 국회의원 등이 ‘박정희 역사 전시관’ 기공식 첫 삽을 뜨고 있다.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은 이들은 곧장 박 전 대통령 동상으로 향했다. 백승주, 이철우 의원이 동상 앞에 헌화하고 예를 올렸다. 남 시장과 김 지사는 동상 앞에 잠시 섰다가 기념식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보낸 화환이 기념식장 한편에 놓였다.

오전 11시 10분께 기념식이 시작됐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남 시장이 기념사를 위해 무대에 올랐다. “오늘 날씨가 굉장히 좋지요. 여러분, 저 하늘에 계시는 박정희 대통령님의 혼백이 오늘 아마도 햇볕도 쨍쨍 날씨도 이렇게 좋게 해주신 거 같습니다”라고 운을 뗀 남 시장은 참석자들을 일일이 소개하다가 마지막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화환을 보내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우~”, “빨갱이 새끼”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청중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축하 화환을 참석자들이 보고 있다.

2012년 박정희 탄신제에서 박 전 대통령을 ‘반인반신’이라고 지칭해 논란을 일으켰던 남 시장은 이날 박정희 기념사업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듯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남 시장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에 대 화해를 이뤄내자”며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다. 당시 제가 맡은 업무가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남 시장은 “김대중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까지 만들었는데, 현 정부는 다 결정된 기념 우표 발행을 아무 이유 없이 취소했다”며 “문재인 정부는 대화해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 우표를 반드시 발행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남 시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루셨던 한강의 기적을 넘어 낙동강의 기적을 만들겠다. 제가 앞장 서겠다”며 “웅도 경북을 이끌어 오신 김관용 지사님에게 많이 배우고 지혜를 구하겠다”고 경북도지사 도전 의지를 피력하면서 약 20분간 이어진 기념사를 마무리했다. 김관용 지사, 백승주, 장석춘 의원,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뒤이어 축사를 전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진행된 기념사는 이들의 기념사와 축사로만 한 시간이 채워졌다.

구미시가 준비한 공식 행사는 기념식을 끝으로 마무리됐지만, 참석자들 일부는 이때부터 새로운 ‘행사’를 시작했다. 보수단체 회원들 약 80명은 주차장에 모여 “문재인을 처단하라”고 소리쳤다. 낮 12시 25분께, 이들은 구미시청 방면으로 행진을 시작해 1시 40분께 주차장으로 돌아와 행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