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발생은 사회의 몫…장애학연구센터 설립 목표”

[인터뷰] 국내 첫 장애학과 개설한 대구대 조한진 교수

15:07

대구대학교(총장 홍덕률)는 일반대학원에 장애학과를 신설하고,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2017년 11월 10일까지)을 시작했다. 학부와 대학원을 통틀어 장애학과를 개설한 것은 국내에서 최초이다. 조한진(52)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설립을 주도했고, 장애학을 전공한 조성재(직업재활학), 장애학 도서를 번역하며 연구해 온 송홍일(영어영문학), 김성애 김건희(유아특수교육), 강종구(초등특수교육) 교수 등이 함께 이끌어 간다.

<뉴스민>은 조한진 교수를 만나 장애학과를 만든 배경과 목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장애학을 공부한 학자이자, 2006년 ‘장애학 특강’ 과목을 대구대에서 개설해 수업한 조한진 교수는 “개인의 결함을 보기보다는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 환경을 고쳐나가는 진보적 관점의 학문”으로 장애학을 소개했다.

장애를 적응,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조한진 교수는 사회복지학을 두고 “지원을 통해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는 학문”이라고 “제가 손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손상이 곧 장애는 아니다. 사회 환경을 만나면서 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면서 장애학과 사회복지학의 차이를 설명했다.

“석사부터 하고, 박사 과정 개설까지 해야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학연구센터도 대구대에서 만들면 좋겠다”는 조한진 교수는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장애학과 모집 과정에 많이 참여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아래는 조한진 교수와 인터뷰 전문이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국내에서 장애학과가 없었던 만큼 생소한 학문 분야인데요, 장애학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존 장애 관련 학문은 장애인을 치료의 대상, 교육의 대상, 재활의 대상, 교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그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결함을 보기보다는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 환경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 장애인 관련 학회를 가보면 당사자가 없어요. 장애인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전문가, 학자들만 많아요. 서비스 제공, 연구 과정에 장애인이 참여를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여성학이 여성복지하고 다른 점이 사회의 억압을 조명하잖아요. 장애학은 진보적 관점으로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죠.

장애인 관련 학문을 떠올리면 사회복지학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장애학과 사회복지학의 차이를 이야기한다면?
-내가 만약 빈곤한 사람이라면 나를 빈곤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로 보기보다는 빈곤한 사람에게 자원을 가져다주고, 이 사회에 적응해서 살게 하는 측면을 주로 보는 게 사회복지학이죠. 그런데 장애학에서는 ‘적응’이라는 말을 싫어해요. 장애 극복이라는 말도요. 제가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가 있었어요. 제가 손상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하죠. 그런데 사회를 만나기 전까지 장애는 아니에요. 수업하는데 교단이 높아서 못 올라가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 장애가 생기는 거죠. 교단이 낮거나 경사로가 있다면 장애가 아니죠. 손상을 가진 사람이 장애를 가지게 하느냐, 손상으로만 머물게 하느냐는 사회의 몫이죠.

장애학과를 개설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09년부터 추진했어요. 평택에 있는 국립복지대학교에서 추진을 시도했어요. 전문대학이었는데, 4년제 대학이 되면 장애학과를 만들어주겠다고 시민단체들과 약속했어요. 그게 잘 안되면서 추진이 좌절됐죠. 이후 서울시립대에서 장애학과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서울시장이 지시하기도 했는데, 다른 학과 개설 추진이 먼저 되면서 지지부진해졌죠. 그래서 제가 있는 대구대에서 해보자고 한 거죠. 그런데 장애 관련 학과가 많은 게 문제였죠. 굳이 하고 싶으면 전공으로 들어가도 되지 않느냐, 수도권에서 머니까 접근성 우려도 있었죠. 충분히 가능한 우려라고 봐요. 다행히 총장님이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주셨어요. 다학문을 결합하는 추세이기도 하고, 학교 정체성과도 맞다 판단한 홍덕률 총장님이 적극 추진하면서 개설할 수 있게 됐어요.

지금은 석사 과정만 개설됐는데, 박사 과정까지도 생각하고 계시는가요?
-석사부터 하고, 박사 과정 개설까지 해야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학연구센터도 대구대에서 만들면 좋겠어요. 장애 관련 연구가 너무 전문가 중심주의고, 관변 연구라는 느낌이 들어요. 장애인이 원하는 연구가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원하는 연구가 자꾸 이뤄지는 것 같아요. 장애학연구센터를 만드는 데까지 하고 나면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소명을 다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장애학을 연구하는 사람을 양성하고, 이를 통해서 바라는 변화가 있다면요?
-장애인 정책을 보면 겉으로는 아무 무제가 없어 보이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전제 자체에 문제가 많아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장애인등급제 있잖아요. 길 가다가 만나는 장애인을 붙잡고 물어보면 80%는 등급제 폐지를 반대한다고 답할 거예요. 등급제가 없어지면 자기가 받던 서비스도 없어지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거죠. 극단적으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 비장애인이 쓰는 수법 중 하나가 한정된 자원 안에서 장애인들끼리 싸우도록 길들이는 거죠.

선진국에 가면 장애등급제라는 게 없어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온 생활을 발표한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 (나는) ‘지체장애인 2급이다’라는 이야기를 쪽팔려서 못했어요. 사람에 등급을 매긴다는 자체가 반 인권적이잖아요. 그게 장애학이 가질 수 있는 시각이죠. 행정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전문가들이 장애인한테 잘 안 물어봐요. 비장애인 전문가 입장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전문가가 보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개입을 해요. 시간이 지나 전문가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면 잘됐다고 생각하는 거죠. 나는 하나도 바뀐 게 없는데 비전문가가 좋아졌다면 좋아진 거예요.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장애인의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11월 10일까지 신입생을 모집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7일 기준으로 16명이 신청했다고 해요. (웃음) 다행이에요. 어렵게 만들었는데 사람 모집 안 된다고 하면 망신이잖아요. 한 10일 동안 60개 기관에 전화를 걸었어요.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많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장애학을 공부하려고 한 게 아니거든요. 유학을 가려고 미국에 있는 대학을 검색하는데 어느 대학에서 장애 관련 과목이 많더라고요. 지원했는데 장애학과였어요. 저는 장애학 공부하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어요. 이전까지 저는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과 떳떳하게 경쟁해서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했어요. ‘실력을 쌓아서 이겨야지’라고 했었는데 장애학을 공부하고 나서 생각이 180도 바뀌었어요.

그 전에는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계단이 있고, 경사로가 없으면 기어서라도 올라가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런데 장애학을 공부하면서 계단이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러면서 ‘내가 문제가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제 몸에 있는 손상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됐어요. 많은 장애인이 자기 몸의 손상에 갇혀 있어요.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또, 장애인 활동가들이 열심히 이슈를 가지고 활동하잖아요. 그런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 싸우다 보면 논리가 부족할 때가 있어요. 주장을 할 수는 있지만, 논리가 뒷받침 안 되면 다른 국민들 설득하기 어렵거든요. 직접 공부하면서 정부와 싸울 수 있는 논리를 만들면 좋겠어요.

▲조한진 교수가 연구실에서 장애학과 개설 과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에게 지원하라고 요구도 하셨나요?
-네, 노금호 소장(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알아요? 그런 분이 들어오면 좋겠는데 학비 걱정 때문에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가난한 장애인 활동가들은 등록금 걱정을 할 수밖에 없어요. 장애인 당사자들은 학기마다 70만 원 지원하는데 그걸로는 부족하죠. 장기적으로 펀딩을 알아볼 생각이 있어요. 나이가 많다, 청각장애인인데 시설은 괜찮냐, 영어가 걱정된다는 문의를 받았어요. 나이는 문제가 안 되고, 장애인 학습 지원도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석사 과정에서 영어를 못 하기 때문에 안 뽑는다면 이건 아니겠죠. 장벽을 높이면 못 들어오잖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학습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지 않으면 누구든 들어오면 좋겠어요.

장애학과에서 공부한 다음 진출했으면 하는 분야가 있나요?
-정책 분야로 가면 좋겠어요. 장애학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가면 지방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달라지지 않을까. 대구경북 복지 정책이 많이 걱정되거든요. 희망원 문제가 아직도 해결 안 되고 있고…그리고 장애인 관련 기관, 복지관, 자립생활센터 좋아요. 장애학을 공부하고 나면 마인드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