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주최하는 ‘청년미술프로젝트YAP(YoungArtistsProject)’가 작품을 검열해 일부 작가들이 보이콧에 나섰다.
대구시가 주최하고 한국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회장 박병구)가 주관한 YAP는 사드 배치 논란을 다룬 영상 작품이 전시에 적합하지 않다는 권고안을 내면서 검열 문제가 불거졌다. 영상 <파란나비>의 박문칠 감독이 이 권고안에 보이콧을 선언했고, 윤동희, 김태형 작가 등도 30일 보이콧을 선언했다.
지난 10월 13일, 행사 조직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파란나비>와 <100번째 촛불을 맞은 성주주민께> 두 편이 행사 취지에 어긋난다며 작품 수정·교체를 권고했다. 또, 조직위 회의 이후 같은 날 열린 청년미술프로젝트 실무진 회의에서 박문칠 감독 작품 외에도 전(前) 대통령 얼굴이 포함된 설치작품이나 세월호를 언급한 작가노트 등도 전시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행사에 출품을 준비하던 작가들이 반발하며 전시 보이콧에 이르렀다.
또, 11월 7일 전시 시작을 3주가량 앞두고 작품 제한이 요청되는 상황에서 실무를 맡은 담당 큐레이터도 사퇴했다.
청년미술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매년 개최된 전시회로, 작품 판매를 위한 ‘대구아트페어’ 행사와 함께 ‘대구아트스퀘어’ 행사 중 일부다. 행사 조직위원회는 청년미술프로젝트 운영위원회(6명), 대구아트페어 운영위원회(6명), 조직위원장 총 13명으로 구성됐다. 청년미술프로젝트는 11월 전시 시작을 목표로 6월 말부터 추진됐다.
작가들은 조직위의 작품 제한 권고가 ‘검열’이며, 전시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한다. 김이삭 전시감독에 따르면 이번 전시 취지는 “사회적 예술(social artistry)을 통해 세계가 당면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에서 나타나는 물적, 심리적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불평등과 부조리, 소외와 무관심, 집착과 탐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문칠 감독은 “공모 형식으로 신청하지도 않았고 주최 측에서 연락이 먼저 온 행사다. 조직위원회에서 사드를 다룬 작품이 문제가 된다고 결정했다는데 검열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라며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태가 다시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정부의 과오를 넘어서려는 와중에 지역에서는 아직 변화가 멀게 느껴진다.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드로잉·설치 기법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얼굴을 만든 작품 <망령>도 문제가 됐다. 윤동희 작가는 <망령>을 통해 역사와 시대의 밝고 어두운 면을 보이려고 했는데, 이 작품 또한 부적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윤동희 작가는 “작품의 이미지나 크기, 공간 활용 계획을 미리 구두로 전하고 전면도 그림도 전달했다. 망령이라는 작품을 제외한다면 참여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라며 보이콧에 참여한 취지를 설명했다.
세라믹으로 바다의 수면을 재현한 작품 <바다 우로 밤이 걸어온다>도 운영위 회의에서 언급됐다. 이은영 작가가 해당 작품과 함께 작성한 작가노트에 ‘세월호’라는 단어가 언급됐기 때문이다.
이은영 작가는 “세월호가 언급됐는데 수정할 수 있냐는 요청이 들어와서 작가노트 수정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라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검열이 있다고 느꼈고, 작품에 대한 양심을 버리는 것 같았다. 다른 작가도 지지하기 위해 보이콧에 참여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대구미협이 위촉해 전시 실무를 맡은 큐레이터도 지난 18일 사퇴했다. 이 큐레이터는 “조직위원회가 열려서 <파란나비> 영상과 작품설명 노트를 가져갔다. 위원 대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 작품 외에 대통령 얼굴이 들어간 다른 작가의 작품도 문제라고 거론됐다”라며 “대구의 작가들과 협의하는 역할인데 의견 제시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시를 잘 도우려고 했는데 3주 앞두고 작품을 빼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전시를 계속해야겠다는 당위성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대구미협은 검열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조동오 대구미협 사무국장은 “행사 대원칙이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작품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조직위원회에서는 사드 문제는 정치를 반영하는 작품이고 대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다른 작품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권고안이 나왔다”라며 “세월호가 언급된 부분이나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조율할 수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그대로 전시를 진행하자고 이야기됐었다. 대구시는 모르고 있었고 작품에 대한 사전 검열은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양재준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 팀장은 “행사의 자율성을 주기 위해 대구시는 간섭하지 않는다. 일부 작품에 대해서는 주관하는 쪽이 작가와 협의해서 순화하는 방향으로 권고했다고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작품 ‘검열’이 불거지자 지역 예술가 300여 명도 30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정권에서 예술가들에게 블랙리스트 딱지를 붙여 검열을 자행하고, 지원을 무기 삼아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새 정부는 블랙리스트의 근절과 재발방지를 위한 민간위원회의 구성과 피해사례의 광범위한 고발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시국에 정치적 잣대로 예술작품의 교체나 수정을 지시하는 검열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에 반할뿐더러, 예술가의 자유로운 표현을 죽이는 한심한 작태”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사전 검열에 대한 대구미협의 사과 ▲주최한 대구시 입장 발표 ▲청년예술가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한편, 대구 아트스퀘어 행사에는 대구시 보조금 4억 원이 지원되며, 이중 청년미술프로젝트에 지원되는 보조금은 2억 3천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