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 전 딸아이 유치원에서 안내장이 왔다. 정부의 국공립유치원 지원확대 정책에 맞서 ‘집단휴업’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대충 뉴스로 들어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립유치원 지원확대, 부모의 선택권 보장 등을 구구절절 주장하지만 ‘왜’ 휴업하는지는 눈에 안 들어오고, 우리는 ‘어떻게’ 할까 고민만 깊어진다. 그래, 어차피 걱정해봐야 답은 없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고, 언제나 그랬듯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면 된다.
예정된 1차 휴원일은 9월 18일 월요일. 휴원일 전주 금요일에 아내는 유치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은 몇 번을 죄송하다고 말하며 양해를 구했고, 아내는 선생님도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해서 힘드셨을 거라며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집에서는 왜 아이들이 피해를 보느냐며 항의를 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왜 선생님이 양해를 구해야 할까? 정작 싸움의 주체인 원장님은 뭘 하실까? 왜 아이와 엄마, 아빠가 피해를 봐야 할까? 난처한 선생님 입장은 안쓰럽고 부모는 애가 탄다.
대망의 휴원일이 다가오니 우리 집도 이렇다 할 답은 없다. 하필 그날은 나도 일을 나가야 하고, 아내도 사무실 일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본가, 처가 맡기기도 여의치 않아 염치 불구하고 유치원 같은 반 친구 집에 하루 맡기기로 했다. 부모는 마음이 무거운데, 딸은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완전 신이 났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유치원 집단휴업 철회 소식이 들려오고 마침 유치원에서도 휴업을 철회한다는 단체문자가 왔다.
참 다행이다. 딸아이는 아쉬워하지만 우리는 한시름 덜었다. 근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얼마 있다가 철회를 번복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설마 정상 운영한다고 해놓고 또 휴원한다 하겠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막연한 기대를 해보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주말 내내 오락가락하는 휴원 소식에 신경이 쓰이고 속이 편치 않다.
요즘은 대개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 잘 보살피는 곳을 넘어 잘 가르쳐 줄 곳을 찾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보육에서 교육으로 넘어가는 큰 산을 넘는 것이다. 선택 가능한 방법은 계속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 병설유치원을 보내는 것, 사립유치원을 보내는 것 정도다. 어린이집을 계속 보내자니 온통 동생들만 있는 곳에서 심심하고 따분한 탓에 슬슬 흥미를 잃어간다. 병설 유치원을 보내자니 다자녀, 다문화 가정을 제외하고는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병설유치원은 교육적인 부분에 신경을 덜 쓴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아이가 뒤처질까 걱정도 된다. 그래서 다소 부담은 되지만 사립 유치원을 보내기로 했다. 다섯 살에 보내고 싶었지만, 돈 부담 때문에 여섯 살이 되어서야 말이다.
주변에 괜찮다는 유치원 몇 곳을 알아봤다. 영어유치원, 숲유치원, 생태유치원, 예술유치원, 체험을 많이 한다는 유치원, 장르도 다양하고 한다는 것도 많다. 여기저기 설명회도 찾아가 들어본다. 추첨한다는 곳, 선착순 모집을 한다는 곳, 사전 신청을 하면 된다는 곳, 대학입시도 이렇게 치열하지는 않을 듯싶다. 하지만 결국 돈이 문제다. 인기가 많을 곳일수록 입학금과 수업료가 비싸다. 입학금, 가방, 체육복, 원복, 준비물비 등 입학금 2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정말 웬만한 대학 입학금보다 훨씬 비싸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민 끝에 동네에서 전통 있다는 사립유치원을 선택했다. 그나마 저렴한 백만 원 정도의 입학금을 내고 말이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수업료, 영어학습비, 셔틀버스비 등을 내야 한다. 거기에 종일반을 하면 ‘방과후 특성화 수업’을 진행하여 추가로 부담해야 할 돈이 따로 있다. 종일 유치원에 있는데 아무것도 안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로봇과학, 창의미술, 발레, 영어심화(일곱 살이 심화학습을 하면 뭘 할까?) 등 요즘 아이들은 배울 것도 할 것도 참 많다. 그중 일부만 하는데도 월평균 사오십만 원 정도의 돈이 든다. 분기, 반기마다 수십만 원의 고지서가 날아올 때마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그래도 어쩌겠나. 아이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나에게, 많은 부모에게는 국공립유치원 지원과 확대가 절실하다. 둘째 아이도 유치원에 보내야 하고 말이다. 국공립유치원이 많이 생기고 정원이 늘어나 문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좋은 프로그램과 교육과정으로 국공립유치원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줬으면 좋겠다. 사실상 사교육인 유치원도 공교육 울타리에서 국가가 책임졌으면 좋겠다. 돈 걱정 없이 우리 아이를 키울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재산권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사립유치원의 ‘집단행동’을 마냥 욕할 수만은 없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그동안 아이 키우는 것을 부모 책임으로만 돌리고 수수방관했던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허가 내주며 사립유치원을 비정상으로 확대했던 정부 탓이다.
하지만 그동안 사립유치원 운영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업자’ 아니라 ‘교육자’로서 면모를 더 보였어야 했다.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사립유치원을 보내는 부모 부담을 줄였어야 한다. 과연 가방 하나에 십만 원, 원복과 체육복 수십만 원이 상식적일까? 외부 강사를 불러 진행하는 프로그램 비용을 정말 줄일 방법은 없었을까? 그래도 부득이 집단휴업에 들어가야 한다면 사립유치원이 교육부와 대화와 협상을 원하듯 애먼 선생님이 아니라 원장이 직접 학부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그렇게 휴원소동이 끝나고 유치원에서 또 안내장이 왔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유아교육평등권을 위해 앞으로 많은 관심을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대한민국 어린이는 평등하게! 무상교육 실현!’이라는 슬로건에 강조표시를 해놓았다. 순간 깜짝 놀랐다. 참 마음에 드는 급진적인 주장이다. 유치원이 아니라면 빨갱이라고 욕먹을지도 모를 이야기다.
그렇다면 돈 없어서 유치원 못 가는 일은 없어야 하고, 어떤 유치원을 가는 것으로 줄 세우는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울며 겨자 먹기로 미친 듯 치솟는 유치원비 감당하며 갈팡질팡하는 엄마, 아빠들 부담도 좀 줄여주고 말이다. 유아교육평등권 보장을 위해 국공립유치원 확대를 위해 함께 해주시라. 이번엔 내가 사립유치원 원장님들께 양해를 좀 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