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열린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에서는 2018년 기준 기초생활보장 수급기준선이 결정됐다. 전년 중위소득 대비 1.16%가 상승해 4인 가구 기준 451만 9천 원으로 결정됐다. 기초생활보장제도(아래 기초법)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생계급여의 경우 기준 중위소득의 30%를 수급기준선으로 잡고 그 이하의 소득을 가진 사람에게 급여를 지급한다. 이를 1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올해 49만 5천원에서 50만 1천원으로 올랐다. 4인 가구 기준으로는 135만 6천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16.4%가 오를 때,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준은 고작 1%가 오른 것이다.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수급비 상승률, 역대 최고 상승 기록한 최저임금과 대비
이와 같은 낮은 상승률에 대해 복지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중위소득은 지지난해 중위소득에 과거 3개년 중위소득 평균 증가율을 2회 반영하여 결정하는데, 경기침체 등으로 2018년 중위소득이 2017년보다 1만5천 원 감소했다. 수급자의 실질적 생활수준 보장을 위해 15년 대비 16년 중위소득 실측값 증가율인 1.16%를 반영했다.” 즉, 중위소득 계산 원칙에 따라 산출된 값이 작년보다 낮아져 급여도 함께 적어지는 결과가 나오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전 연도의 증가율을 적용해 보완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4월 발간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9%로 예측된다. 2017년 6월 현재 소비자 물가지수는 작년 동월 대비 2.2%가 상승했다. 중위소득이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보완했다고 하지만, 결국 최저생계비는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나온 것이다.
지난 7월 17일, 최저임금위원회(아래 최임위)는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한 7530원을 2018년 최저임금으로 결정했다. 전년 대비 16.4% 오른 금액이다. 이와 같은 최저임금 상승은 물가 상승을 추동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수급자는 고작해야 한 달에 만 원 남짓 더 받게 된다. 빈부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기초법공동행동)은 2일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중위소득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저생계비 계측 조사 시행 이후 2015년 7월 기초법 개정 전까지 최저생계비 평균 인상률은 3.90%였는데, 급여 기준이 중위소득으로 변경된 이후 인상율이 2.30%로 도리어 떨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복지부가 밝힌 인상율 하락의 이유인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최저생계비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기초법공동행동은 “누구도 한 달 50만 원으로는 살 수 없다”면서 “중위소득 결정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급권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적정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최저생활 보장이라는 기초법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를 중생보위의 구조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최저임금이 역대 최고 상승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 원 도입’이라는 목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협상 테이블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역학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수급비가 결정되는 중생보위는 정치가 없는, 너무나 차가운 ‘산술’의 테이블이다.
지난 2014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가 진행될 당시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중생보위 운영 투명성 강화 등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진행하는 활동가. 동일한 문제는 3년이 흐른 현재도 유효하다.
-전문가, 공무원 일색 중생보위…”빈곤층 목소리 반영할 통로가 없다”
최임위는 공익위원 9명, 사용자 위원 9명, 그리고 근로자 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이 결정 구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보위에는 수급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위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초생활보장법 제20조 3항에 따르면, 중생보위 위원은 공공부조나 사회복지 학계 전문가, 공익 대표자, 그리고 공무원을 대상으로 복지부 장관이 임명한다. 올해 중생보위 구성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교수나 연구원, 또는 변호사 등이다. 이러한 구성은 중생보위가 여덟 차례 꾸려지는 동안 대부분 비슷한 양상이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중생보위 회의는 급여 수준이 결정되는, 빈곤 수급 계층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회의인데 이들의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없다”라고 토로했다. 김 국장은 “중생보위는 중위소득의 하락과 이에 따른 급여 수준 동반 감소를 보정할 수 있는 권한과 역할을 가진 중요한 기관”이라며 “그러나 빈곤층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복지부 담당자는 “중생보위 위원회 구성은 기초법 규정에 따르는 것일 뿐”이라며 “정부의 각종 위원회는 성격에 따라 구성이 다 다르다. 이는 정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마련한 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임위에서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이 대표로 들어간다면 중생보위에는 납세자와 수급자 대표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인가. 그 기준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김 사무국장은 이러한 발언은 면피용일 뿐이라며 “위원회 구성은 복지부에서 담당하는 것이므로, 법으로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수급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나 단체 대표자를 위촉하지 않은 점이 분명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지난 2월, 기초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구성을 기존 16명에서 18명으로 확대하고, 수급권자를 대표하는 단체 소속인을 3명 이내로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원의 ‘자율적 발언’ 보장?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국민은 알 수 없다
이와 함께 회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는 ‘밀실 회의’라는 지적도 있다. 중생보위 회의는 속기록이 작성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의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 형식 이외의 회의록이 공개되지도 않는다.
이는 다른 위원회에 비하면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우 개별 위원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담은 속기록을 작성하여 공개하고 있다. 또한, 일반 시민의 방청도 허가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최임위에서도 제기되었다. 최임위는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어 중생보위에 비해 더 많은 정보가 전달되고 있음에도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참여연대는 2015년 7월 ‘문 닫고 회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제목의 이슈리포트를 통해 최임위의 폐쇄적 회의 구조를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 기관의 한 형태로 각종 ‘정부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으나, 역할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운영 투명성, 위원 구성의 적정성, 결정의 타당성과 공정성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드러나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국민의 알 권리와 투명한 운영을 위해 회의 속기록 공개, 공개 방청 허용 등을 요구했다. 이는 중생보위 운영에도 꼭 들어맞는 비판이자 요구안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만약 어떤 위원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모두 공개된다면 누가 위원을 하려고 하겠나”라며 “이를 공개할 경우 위원들의 의사 발언이 위축될 것이 우려된다”라고 회의 비공개 원칙에 관한 입장을 전했다. (기사제휴=비마이너/최한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