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원폭 피폭 2세로 선천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으로 세상을 떠난 고 김형률씨의 10주기를 앞두고 최봉태 변호사가 기고 한 편을 보내왔다.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4일까지 뉴욕에서 열린 핵 비확산조약 재검토 2015년 대회 (2015 NPT Review Conference)에 참석한 수기다. 최봉태 변호사는 원폭 피해자의 정의 회복을 위해 원폭 피해의 진상 규명과 가해자의 사죄가 필요하다며, 제도적으로는 관련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4일까지 뉴욕에서 열린 핵 비확산조약 재검토 2015년 대회에 참가하였다. 정식명칭은 2015 NPT Review Conference of the Parties to the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from 27 April to 22 May 2015 at United Nations Headquarters in New York)이다.
나는 이 정식 대회 이전에 열린 NGO 대회부터 참가했다. 참가하게 된 경위는 원폭2세 환우회 초대 회장인 고 김형률 씨 부친인 김봉대 고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김형률 씨가 살아 있을 동안에 하였던 여러 호소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형률 씨는 살아생전에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좌우명으로 원폭 피해자들의 호소를 통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염원하였다. 김형률 씨의 2005년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과 참여연대가 참여단체로 함께 했고,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심진태 합천지부장, 김봉대 환우회 고문과 함께 참가했다.
4월 24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뉴욕의 쿠퍼 유니온에서 등록이 시작되었고, 6시 반부터 개막식과 연설이 시작되었다. 개막식 다음 날인 4월 25일에 원폭 피폭자들의 호소기회가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심진태 합천지부장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74만 명 피폭자 중 10% 이상이 한국인 피폭자이며, 2,650여 명의 한국인 피폭자 생존자들은 아직도 일본 정부의 차별을 받고 있으며, 일본은 이 차별을 폐지하여야 한다고 호소를 하였다. 또한, 미국 정부는 한국인 피폭자를 포함한 피해자들에 대해 책임져야 하지만 미국 정부는 아무런 사죄 없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미국 정부를 성토하였다.
그러면서 한국인 피폭자 평균연령이 81세인데, 죽기만을 기다리는가 하고 호소하며 미국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였다. 아울러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특별법제정운동을 추진 중인데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조사라도 제대로 하고 싶고 합천에 평화공원을 만들어 위령비를 세우고 싶다고 발표하였다.
김봉대 고문은 2005년 아들이 사망하였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검은 넥타이를 매고 단상에 올랐고, 단상에서, 그동안 원폭 2세 환우회가 해 온 활동을 소개하며 미국, 일본, 한국 정부가 원폭 피해의 유전성을 불인정하고 있는데 나의 아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며 미국 및 일본 정부에 대해 사죄 배상을 요구하며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를 해야 하며, 미국 정부에 우리들의 억울함을 전달해 달라고 절절히 호소를 하였다.
그날 오전 11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분과회의가 있었는데, ‘전 지구 원폭피해자들의 평화 만들기’라는 제목으로(Global Hibakusha and Creative Peacemaking) 원폭피해자들이 집중적으로 의견진술을 하였다. 야스이 마사카 ,도시키 후지모리 등과 함께 김봉대 고문이 다시 연설했다. 김봉대 고문은 아내와 아들을 대신해 왔으며 처는 6세 때 피폭당했고, 아들인 김형률은 2005년 선천성 면역 글로빈 결핍증으로 사망했다고 호소를 하였다. 아들의 한을 풀기 위해 미국의 핵 사용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겠으니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소송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도 했다.
김봉대 고문과 함께 여러 명의 패널들이 발언을 하였는데,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이 있다. 미국 사회에서 히로시마를 기억하고 평화를 상상하는(Remembering Hiroshima Imaging Peace)단체의 소개가 있었는데, Tayor Hennessee, Ann Rosenthal, Jo Schlesinger 세 여자분이 나와서 예술과 교육을 통해 피폭자의 가치를 기리는 것이었다. 만약 미국에서 소송이 진행되면 우군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4월 26일에는 일요일이었는데 오전에 UN 출입증을 교부 받고 오후 2시부터 유니온 광장에서 유엔 근처까지 거리행진이 있었다. 각국에서 온 평화운동가들이 각자 만든 현수막과 유인물을 들고 행진을 하였는데 거리의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이때 김봉대 고문은 고 김형률 씨의 투병 사진을 걸개로 만들어 호소했다.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한국 측 참가자들은 워싱턴으로 가서 아베 일본 수상의 방미에 대한 대응 활동을 하였다.
아베 총리에 대한 미국 의회 연설은 어느 모로 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미 의회에서 2007년 HR121 결의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연설기회를 준다는 것은 모순이고 의회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나는 미국이 이런 기회주의적 근성을 버려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다. 아울러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그 해결을 통해 일본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일본에게도 도움되는 것이므로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해결하여 동아시아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자고 호소를 하였다.
워싱턴에서 돌아온 후에 NPT 재검토회의에 본격 참여를 하였는데 주로 핵피해자 관련 행사에 집중하였다.
5월 1일 오후 3시에 유엔본부 대회의실에서 시민사회 프로젠테이션이 있었다. 피스보트의 가와사키 상이 진행을 맡았다. 이 때 가와사키 상은 올해가 피폭 70주년이며 피폭자 스스로 이야기를 듣는 최후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말로 행사를 시작했다. 4인 페널리스트(세츠코, 히로시마 시장, 나가시키 시장, 다니엘 베라노)로부터 발언이 시작되었다.
세츠코 상은 히로시마 위령비에 대해 미국을 가해자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철학적으로 인류 사명을 기리는 것이며 이러한 피폭자의 바램에 대해, 마음을 열고 피해자들의 말을 들을 것을 호소하였다. 아울러 일본은 피폭을 한 유일한 나라이며 피폭에 대해 발언을 의무가 있는 나라라고 주장하였다.
이어 마츠이 시장(히로시마 시장)은 먼저 지진을 당한 네팔 피해자에게 위로의 인사를 전하면서, 70년 전 피폭의 실상을 보면 핵무기는 절대악이며 70년에 걸쳐 피폭체험을 살려 즉각 핵폐기를 하자고 호소하였고, 평화시장회의를 설명하며 핵의 위협에 의한 안전 보장에서 벗어나 평화적 안전보장을 호소하였다.
이어 다우에 시장(나가사키 시장)도 70년 전 나가사키 피폭을 당한 사실과, 피폭자들이 평균 80세이며, 피폭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핵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였다. 그럼에도, 직전 대회의 호소가 실현되기는커녕 냉전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며, 미국 러시아가 핵무기 삭감 노력을 가속화할 것을 호소하였다. 아울러 핵 우산 국가들은 합의된 서약을 준수하도록 하고, 비핵 지역의 설치 등 역으로 비핵 우산의 확대를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북한 핵 문제해결을 위해 당사국인 한국과 북한의 노력을 촉구하였다.
다니엘 베라노 씨는 핵무기 금지를 향해 걸어 나가야 하며 조약으로 금지하는 법적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런 주장에 대해 나는 현장에서 질문을 하였는데 마침 히로시마시장은 자리를 비웠기에 나가사키 시장에 대하여 하였다. 질문으로 시모다 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투하가 국제법적으로 위법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아는데, 그 입장 변화가 있는가를 물었고, 일본 피폭자들이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미국에 대한 제소를 통한 책임 추궁에 어떤 입장인지를 질의하였다. 이에 대해 나가사키 시장은 국제사법재판소의 위법판단을 소개했고, 일본인 피폭자들의 원호법 제정운동을 설명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소송은 의지가 별로 없는 듯하다고 답변했다.
패널 시간이 끝난 후 그 외 참가자들의 토론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심진태 지부장은 다시 일본 정부 차별 철폐, 미국 정부의 사죄, 원폭피해 유전성을 호소하며 원폭2세 환우회원 1,300여 명이 그 살아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에 대한 사죄 요구, 한국에서 특별법 제정운동,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한국인 피폭자 배상을 받을 것, 일본의 역사 왜곡 자제할 것을 호소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미국 내 인권변호사를 만나고 싶다며 도와 달라고 호소를 하였다. 미국 내 소송은 고 김형률 씨의 생전의 목표였다. 하지만 원군이 되어야 할 일본인 피폭자들과 다른 참여자들의 미지근한 반응을 보고 많이 실망을 하였고, 마지막 기회인 5월 4일 평통사와 참여연대가 준비한 사이드 이벤트에 마지막 기대를 걸기로 하였다.
5월 4일 오전 10시 유엔 본부 엔지오룸 C회의실에서 한국인 피폭자 문제 사이드 이벤트가 열렸다. 먼저 비디오를 상영했고, 이어 내가 발표했다. 제목은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정의를 회복하자는 것인데, 먼저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양적으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 10명 중 1명 이상이 한국인이고, 사망자 6명 중 1명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지적했다. 질적으로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강제동원, 피폭, 방치의 3중의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원폭 투하국 혹은 침략전쟁 전범 국가 중 어느 쪽으로부터도 사죄 및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어 제국주의 및 핵의 2중 피해자로 방치된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다음으로, 원폭피해와 관련된 규범적 문제를 설명하였다. 히로시마 나가시키에 대한 원폭투하는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 무차별 폭격이며 독가스이상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하는 위법한 전범 행위라고 그 위법성을 논한 뒤, 한국과 일본의 주목할 만한 사법적 판단을 설명했다.
즉, 한국 헌법재판소는 2011.8.30. 결정을 통해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에 대해 노력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부작위는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판단했는데 위 같은 날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으로 판단된 후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당국자간 교섭을 진행 하는 중인 것을 고려하면 일본 정부와 같은 교섭을 하여야 할 법적 의무가 현재 생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2007.4.27. 판결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처리된 전쟁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 실체법적으로 불소멸하였다고 판단해 원폭피해자들의 청구권처리가 향후 과제가 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서 보면 이 역시 일본 헌법위반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 및 일본의 원폭피해자에게 정의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는 양국 정부의 태도는 미국 중심의 핵 질서를 유지 강화시켜 현재와 같은 무법천지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이번 대회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피폭자들의 호소에 대회 참가자들조차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한데, 원폭피해자에게 정의를 돌려주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비핵화 논의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다음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정의회복 순서를 이야기했다. 우선 진상규명이 시급하다. 원폭을 투하하게 된 경위, 원폭피해에 대한 진상규명 특히 유전성에 대한 역학조사, 원폭투하 사망자 수, 원폭 생존 피해자의 후유증, 원폭제조 및 사용 등. 또한 이득을 본 기업조사도 필요한데, 우선 관련 자료들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 다음 순서는 사죄다. 사죄를 받기 위해서는 원폭투하가 당시 국제법에 비추어 위법한 것이었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정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재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죄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행동으로 사죄에 걸맞은 조치가 필요하다. 인류를 위해 핵무기의 점진적 감축과 완전한 폐지를 위한 로드 맵이 나와야 하며 이와 아울러 가칭 원폭피해자 정의재단이 출범해야 한다. 이 재단에 미국과 일본 정부는 물론 미국 핵무기제조기업과 일본 전범기업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의회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미국 정부나 핵무기제조 책임기업이 그 책임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 이외의 방법으로 정의를 회복시킬 방법은 없고,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여론화도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아울러 재판은 재판대로 하고, 미국 내 소송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그 다음 문제다. 원폭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는 자리를 조직하여 일단 원폭피해자의 참상을 공유하고, 주권자인 미국시민들이 의원을 통해 결의안 혹은 법률을 제정하여 원폭피해자 정의재단을 발족 시킬 것을 호소하였다.
끝으로 인간의 숭고한 정신은 인간이 만든 어떤 무기보다 강하며, 원폭피해자에게 정의를 돌려주는 길에 힘을 합하여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내 발표 후에 김봉대 고문과 심진태 지부장의 발표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심진태 지부장은, 33개국 피폭자 연대 단체를 만들고, 미국 내 제소를 위해서는 미국 국적 피해자를 추동하는 것이 필요하며, 미국도 피폭자 담당자를 정하여 이 문제를 책임있게 다루어야 하며, 유엔도 적극 관여하라는 내용의 주장을 했다.
우리들의 발표가 끝이 나고, 참석을 한 사람들의 질의 응답이 있기 전에 존 김 미국변호사의 미국 제소에 대한 법률적 설명이 있었다. 존 김 변호사는 아다치 변호사와 약 10여년 전에 이 문제로 의견을 나눈 적이 있어 당일 행사장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김봉대 고문과 심진태 지부장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원하던 미국 제소에 대해 의지를 가진 미국 변호사를 만난 탓에 희망을 다시 품게 되었다.
오전 발표를 마치고 심진태 지부장과 김봉대 고문은 존 김 미국변호사와 유엔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미국 제소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 뉴스를 검색해 보니, 한국 원폭피해자문제가 전후 70년 만에 처음 유엔에서 제기되었다고 보도되었다.
핵무기가 없어져야 하는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핵전쟁으로 인해 억울한 원폭피해자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원폭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고 정의를 회복하려고 하는 것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피폭자들의 의무이기조차 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의무를 목숨을 걸고 한 사람이 고 김형률 씨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꿈이 이번 뉴욕 본부에서 아버지인 김봉대 고문과 심진태지부장을 통해 다시 미국에서 싹을 틔운 것이다. 그 싹이 무럭무럭 자라 핵으로 인해 삶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고 김형률 씨의 고귀한 소원이 조속히 실현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