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북한 ICBM급 미사일 발사 실험 이후 보수 언론이 일제히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정책 흔들기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환경영향평가 생략을, <조선일보>는 “공포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한술 더 떠 전술 핵무기 운용을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사태 초기부터 사드 배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고, 집권 이후에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이달 6일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을 통해, 대화로 남북 간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은 대체로 사드 배치가 한국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했다. 2016년 7월 정부의 성주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후 사드 배치 결정은 “졸속 결정”이며,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비판했다. 19대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사드 배치 문제를 “다음 정부에 넘겨야 한다”며 ‘전략적 모호성’ 입장을 취했다. 그러다 이달 6일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며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했다. 북핵과 사드 문제 해결을 함께 꾀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27일 휴전협정 64주년을 맞아, 이날을 기점으로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한다면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바로 다음 날 이뤄진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문 대통령이 정한 북핵 문제의 임계치(redline)를 넘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드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나서는 건 우려스럽다. 우리가 ‘베를린 구상’을 통해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나선다고 해서 북한이 오랜 기간 공들인 ICBM급 미사일 개발을 즉시 포기할 거라 생각진 않았을 거다. 다시 강경 대응에 나선다면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답습하게 될 우려도 있다. 더구나 사드는 ICBM에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게 자명하다.
보수언론은 이 틈을 타 문 대통령에게 대화보다는 군사적 대북 압박을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31일 사설 “北 ICBM의 궁극적 표적은 워싱턴 아닌 서울이다“에서 “북 ICBM은 표면상으론 미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 노리는 것은 우리”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북한과 미국이 직접 협상하는 상황이 온다면 “평화협정이란 이름 아래 한·미 동맹 종료, 주한 미군 철수나 사실상의 무력화가 포함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공포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핵 피해 가능성을 무릅쓰고 우방을 돕기는 어렵기 때문에,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반입과 핵사용 결정권의 한·미 공유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중앙일보>도 사설 “사드 신속 배치하고 정치화하지 말기를“에서 “(국방부는) 4대의 잔여 발사대는 환경영향평가 이후 배치하겠다고 했다. 현재 경북 성주기지에 있는 사드 발사대 2대는 임시 배치로 규정했다. 그런데 북한이 ICBM을 발사하자 나머지 발사대 4대를 추가로 임시 배치한다고 발표 15시간 만에 번복했다”며 “북한의 ICBM 발사는 사실상 예고된 것이었는데 사드 부지 환경영향평가 결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행태를 보면 앞으로 사드 부지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부정적이면 사드를 배치하지 않을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어 “환경영향평가법상 ‘군사작전이 긴급한 경우 환경영향평가를 제외할 수 있다’(23조)는 규정을 적용할 수도 있다. 사드 배치를 정상화하고 더 이상 정치화하지 말기 바란다”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임시 배치”라고 여지를 남겼지만, 보수언론이 나서서 사드 배치를 굳히려는 모양새다. 지난 정부에서 개성 공단 철수, 성주 사드 기습 배치에 이르는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는 동안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계속됐다. 문 대통령은 사드는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초심을 버리고 보수 언론의 주문대로 나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