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는 블라인드 교섭을 통해 2014년 6월 29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아래 삼성서비스지회) 임금 및 단체협약(기준협약)을 체결했다. 염호석 열사 정신 계승과 기준협약 체결로 대표되는 ‘노조인정 투쟁’으로 열린 비공개 1대1 교섭 결과는 ‘원청이 개입한 교섭’이었다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민주노조 깃발’ 쟁취 이후 삼성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을까.
원청이 책임지지 않는 ‘비공개 교섭 결과’
기준협약 체결 직후 삼성서비스 협력사들은 노사 합의서 이행을 위한 후속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합의 1주일 내에 전국 각 지역 센터별 교섭으로 단체협약을 마무리’하기로 했지만 텅 빈 약속에 불과했다. 사측의 합의 불이행, 단체협약 위반은 7개월이 지난 올해 2월까지 논란이 됐었다.
삼성서비스지회는 올해 1월 기자회견에서 급여산정이 미뤄지고 15여억 원의 임금체불, 차량유류비 실비 미지급, 공구 미지급, 경남 진주와 마산 등 협력사 폐업, 조합원 징계 등 ‘단체협약 파기 수준’이라고 밝혔다. 올해 2월엔 ‘합의 불이행 및 단체협약 위반과 임금체불 등 부당노동행위의 배후조정자’가 ‘경총’이라며 ‘피해는 고스란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누적된다’고 주장한다.
업체폐업이 자행된 지역센터 노조원들이 다시 복직하기도 했지만 삼성 사측은 단체협약 위반, 일상적인 노조 무력화 시도를 계속했다. 최근엔 울산과 천안에서 드러났다. 삼성서비스 울산센터에선 ‘노조파괴용 위장폐업’, ‘노조탈퇴 목표’ 사측의 ‘조직 안정화 방안’ 문건, ‘섬으로 데려가 노조탈퇴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증언이 폭로됐다. 천안센터는 관리자가 상급자에게 ‘생일선물로 노조탈퇴서를 드리겠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천안과 쌍용, 아산센터 3곳은 조합원의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취업규칙 개정이 시도됐다.
개별화 되는 저항
삼성서비스 천안센터가 비조합원의 동의만으로 1개 항을 삭제하고 15개 항을 신설하는 ‘노조탄압용’ 취업규칙을 개정하자 한 조합원은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조합원 정우형 씨는 취업규칙 개정 통보 다음날 5월 27일 새벽 2시경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정씨는 다행히 새벽 6시경 청소 아주머니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생명을 건진다.
이와 관련 삼성서비스지회(지회장 직무대행 라두식)와 천안센터(협력사 삼성TSP(주) 대표이사 이제근)가 6월 18일 △취업규칙 변경 철회 △월 1회 천안, 아산센터 대표 참여 노사간담회 실시 △해고된 조합원 A씨 9월 1일부로 정규직 취업 △노사 양측 민형사상 소송제기 및 불이익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재발방지 노력에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금속노조는 6월 22일 금속노동자 인터넷신문에 합의내용을 공개했다.
하지만 정씨와 부인 이인숙 씨는 노사합의 바로 다음 날 6월 19일부터 천안두정센터와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 두 곳에서 현재까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정씨는 노조 측 요구안 가운데 노사합의에서 빠진 △노조 탄압 책임자 처벌과 이제근 사장의 사과 △정우형 조합원의 심리치료 지원 및 치료 기간 생활임금 보장 및 치료비 전액지원을 요구한다고 했다.
부인 이씨는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됐다. 사측의 탄압, 자신과 동료를 위해 선택한 저항이 매도당했다고 느낀 남편을 보면서 속상하고 화가 났다”면서 “남편 곁을 지켜주는 동료가 없어 내가 계속 옆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을 중단하고 매일 경기도 평택에서 서울 삼성 본관으로 올라가 아침 9시부터 오후까지 1인 시위를 한다.
정씨에 따르면, 삼성서비스 천안센터 사측은 합의 이후 정씨의 1인 시위에 대해 취업규칙(명예훼손) 위반으로 7월에만 3차례 경고장을 발부했고, 7월 한 달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노조의 얼굴
정씨의 목숨을 건 저항으로 열린 노사 교섭과 합의였음에도 그는 왜 홀로 투쟁하는 것일까. 노사합의에 왜 정씨 관련 합의는 따로 보이지 않는 걸까. 정씨가 7월 중순께 본인 명의로 연대를 요청하며 공개한 문서에서 관련 상황이 드러난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정씨가 ‘사측에게 퇴사하며 1억 원을 받으려고 한다’ 등 소문이 돌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 가운데 6월 18일 노사합의가 이루어졌다.
정씨는 7월 21일 입장에서 “사측의 탄압은 거세지기만 한다. 경고장을 남발하고, 리스차량 GPS를 통해 조합원들을 감시한다. 이미 투쟁을 시작하기 전에도 내게는 하루하루가 사측과의 싸움판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밝히지만 나는 노조탄압 책임자의 처벌이 누락된 합의에 동의한 적이 없다. 책임자 처벌은 다른 요구와 교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나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때문에 함께 싸우자고 (지회에)제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지들이 함께 투쟁하지 못하겠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에 나 혼자라도 싸우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 마음이 어렵고 답답하여 한 소리를 가지고 내 의사를 존중해서 투쟁에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삼성서비스지회 집행위원회가 입장을 정한 것은 너무한 처사이다”며 입장 ‘재고’를 요청했다.
문서에 따르면, 삼성서비스지회 집행위원회는 7월 18일 ‘정우형 조합원의 당면 요구 등에 대한 입장’을 내고 “(1)1억설 유포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금속노조 주최의 간담회가 제안되면 이에 적극적으로 응할 것 (2)향후 정우형 조합원의 투쟁에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위 내용을 “각 분회에 공유해주기 바란다”면서 “정우형 동지가 천안분회 안에서 같이 함께하길 바라고 많은 시간 대화와 설득과정을 보내며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치유하기 힘들 정도의 상처였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취재에서 삼성서비스지회장 직무대행은 메시지도 남겼지만 전화연락이 이루어지 않았다. 한 부지회장은 “정씨의 투쟁 관련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으며, 지회의 공식 입장과 계획은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한편, 정씨는 7월 17일 금속노조에 근거 없는 소문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간담회와 연대투쟁을 요청했는데, 금속노조 담당자는 취재에서 “정우형 조합원과 7월 한차례 의견을 나누고 확인했다”면서 “정씨가 1억 요구설, 퇴사설 등에 대해 요청한 간담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 요구 빠진 노사합의 이유 찾을 수 없어
정씨 관련 노사합의 과정에서의 내부갈등은 감정까지 얽혀 복잡한 듯 보이지만 ‘삼성서비스지회가 정씨의 저항으로 개최된 교섭에서 정씨의 요구와 동떨어진 노사합의를 했다’는 것이 확인된다. 삼성서비스지회 집행위원회 입장에서도 드러나듯 삼성서비스지회 교섭단은 ‘의견일치안’이든 ‘정우형 조합원에 대한 절충안’이든 정씨가 이를 수용할 것을 6월 16일 주문했다. 삼성서비스지회는 이 과정에서 정씨가 자신 부분은 제외하고 합의할 것을 요청해 6월 18일 사측과 이를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삼성서비스지회 교섭단이 이 같은 노사합의를 한 이유에 대해선 취재든 집행위원회 입장이든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합원 정씨와의 갈등 외에 이번 교섭과정에서 삼성 원청의 압박이 있었는지, 협력사의 협박이나 탄압이 있었는지, 노사 의견일치안 이틀 뒤에 합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판단은 무엇이었는지. 정씨가 “내 문제는 퇴원해서 내가 알라서 할 테니 나머지 사안만 가지고 (합의)하라”고 말한 것이 근본 원인이었는지.
삼성서비스지회와 정씨 양측이 노사합의 이후 7월 8일 “책임자 처벌에 대한 문제는 정우형 조합원의 퇴직조건 철회와 교환된 것이 아니라 A씨의 복직과 교환된 것임을 확인했다”는 집행위원회 입장에서, 노사 교섭과 합의 과정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한편, 미디어충청은 삼성서비스지회 전 조합원 소통 공간인 SNS에서 정씨 등의 강제퇴장(강퇴) 과정, 위영일 전 지회장의 탄핵 과정 등 삼성서비스지회에서 블라인드 교섭 이후 드러나는 노조 내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다음호에 게재한다. 더불어 지난 해 기준협약 체결 이후 이 같은 삼성 사측의 탄압과 노조 내부갈등의 원인을 짚어보고, 이에 대한 금속노조와 민주노조운동진영의 태도도 살펴본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정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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