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틀 뒤인 지난 21일 학교법인 영남학원은 법인이사회를 열어 제14대 영남대 총장으로 노석균 교수를 선임했다. 노석균 교수는 지난 2008년 당시 영남대 교수회 의장으로서 영남학원 재단정상화 추친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재단 복귀에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학원에서 이사장 및 이사로 재직했고, 2009년 재단이 임시이사체제에서 정이사체제로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4명의 이사를 추천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16일 대선 3차 TV 토론회에서 “영남대, 동창회 등에서 다시 지난번 이사한 사람이 좀 추천해달라고 해서 저는 안하겠다고 했는데 계속 해달라고 해서 변협(대한변호사협회), 의협(대한의사협회) 등에 추천해달라고 해서 추천한 분을 추천한 것”이라고 밝혀 영남학원 재단 정상화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시인했다. (관련기사=[박근혜와 영남학원](1)영남대는 어떻게 “장물”이 되었나(‘12.11.5))
구재단 복귀가 이뤄지는 당시 노석균 교수는 다각적인 방법으로 박근혜 당선인에 접촉해 박 당선인 추천 이사를 재단 이사로 복귀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노 교수는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박 의원이 영남대에 ‘돌아오는’ 것은 맞지만, 여론에 직접 노출되는 방식으로 대학 운영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박 당선인의 영남학원 복귀 방식을 고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지난 대선 기간 영남학원 재단 소속 영남대, 영남이공대, 영남대의료원 구성원과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영남대재단정상화를위한범시민대책위(시민대책위)’를 결성하고 박 당선인에게 “제2의 장물 영남학원 청산”을 촉구했다.
영남대 교수들, 의견 밝히는 것 꺼려
“할 말이 없진 않으나, 말을 아껴야 할 때”
노 교수와 박 당선인의 이런 관계 때문에 지역에서는 영남대가 이 기회를 맞아 제2의 도약기를 맡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학내 민주주의 퇴행과 대학 자율성, 독립성 상실 등 영남대가 대학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특히 구재단 복귀 이후 총장 선출 방식이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뀌고 간선제로 바뀐 후 첫 번째로 선출된 총장이 재단 복귀에 힘썼던 노석균 교수라는 점이 우려를 더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영남대 한 교수는 “재단 기획처장을 지냈던 이른바 ‘재단 사람’이고, 재단 쪽에서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이라서 재단의 입김이 상당히 강해질 것이라고 본다”며 “또, 학내 민주주의, 교수 사회의 민주주의는 상당히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교수는 “왜 할 말이 없겠냐. 하지만 말을 아껴야 할 때”라며 “국민 과반수가 박근혜 후보를 선택하면서 보수화되었고, 학교도 보수화되는 과정인 것 같다. 기왕 총장으로 선임되었으니 구성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고 의견을 밝히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
시민사회, “정치적 결정… 사회에 좋은 결과 미치지 못할 것”
“박근혜 당선 결정되기 전, 진행된 퇴행 더욱 강해질 것”
우려의 목소리는 학내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박재빈 영남대학교 민주동문회 부회장은 “노석균 교수는 2009년 사학분쟁조정위가 구재단 복귀를 결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다. 일단 그런 분이 돼서는 안 됐다. 지난번 국회 토론회(영남학원 재단 정상화의 사회적 해법을 모색을 위한 토론회, 유은혜 의원 주관)에서 지적된 것처럼 총장 인선 절차나 규정 자체가 하자가 많았다. 초등학생들도 그렇게 선거는 안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부회장은 “박근혜 당선인을 업고 영남대를 자기들 중심으로 발전시켜보자고 생각한 것 같다”며 “견제나 공론화 과정 없이 정치지향적인 교수들이 그런 결정을 했을 때 우리 사회에 좋은 결과가 있었는가 했을 때, 비관적이다”고 지적했다.
김두현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박근혜 재단 복귀에 일정한 역할을 했던 분이 총장이 되면 학교가 어떤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학교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데 장애가 될 것”이라며 “학교 내에서도 다양한 의견 표출이 어려워지고, 이미 박근혜 후보가 당선인이 되기 전에 진행되었던 여러 가지 퇴행적인 일들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의 우려는 이미 여러 차례 사회적인 논란으로 가시화되기도 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영남학원 이사직을 내놓게 된 결정적 계기도 당시 영남학원 이사직을 차지하고 있던 박정희, 박근혜 측근들의 부정입학, 장학금 전용, 회계부정 등의 비리 때문이었다. 이 일로 영남대는 1988년 10월 18일 사학 재단 최초로 국정감사를 받기도 했다.
또 2009년 영남대에 구재단이 복귀하면서 박정희 찬양화 작업이 다시 본격화되기도 했다. 지난 8월 27일 영남대는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입학식을 열고 ‘박정희 대학원’을 설립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에서는 “21세기 한국에서, 그것도 대학에서 박정희 독재 리더십을 가르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강하게 비난했다. (관련기사=[박근혜와 영남학원](2)영남대, 영남이공대… 박정희 찬양과 비리의 역사(‘12.11.6))
“설립자(박정희) 창학정신 실천할 수 있는 자”
교수회, 선출 규정 개정 요구했으나 거부돼
영남대에 대한 이 같은 우려가 단순히 우려에서 그칠지에 대해서 회의가 드는 이유는 영남학원 법인이 규정하고 있는 총장 선출 규정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법인 규정 제5조(총장 선임요건)의 첫 번째 조항이 “설립자의 창학정신을 설천할 수 있는 자”이고, 제15조(총장후보자 공모)의 첫 번째 조항도 “(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설립자의 창학정신을 실천하고 국제적 안목, 리더십 및 경영능력을 갖춘 총장 후보자를 공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남학원 정관에 명시된 영남대의 설립자는 박근혜 당선인의 아버지 박정희다. 박근혜 당선인이 영남학원 이사로 재직하던 1981년 영남학원 이사회는 정관 1조에 ‘교주 박정희’를 명문화시켰다가 지난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설립자 박정희’로 정관을 수정했다.
지난해 영남대 교수회는 이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총장 선출 규정에 대해 개정을 요구했다. 교수회는 ‘설립자 창학정신’을 ‘보편적인 대학정신’으로 수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이사회는 이를 거부했다.
한편, 노석균 교수는 “내년은 박 당선인의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영남대도 제2의 도약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총장 내정 소감을 밝혔다. 노 교수는 2013년 2월 1일부터 총장 임기를 시작하며, 임기는 4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