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늘(5월 25일) 아침 일찍 한 목사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결혼기념일 …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니, 당사자인 제가 잊고 있는 것을 한 목사님이 어떻게 알고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일까요. 기억 못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목사님, 감사해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 전해야겠네요.^^ (그런데 나도 가물가물한 결혼기념일을 목사님이 어떻게?)”
결혼기념일인 만큼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뭐가 좋을까. 갑자기 영화관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볼만한 영화라도 있다면…. 그렇게 해서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7주기 추도식 참여로 대신한 작년 은혼식 여행
정말 묘한 인연입니다.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이태째 왜 노무현 대통령과 연결되는 것일까요. 저희 결혼기념일은 5월 25일입니다. 작년엔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쓰시마(對馬島) 여행을 계획했다가, 노무현 묘소 참배로 대신했습니다.
부연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군요. 저는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 등을 챙기는 편이 아닙니다. 아내는 좀 다르더군요. 은혼식 운운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은근히 기념선물을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눈치를 채고 저 혼자 몰래 준비한 이벤트가 1박 2일 쓰시마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불발로 그치고 말았어요. 여행 자금으로 청구한 돈(신문사 원고료)이 통장으로 입금되자마자 다른 용도로 새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아내 몰래 추진했기 망정이지 여행에 대해 언질이라도 주었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가 먼저 제안을 해 왔습니다. 은혼식 기념으로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에 다녀오면 안 되겠느냐고요…. 웬 떡이냐 싶었습니다. 쓰시마 여행을 준비하던 제게 봉하마을에 다녀오는 것으로 대체한다는 건 무거운 짐을 덜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작년 5월 23일,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노무현 추도식에 다녀온 경과가 이와 같습니다.
올 결혼기념일엔 영화 ‘노무현입니다’ 관람
즉발적으로 추진한 것이 또 노무현 대통령과 연결되고 말았어요. ‘운명’인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노무현 대통령 8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리모델링 공사로 눈코 떨새 없이 바빴기 때문입니다. 할 일을 못한 것 같아 마음 한편으로 허전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요.
이럴 즈음 결혼기념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고, 아내에게 모처럼 선(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영화 관람을 떠올렸고, 볼만한 영화를 찾던 중에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걸려든 것입니다. 가족의 일체감 형성에 도움이 될까 하여 막내 딸아이와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당연히 거절을 당했지요. 두 분 결혼기념일이니 두 분이 오붓하게 즐기시라면서….
오늘이 상영 첫 날이라고 합니다. 마치 저희를 위해 준비된 영화 같은 기분으로 즐겁게 관람했습니다. ‘노무현입니다’는 영화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순수 영화는 아닙니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구성도 픽션(허구)을 기반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팩트(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감동을 줄 수 있다
40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이 그렇고 뉴스, 국민경선과 선거운동, 장례식 장면 등이 모두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즉, 기록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지지율 2%의 꼴찌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정보전달보다 더 높은 경지, 즉 감동과 감명 거기에 눈물까지 선사했습니다. 여느 영화 이상으로 울림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기능 중 하나가 감정의 순화(카타르시스)에 있는 것이라면, ‘노무현입니다’는 그 역할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영화’로 불러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110분 분량이니까 결코 짧은 게 아니지요.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엔딩 크레딧이 떴습니다. 화면에 푹 빠졌었다는 얘기가 되겠죠. 관객들 눈이 충혈돼 있었습니다. 문재인, 안희정, 이광재, 유시민 등 대부분 등장인물은 노무현을 말하면서 눈물로 끝을 맺었습니다. 관객도 마찬가지, 영화를 보면서 울음을 참는 일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헛기침을 자꾸 해야 했습니다.
유시민이 말한 것처럼 가문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고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지만, 노무현이 가진 큰 장점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입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과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이 좋아 자기 돈 써 가면서 돕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도자의 자격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과연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노무현을 저토록 좋아할까요.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지만, 이런 사회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일 것입니다. 노무현이 그런 사람입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세상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고들 말합니다. 기계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이는 성실하다는 소릴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 냄새를 풍기지는 못합니다.
군림하는 권위와 머리 조아리는 맹종 앞에는 위계질서는 정연(整然)할지 모르겠지만 인정이 발붙일 여지가 없습니다. 양극화가 극점(極點)으로 치닫고 있는 구조는 불평등의 만연을 가져옵니다. 이런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아닙니다. 노무현은 이런 세상은 혁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과격하게 비친 이유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사후 평가된다고 합니다. 또 죽음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눈물짓던 수많은 사람의 조문 행렬은 그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감동을 줄 때 사람들은 움직입니다. 이건 유독 정치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제작비용으로 얼마나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어서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면 그만이겠지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이창재는 이런 관객의 요구에 충실히 응답해 주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이 된 것도 영화의 흥행에 긍정적 환경이 된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한솥밥을 먹던 동지가 사이를 두고 대통령 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그런 일을 문재인이 해 낸 것입니다. 아니, 촛불시민들이 그렇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통령 잘할 수밖에 없겠지요.
국회의원, 시장 등 선거에서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만년 꼴찌 후보 노무현, 그는 의로운 길이라고 판단되면 피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길을 선택해서 걸었습니다. 정의와 진리, 그리고 평화를 희구하는 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야 말로 그가 믿는 힘이었습니다. 고질적인 동서(東西)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하는 것만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그는 확신했습니다.
만년 꼴찌 노무현, 이 감독은 끝부분에 이미 고인이 된 작가 박완서 선생의 얼굴을 깜짝 삽입시킴으로써 그를 응원하게 합니다. 박완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쓴 작가 아닙니까. 사람 냄새 나는 대통령, 꼴찌를 피하지 않은 노무현은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는 거겠지요.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보는 관객도 이 대열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에필로그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취임 후 문 대통령의 서민 행보가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비슷합니다. 사람 냄새 풍기는 것이 말입니다. 더 이상 국민들은 나와 별종인 대통령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와 같거나 비슷한 대통령을 바랍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보게 된 영화, 모멘텀을 제공한 한 목사님의 축하 메시지가 감사하고, 이창재 감독 등 영화를 제작한 사람들 그리고 노무현을 말해 준 사람들이 고맙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고, 사람 냄새 풍기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 보기를 권합니다. 의외의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제가 보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