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본질적 목표: ‘평화, 그 가치 및 인민의 복지 촉진’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이자 가장 발전적인 지역주의 형태인 EU가 지향하는 본질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평화, 그 가치 및 인민의 복지 촉진’이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볼 때, 유럽대륙은 분단과 분열로 인하여 수많은 전쟁을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20세기에 경험한 제1․2차 세계대전이 모두 유럽대륙에서 촉발되어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등 대규모의 인권침해를 겪었다. 이런 역사적 참화를 겪은 유럽인들은 유럽통합을 위한 공동체를 설립함으로써 두 번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 결과 ECSC·EEC·Euratom의 세 공동체가 설립되어 현재의 EU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유럽인들은 자국의 주권을 스스로 제한하고 포기하면서까지 왜 지역통합공동체를 수립하고자 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이자 목표는 공동체의 수립을 통하여 유럽대륙은 물론 범세계적인 평화질서를 수립함으로써 인민의 복지를 촉진하는 것이다. ‘평화, 그 가치 및 인민의 복지 촉진’이라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EU는 신입회원국들에게 아주 까다로운 가입기준을 충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제3국의 EU 가입절차
제3국의 가입 요청이 있으면, 세 단계에 걸쳐 EU 차원의 절차가 진행된다.
[1단계] 가입신청국, 이사회에 가입 신청
[2단계] 이사회, 가입 신청 사항에 대해 유럽의회 및 국내의회에 통보
[3단계] 이사회, 유럽위원회와 협의함과 동시에 이사회, 재적의원의 과반수로 결정하는 유럽의회의 동의를 얻은 후 전원일치로 가입 여부 결정
제3국의 EU 가입 요청 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사회이다. 가입 절차의 개시-교섭-마무리 단계까지 이사회의 의사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가입의 모든 단계에서 이사회는 주도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유럽의회의 역할이다. 제3국의 가입 신청이 행해지면, 이사회는 유럽의회 및 국내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또 가입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 시에도 이사회는 반드시 유럽의회의 동의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유럽의회는 가입 여부에 대해 재적의원 과반수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한다. 따라서 만일 유럽의회의 재적의원 과반수 미만의 의원들이 가입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 제3국의 EU 가입은 불가능하게 된다.
EU 차원의 가입 절차가 마무리되면, EU와 가입신청국간 가입조약이 채택된다. 일단 가입조약에 대해 서명이 이루어지면, 가입후보국(Candidate Country)은 사실상 회원국으로 간주되는 ‘준회원국’(Acceding State)’이 되어 정식 회원국이 될 때까지 회원국이 누리는 특권을 잠정적으로 누린다. 이를 ‘잠정특권’(interim privileges)’이라 한다. 그 특권의 주요 내용으로는, EU의 제안, 통보, 권고 또는 입법발의에 대해 그(들)의 견해를 제시할 수 있고, EU의 부속 기구에서 ‘업저버 지위’를 갖게 되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투표권은 부여되지 아니한다.
가입조약은 국내 차원에서 헌법상 규정된 절차에 따라 비준 절차를 거친 후 확정적으로 효력을 발생한다. 가입신청국에 대한 가입조건은 리스본조약에 부합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EU와 가입신청국은 필요한 경우 리스본조약과 국내법의 충돌을 조정하고, 별도의 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이 체결되면, 가입신청국은 자국의 헌법에 규정된 국제협정 체결 절차에 따라 비준을 거친다. 비준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되면, EU와 가입신청국 사이의 가입조약이 발효한다. 이제 가입신청국은 EU의 정식 회원국(Member State)이 된다.
EU의 신입회원국이 되기 위한 자격 및 가입 기준
그 가입절차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제3국이 EU에 가입하여 신입회원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까다로운 자격기준을 갖춰야 한다. 제3국은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제3국의 EU 가입 기준에 관한 유럽연합조약 제49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2조에 언급된 가치를 존중하고, 그 촉진을 위하여 노력하는 어느 유럽국가라도 연합에 가입을 신청할 수 있다. (…)”
제49조는 언뜻 보기에 아주 단순하다. 제49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제2조에 언급된 가치”란 “인간의 존엄성의 존중,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의 지배 및 소수자의 권리를 포함한 인권 존중의 가치”를 말한다. 이 조문을 문언대로 읽고 해석하면, EU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고, 그 촉진을 위하여 노력하는 유럽국가라면 누구나 EU에 가입을 신청하고, 신입회원국이 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단순한 회원국 자격 및 가입 기준은 이미 EEC설립조약의 전문(Preamble)에도 별도로 명시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원회원국들(Original Member States)은, “유럽인민들 간 가장 긴밀한 중단 없는 연합체의 기초를 확립할 것을 확인하고”(EEC설립조약 전문 2문), “보유자원을 공동 출자함으로써 평화와 자유를 보호할 것을 결의하며”(EEC설립조약 전문 9문 전단), 또한 “회원국들의 이상을 공유하는 기타 유럽국가의 시민들에게 회원국들의 활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기로 결의”했다(EEC설립조약 전문 9문 후단).
원회원국들은 EEC가 폐쇄된 공동체가 아니라 개방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을까? 원회원국들은 그들의 바람대로 제3국의 가입 요청을 전면적으로 개방된 방식으로 수용했을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원회원국들은 제3국에 대해 EU 가입을 전적으로 개방하는 ‘완전개방방식’이 아니라 점차 일정한 자격기준을 충족할 것을 요구하는 ‘제한적 개방방식’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제3국은 아래의 ’명시적 조건‘과 ’보충적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EU에 가입할 수 있다.
명시적 가입 조건: 유럽국가라면 OK!
EU 회원국이 될 수 있는 자격조건은 ‘국가’(any State)면 충분하다(유럽연합조약 제49조). ‘국가’의 실질을 갖추고 있다면, ‘어느 국가라도’ 좋다. 다만, ‘any State’란 표현을 ‘국가’로 이해하는 경우, 국제법상 일반적으로 성립․승인된 ‘주권국가’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지방적 사실상의 정부(local de facto government)’인 교전단체 등도 포함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유럽헌법조약 제49조가 구태여 ‘any State’라는 문언을 사용하는 취지를 파악해보면, EU 회원국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주권국가’에 국한되고, 반란단체나 교전단체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EU에는 ‘국가’만 가입할 수 있고, 원칙적으로 국제기구는 자격이 없다. 물론 이 해석은 오로지 규정을 문언적으로 좁게 해석한 것이다. 만일 국제기구가 리스본조약에 규정된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조건으로 가입을 신청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선례가 없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유럽헌법조약 제49조가 자격조건을 ‘국가’에 한정하고 있는 이상 국제기구는 회원국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국가라도‘ EU에 가입하여 회원국이 될 수 있지만, 이에는 한 가지 지리적 제한이 있다. EU에 가입하고자 하는 후보국(즉, 가입후보국)은 ’유럽국가‘(a European State)’여야 한다. 리스본조약은 ‘유럽’의 지리적 범위에 대해서는 특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유럽’국가란 일반적으로 “유럽대륙에 그 국가 영역의 대부분이 속해있는 국가”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만일 EU의 어느 회원국이 지리적으로 유럽대륙의 밖에 있는 영역에 대해 그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프랑스의 해외영토지역인 D.O.M-T.O.M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회원국과 해외영토 사이의 특수한 정치제체의 경우에는 비록 유럽대륙의 영역 밖에 있다고 할지라도 EU법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유럽헌법조약 제49조에 제시된 조건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유럽국가라면 어느 나라라도(any European State)’(즉, ‘모든 유럽국가’) EU 가입후보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유럽국가’가 반드시 EU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가입후보국의 자격이 있다고 하여 EU 당국이 반드시 그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여 가입 협상을 개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로, 터키의 EU 가입 요청을 들 수 있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지중해연안국가이자 아랍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1970년대부터 당시의 EEC에 가입하기 위해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터키는 아직까지도 EU에 가입하고 있지 못하다. EU당국과 회원국들은 터키가 ‘유럽국가’라는 정치적 조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제3국의 가입 요청에 대해 EU는 지리적 조건뿐 아니라 아래의 보충적 조건도 고려하여 그 적격성을 심사한다. 터키의 경우, 쿠르드족 민족 독립을 비롯한 국내의 인권 보장과 키프로스를 둘러싼 그리스와의 영토분쟁, 그리고 종교(이슬람교)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EU가 요구하는 보충적 가입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충적 가입 조건: 인권 존중, 시장경제 및 아키 코뮈노테르
위의 명시적 조건만 보면, 제3국의 EU 가입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가입후보국이 최종적으로 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보충적 조건도 아울러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치적 조건이다. 유럽헌법조약 제49조에 따라 가입희망국이 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제2조에 언급된 가치”, 즉 “인간의 존엄성의 존중, 자유, 민주주의, 평등, 법의 지배 및 소수자의 권리를 포함한 인권 존중의 가치”를 존중하고, 촉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EU가 이 가치들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 가치들은 “다원주의, 비차별, 관용, 정의, 연대 및 남녀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에 있어 회원국에 공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제시된 정치적 조건은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이미 EU가 추구하는 주요한 가치로 확립된 것들이다. 유럽헌법조약은 제49조에서 이를 명문으로 규정함으로써 이 가치들이 EU 회원국이 되기 위한 타협의 여지가 없는 핵심 조건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다.
둘째, 경제적 조건이다. EU에 가입하고자 하는 국가는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어야 한다. 리스본조약이 ‘시장경제’를 가입조건으로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본적으로 EU는 자유경쟁원리에 기반한 시장질서에 입각한 통합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EU에 가입하고자 희망하는 후보국은 국내시장질서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거나, 또 이를 조장하는 시장통제기구를 설치해서도 아니 된다.
마지막으로, 법적 기준이다. 가입후보국은 acquis communautaire(아키 코뮈노테르 Community acquis)를 수용해야 한다. 아키 코뮈노테르란 그동안 공동체가 발족한 이후 EU가 축적한 모든 법체계 또는 법유산을 말한다. 이 개념은 상당히 모호하고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데, EEC로부터 오늘날의 EU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유럽통합의 과정으로 통하여 EU가 달성한 업적의 총합, 즉 ‘모든 EU(공동체)법’을 말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EU 회원국을 구속하는 권리와 의무를 가입후보국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 1] <아키 코뮈노테르의 목록(예시)> – 리스본조약 등 기본조약의 내용, 원칙 및 정책적 목적 |
이처럼 EU에 가입하고자 하는 후보국은 그 가입 전에 아키 코뮈노테르를 수락하여야 한다. 가입 협상에서 EU는 가입후보국에 대한 아키 코뮈노테르의 적용 예외를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가입후보국이 아키 코뮈노테르를 국내법 체계로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EU 가입을 위한 절대조건이라 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 연재한 ‘채형복의 유럽연합:EU톺아보기’는 이번 회로 당분간 연재를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