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두, 두, 두, 두, 두, 두’
3일 오후 1시 10분께,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위로 헬기가 지나쳤다. 사드 장비가 배치된 옛 성주 롯데골프장으로 향하는 헬기였다. 1시 43분께 또 한 대가 골프장으로 향했다. 2시 14분에도 보였다. 1시부터 저녁 6시까지 대여섯 차례 헬기가 소성리 마을회관 위로 모습을 보였다. 골프장으로 향하거나, 돌아 나오는 헬기들이었다.
미군은 지난달 26일 새벽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 일부를 골프장으로 들이고, 30일 다시 유조차를 반입시키려 했다.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해 유조차 반입을 막았다. 미군은 육로가 막히자 하늘길로 기름을 나르기로 작전을 바꿨다.
성주와 김천 주민들과 원불교도들은 추가로 있을지 모를 육로를 통한 작전에 대비해 지난 1일부터 7일까지를 ‘소성리 평화주간’으로 정했다. 전국으로 소성리를 지키러 와달라는 부탁도 남겼다.
전국에서 시민들이 응답해 소성리로 모여들었다. 하루씩, 이틀씩 밤을 지새운다. 소성리에 평화캠프촌이 들어섰다. 3일 오후에도 소성리 일대는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소성리 보건소에서부터 차량이 길게 늘어서 주차했다.
이예슬(20) 씨는 2일 저녁께 소성리에 들어와 하룻밤을 보냈다. 예슬 씨는 2일 자정을 기해 또 사드 발사대가 반입될 거란 보도를 보고 계획보다 하루 일찍 소성리에 들어왔다. 그는 사드 철회 투쟁에 적극적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이 운영하는 ‘길바닥 평화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평통사는 애초 3일부터 5일까지 소성리에서 평화학교를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2일 자정 추가 반입 보도 이후 일정을 하루 당겼다.
같은 날 예슬 씨를 포함해 이기훈(20), 박성우(18) 씨도 평화학교 일원으로 소성리로 들어왔다. 예슬 씨는 인천, 기훈 씨는 충북 청주, 성우 씨는 경기 파주로 사는 곳이 모두 다르지만,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마음으로 소성리에 모였다.
성우 씨는 지난 3월 18일 성주 평화나들이 행사때 처음 소성리를 찾았다. 성주에서 첫 기억은 “힘들고”, “추웠다”. 힘들고 추운데도 다시 성주를 찾은 이유를 물었을 때 성우 씨는 “사드가 들어올 때 페이스북 라이브를 보고 안 올 수 없었다”며 “관련 보도들을 보면서 (무언가가) 쌓이고, 쌓이고, 쌓이다가 못 참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기훈 씨는 고등학교에서부터 평화통일에 대한 공부를 1년가량 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사드를 알게 된 기훈 씨는 사드를 막는 건 “무기 하나를 막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예상했던 문제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보복이나 군사 공격을 시사하는 발언도 나온다”며 “단순히 여기서 무기 하나를 몸으로 막는다는 생각보다 멀리 보면 분단과도 관련이 있고 미국 패권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가족 단위로 소성리를 찾아온 이들도 상당했다. 경기 파주 주민 김지현(51) 씨는 서울 사는 동생 가족과 함께 소성리를 찾았다. 지현 씨는 “대통령 선거 앞두고 사드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전쟁이 날까 봐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말로만 불안해할 게 아니라 현장에서 불안하지 않은 세상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어서 왔다”고 방문 이유를 밝혔다.
지현 씨의 조카 김영서(14) 씨는 “직접 가까이 와서 보니까, 좀 더 주민분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실감이 나는 것 같다”면서 “사드 배치는 일방적으로 한 것 자체가 불법이고, 필요도 없는 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치인들이 가져오는 건 불합리한 일”이라고 참여 소감을 전했다.
2일 자정 사드 추가 반입 소식에 부랴부랴 소성리 찾은 시민
사드 전방 마을 노곡리 주민들 “마을 생긴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
이들처럼 객지에서 소성리를 찾는 이들을 위해 경북 김천 농소면 노곡리 주민들은 점심 국수 300인분을 준비했다. 노곡리 주민들이 점심 국수까지 준비하며 소성리를 찾는 이들을 대접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노곡리도 소성리와 마찬가지로 사드가 배치된 성주골프장 바로 아랫마을이다. 소성리가 골프장을 끼고 있는 후방 마을이라면, 노곡리는 골프장 앞에 있는 전방 마을이다.
마을 주민 약 150명이 사과, 자두,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작은 마을 노곡리도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은 명확하다. 평생을 노곡리에서 나고 자란 마을 이장 박태정(67) 씨는 “마을이 생긴 이래 존립이 위태로울 만큼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사드 배치를 규정했다.
태정 씨는 “처음엔 레이더 문제를 가장 크게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전쟁 빌미를 만드는 무기를 가져다 놓는 모양”이라며 “일본, 미국, 소련(러시아)이 동북아에서 전쟁이 나면 우리 동네는 남아날 게 없다”고 걱정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노곡리 주민 윤장식(69) 씨도 “전쟁이 나면 여기가 목표가 된단 말이다. 정부는 우리 주민 죽는 거 생각도 안 하는 거 아니냐”고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이철우, 홍준표 등 자유한국당 소속인 지역구 국회의원과 대선 후보를 언급하면 욕설부터 내뱉었다. 태정 씨는 “평생을 좋아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 배신을 당했으니 죽을 맛”이라며 “다른 쪽에선 ‘그렇게 좋아하더니 꼬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이건 완전 사기극”이라고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