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앞둔 대구시청 앞 희망캠프, 대구시립희망원은 평안한가요?

시청 앞 천막농성 16일차, 책임자 처벌도 탈시설 계획도 없어
"관련자들 완벽히 구속되고, 모두 탈시설할 때까지 싸우겠다"

19:33
Voiced by Amazon Polly

“우느라고 발언을 잘 못 하겠어요. 그게 우리 부모들 마음인가 봅니다.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자는 말은 이제 지겹기까지 한데요. 그래도 눈물이 나네요.”

14일, 대구시청 앞 푸른 천막 두 동이 들어선 지 오늘로 16일째. 지난 보름 동안 두 번의 집회와 한 번의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구영희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장은 울먹이며 말을 시작했다. 모인 사람들은 이 천막을 ‘희망캠프’라고 부른다.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인권 유린, 비리 문제가 불거진 대구시립희망원을 다시 민간 위탁하겠다는 대구시 발표에 화가 단단히 났다. 희망원 사태는 지난 37년 동안 천주교대구대교구 유지재단에 위탁해 운영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약한 자를 구원한다는 천주교였다.

구영희 회장은 “우리 아이들 학교 졸업하면 성인기 내내 어디 갈 곳이 없다. 내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아 돌봐주는 것이 소원이다. 여전히 아이 미래가 걱정되다 보니 계속 이 말만 하게 된다”며 “산 위에서 소리를 치면 메아리가 돌아오는 법인데, 대구시는 메아리도 없으니 정말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보름 동안 희망캠프 일수를 적는 피켓은 봄비를 가득 머금어 쭈글쭈글해졌다. 캠프 안 가득 쌓인 라면, 커피, 간식 위에 붙은 ‘대구시립희망원 사태를 아시나요?’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희망캠프를 소개했다.

전근배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정책국장은 “희망원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아직 핵심 요직에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3월 대구시는 희망원 혁신 대책으로 직원 5명 중징계, 5명 경징계, 3명 경고를 요청했다. 하지만 징계 결정 당사자는 천주교대구대교구 유지재단이었다. 이미 지난해 10월 희망원 원장을 포함한 간부급 직원 24명이 사표를 제출했지만,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다. 천주교유지재단이 희망원 반납 의사를 대구시에 밝혔지만, 대구시는 새 위탁 업체를 선정하는 6월까지 천주교유지재단에 희망원을 맡기기로 했다.

▲대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몸짓 모임 ‘몸뚱아리’ 공연

오는 16일은 부활절이다. 부활한 예수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 처음 한 말이 “평안하냐?”였다고 한다. 조환길(타대오) 천주교대구대교구 대주교는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최근 우리의 삶은 참으로 평안하지 못하다”며 최순실 국정농단, 북핵 문제, 세월호 문제를 언급했다. 세월호 문제를 언급하며 정확한 진상조사조차 못 한 것이 이 시대 진정한 아픔이라고도 했다.

희망원 사태에 대해서도 “우리 교구도 희망원 사태를 계기로 성찰과 쇄신으로 나아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고 한 문장 언급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가 아직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듯이, 희망원 사태도 아직 진상 조사가 되지 않았다”며 “우리가 꿈꾸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난 37년 동안 희망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필립비서 3장 10절)”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다시 천주교대구대교구가 죽어서 다시 부활하는 은총을 입기를 바랍니다. – 희망원대책위

희망원대책위는 천주교대구대교구가 즉시 수탁권을 반납하고, 대구시가 공적으로 운영하면서 노숙인, 장애인 생활인의 자립생활 대책을 마련해 시설을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희망캠프가 꾸려진 후, 천주교대구대교구도 부활절 이후 만나자고 제안해 왔다. 대구시와도 두 차례 만났다. 하지만 진전은 없었다.

희망캠프를 지키던 김재민 씨는 “희망원은 한 마디로 감옥이다.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고, 먹으라 하면 먹고, 자라 하면 자고. 저는 집에서 사는 장애인이지만, 시설에서 그렇게 사는 건 상상하기 싫다”며 “우리가 싸우는 게 아직 약한가 보다. 그래도 싸우니까 바뀌더라. 희망원 사태 관련자들이 완벽히 구속되고, (생활인) 모두 탈시설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희망원대책위는 이날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맞아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오후 2시 공익지원센터에서 탈시설-자립생활권리 강의를 열었다. 오후 7시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여는 탈시설-자립생활 권리선언 콘서트에는 소설가 공지영 씨를 초청해 도가니 사태와 희망원 사태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희망원에서 사망한 생활인은 모두 309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