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비극적인 일을 많이 목격하지만, 희생자가 무고한 아이들인 경우 충격과 파장은 더 크다. 2014년 눈앞에서 304명의 무고한 생명과 함께 가라앉은 세월호가 그렇다. 또 다른 예는, 2012년 12월 미국 커네티컷주 뉴타운에 위치한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내 총기난사 사건으로 남을 이 비극으로 유치원생을 비롯한 어린아이 20명과 교직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미 전역에서 크고 작은 총기 사건이 일어나지만, 샌디훅 총기난사 사건이 준 충격은 더 컸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초등학교에서 벌어졌고,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많은 미국인에게 왜 총기규제가 필요한지 한층 더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 이후 만 4년이 지났지만, 희생자 가족들에게 이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아픔과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사건 직후부터 샌디훅 사건이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총기규제론자들이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것이다. 총기 난사는 없었고, 희생된 어린이들은 실제 있지도 않은 가짜라는 음모론이었다.
이 음모론은 얼마 전까지 인터넷 한 귀퉁이에서 일부 극단론자들 사이에만 회자되는 주장이었다. 그러다가 저명한 음모론자인 알렉스 존스라는 사람이 샌디훅 사건 음모론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존스는 라디오 토크쇼 호스트이자, 정부의 음모론을 주로 파헤치는 미디어인 <인포워스>(Infowars) 창립자이다. 그의 라디오 쇼 청취자들이 약 8백만 명이라고 하니, 우익성향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다. 존스는 자신의 토크쇼에서 샌디훅 총기난사로 죽은 아이들의 부모가 사실은 배우들이고, 가짜 연기를 하고 있다고 피해자 가족을 모욕했다.
알렉스 존스는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이기도 하다. 선거 기간 내내 공개적으로 트럼프 지지를 표명했고, 그의 라디오 쇼에 트럼프가 나와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존스는 대선 다음 날 트럼프가 직접 전화해서 고마움을 표시했고, 트럼프와 자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에 트럼프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둘의 친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트럼프가 존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닌 듯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 투표권이 없는 서류미비자 수백만 명이 불법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는 트럼프에 한발 앞서 존스의 주장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목숨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그 죽음이 왜곡되고 조롱받는다면 부모 마음이 어떨까? 불행히도 이와 비슷한 일은 한국의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종종 겪는 일이다. 샌디훅 유가족들은 진실을 지키기 위해 음모론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음모론자들의 괴롭힘과 위협은 점점 더 도를 넘어서고 있고, 심지어 일부 유가족들은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참다못한 샌디훅 초등학교가 있는 뉴타운 주민들이 지난 2월 말 트럼프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알렉스 존스를 비롯한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샌디훅 참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 더는 가족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 달라고 청원한 것이다. 트럼프 시대에 소위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 또 하나의 진실인 양 호도되고 있는 상황, 근거 없는 음모론이 트럼프 이름을 빌려 퍼지는 상황에 공인인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 달라는 정당한 요구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샌디훅 유가족들의 요구에 트럼프가 6주가 지나도록 응답이 없다는 기사를 지난주 신문에서 읽었다. 트럼프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었지만, 무척 화가 났다. 그런데 며칠 후 예상치 않았던 말이 트럼프 입에서 나왔다. 시리아 정부의 화학가스 공격으로 다치고 죽은 무고한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프고 분노한다고.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장악 지역인 북부 이들리브를 화학가스로 공격했다는 뉴스가 나온 지 사흘만인 4월 6일,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보복 공습을 발표하면서 트럼프는 “이 야만적인 공격으로 아주 아름다운 아이들이 참혹하게 살해당했다”며 “세상 그 어떤 아이도 그렇게 처참한 고통을 겪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트럼프 주장을 그대로 받아 시리아 정부군에 대한 공습은 트럼프가 시리아 어린이들의 참혹한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잠깐만, 뭐라고? 샌디훅 총기난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죽음이 조작이라는 음모론에 한마디 비판도 안 하는 트럼프가? 그리고 시리아 난민 입국을 무기한 금지하겠다는 사람이? 입국 금지하겠다는 바로 그 시리아 난민에 무고한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트럼프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단어는 ‘위선’이었다. 시리아 공습은 죄 없는 아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내린 결정이 아니다. 이전 다른 대통령들처럼 트럼프도 땅에 떨어진 지지도를 회복하기 위해 군사행동을 했다는 의견도 있다. 또, 러시아 푸틴과 가깝다는 비판을 일거에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국제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트럼프를 하루아침에 변하게 한 진짜 동기가 무엇이든 그가 시리아 아이들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쨌든 트럼프는 일단 이번 공습으로 얻은 것이 많은 듯 다. 무엇보다도 취임 11주 만에 처음으로 민주, 공화 양당과 언론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간 트럼프와 거리를 두던 공화당 주류 인사들은 물론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 하원 원내대표인 낸시 펠로시를 포함한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도 모두 트럼프의 시리아 공습을 지지하고 나섰다. 버니 샌더스조차 아사드를 전범이라 규탄하면서 사실상 트럼프의 시리아 공습에 지지를 보냈다.
그동안 트럼프와 각을 세우고 있던 주류 언론도 일제히 트럼프 지지에 합류했다. 독립적인 언론 감시그룹인 페어(FAIR-Fairness&AccuracyInReporting)는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5대 주요 신문의 공습 당일과 다음날까지 이틀 동안 나온 기사들이 모두 트럼프의 공습 지지 일색이었다고 비판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정책을 앞장서서 비판해 온 자유주의 성향 케이블방송인 <MSNBC>도 트럼프가 “옳은 일을 했다”고 지지했다. 특히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방송 중 크루즈 미사일이 어둠을 가르고 날아가는 장면을 마치 대단한 광경이라도 보는 듯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또 다른 강력한 비판자인 <CNN>의 파리드 자카리아도 공습 다음 날 “어젯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며 트럼프의 시리아 공습을 극찬했다. 이런 씁쓸한 광경은 미국 기득권층 사이에 표피적인 차이가 무엇이든 결국은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 앞에 이해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습이 정말 폭압적인 아사드 정권에게 타격을 주려던 것인지도 의문이다. 사전에 아사드 후견인인 푸틴에게 미리 공습 계획을 알려주면서, 시리아 정부군이 대처할 시간을 준 것으로 볼 때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시리아 정부군이 입은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시리아 정부군은 공습 후 보란듯이 미국이 공격한 공군기지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시리아인권전망대(SyrianObservatoryforHumanRights)에 따르면 미국의 공습을 받은 바로 다음 날 공습으로 파괴되었다던 공군기지에서 뜬 시리아군 비행기가 반군 지역 이들리드를 공습했다고 한다. 이 공습으로 어린이 5명을 포함해 시리아인 18명이 사망했다.
2011년 아사드 정권에 맞서 일어난 시리아 혁명이 내전으로 전환한 후 지난 6년 동안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리아인이 사망했는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독립적 싱크탱크인 시리아정책연구센터(SyrianCenterforPolicyResearch)는 작년 봄까지 사망자 수가 약 47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 이후 지난 일 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시리아인이 목숨을 잃었을까. 전쟁 전 인구 2천2백만 명 중 절반인 1천백만 명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됐다.
평화와 정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중동에서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군사적 긴장 고조에 반대해야 한다. 1991년 걸프전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 대통령 모두 일관되게 수행해온 군사개입은 중동에 평화가 아닌 분쟁의 확산을 가져왔다.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아이시스)를 키운 것도 개입이 낳은 결과다. ‘인도적 개입’이라는 허울을 쓴 군사개입은 결코 인도적이지 않고,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한 핑계일 뿐이다. 지난 6년 동안 폭압적인 아사드 정부와, 마찬가지로 반동인 아이시스 사이에서 시리아 민중혁명 지지세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가장 고통당하는 건 시리아 민중과 아이들이고, 그들의 고통을 없애는 길은 더 많은 군사개입과 공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뿐 아니라 아사드 정권을 돕고 있는 러시아, 이란 등 모든 외부 세력은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당장 시리아 난민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라. 정말로 아이들의 무고한 죽음에 분노하고 마음이 아프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