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원, 2005년 인권위 권고에도 심리안정실 운영…생활인, 살기 위해 격리 수용

감금 사건 2차 공판, 공모 혐의 여전히 부인
26년차 생활인, 규칙 위반 시 심리안정실 당연시
희망원 직원, 격리 사실은 인정..."감금 목적 아냐"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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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제가 잘못했으니까 당연히 벌을 받아야죠. (잘못하면 심리안정실에 간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술을 마셨어요. 제가 잘못했으니까 벌을 받아야 한다고 선생님들이 데리고 오죠. 자연적으로 (잘못하면) 보호실(심리안정실)에 가 있는 거 아닙니까. – 대구시립희망원 생활인 김 모(68) 씨

26년째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살고 있는 김 모(68) 씨는 생활인 감금 혐의가 불거진 심리안정실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스스로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희망원에 계속 살기 위해서였다. 희망원 측은 규칙 위반 규정에 따라 생활인을 심리안정실에 격리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감금 목적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29일 오후 2시, 대구지방법원 제3형사단독부(판사 염경호)는 대구시립희망원 생활인 감금 사건 2차 공판을 열었다. 김 모(63) 전 총괄원장 신부, 박 모(58) 성요한의집 원장 등 희망원 직원 7명이 피고석에 앉았고, 생활인 김 모(68) 씨와 변 모(50) 희망원 총무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증인신문은 4시간가량 이어졌다.

1992년 희망원에 입소한 생활인 김 씨는 생활관 동장도 두 번 맡았다. 2012년부터 모두 4차례에 걸쳐 30일 동안 심리안정실에 격리됐던 김 씨는 생활인 내부 규칙을 위반하면 심리안정실로 가는 것을 당연한 듯 여겼다. 김 씨는 심리안정실을 ‘독방’, ‘보호실’이라고 불렀고, 심리안정실로 가는 것을 “벌 받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 씨가 심리안정실에 들어간 이유는 모두 음주와 관련이다. 음주, 음주 후 희망원 미복귀, 주류 반입 등이다. 김 씨 증언에 따르면, 김 씨가 처음 심리안정실에 들어간 2012년에는 밤낮으로 밖에서 문을 잠갔다. 이후 2013년부터 3차례는 생활관 도우미가 밖에 있으므로 문을 잠그지 않았다. 생활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식사 후 도우미와 함께 담배도 피웠다. 매점을 가거나 산책을 가려면 도우미가 동행했다. 공동작업이나 거실에 나와 TV 시청도 허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김 씨의 증언이 다른 생활인 증언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근정 검사(대구지방검찰청 강력부)가 제시한 증언에 따르면, 심리안정실에 격리되면 밤낮으로 문을 잠그고, 식사도 심리안정실에서 혼자 해결한 때도 있었다.

김 씨는 공동작업과 TV 시청이 허락됐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무슨 벌입니까. 마음가짐을 똑바로 해야죠”라고 답했다.

염경호 판사는 김 씨의 증언에 심리안정실이 불편하지 않는데 왜 벌 받는다고 생각하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김 씨는 잘못했으니까 당연히 벌 받는 것이라는 대답을 반복했다.

▲희망원 신규생활동, 성요한의 집에 심리안정실이 있다.

생활인도 직원도 불법 사실 몰라
’05년 국가인권위 ‘감금’ 가능성 경고
“감금 목적 아냐…최대한 배려”

환자를 격리하거나 신체적 제한을 가할 때는 정신보건법 제46조에 따라 정신의료기관장이나 종사자가 전문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이를 진료기록부에 기재해야 한다. 하지만 희망원은 내부 생활 규정 위반 규정을 두고, 심리안정실 격리를 자의적으로 운영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변 총무팀장은 정신보건법상 환자 격리 제한 절차에 대해 “노숙인 시설이라 잘 몰랐다”고 답했다.

또, 변 팀장은 “대구시나 국가인권위 평가 점검 때도 (심리안정실은) 항상 노출돼 있었다. 격리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마치 감금하려고 한 것처럼 다뤄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국가기관이 수없이 점검했는데, 제대로 지시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희망원 측은 감금 목적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심리안정실에 들어간 이들의 생활은 제한됐다. 이에 대해 변 팀장은 “제한이라고 말하면…(도우미가 따라다니는 것은) 필요에 따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배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지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징계 목적으로 한 심리안정실을 운영은 감금에 해당할 수 있다며 시정 권고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변 총무팀장은 국가인권위 권고에도 계속 심리안정실을 운영한 이유에 대해 “심리안정실 규칙을 객관화하라는 내용이었다. 심리안정실 존폐에 관해 결정한 건 아니”라며 “직원들이 심리안정실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고, 공문으로 존폐에 대해 다시 질문을 올렸지만, 대답이 오지 않은 거로 안다”고 답했다.

하지만 염경호 판사는 감금에 해당할 수 있다는 권고를 받고도 국가기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변 팀장은 “적은 수의 직원들이 생활인을 돌보는 열악한 상황에서 심리안정실 필요성을 느꼈고, 한 번 더 (국가인권위) 대답을 받으려고 한 것”이라고 답했다.

2차례 생활관 동장을 지낸 김 씨도 심리안정실 격리가 불법 소지가 있다는 점을 몰랐다. 김 씨는 동장일 때, 생활관 당번에게 밤에는 심리안정실 문을 잠그지 말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심리안정실 내부

심리안정실 운영 담당자는 누구?
“원장, 국장 직접 결정 않아”

심리안정실 실질적 운영 담당자를 놓고도 질문이 이어졌다. 희망원 내부 규정에 따라 심리안정실 입실은 윤리위원회 결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변 총괄팀장은 원장, 국장급 간부가 승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피고 변호인 측은 보호조치 기간을 정할 때 담당 지도교사 의견이 우선 반영되지만 기소된 사람 중 지도교사는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변 총괄팀장에게 그 이유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변 총괄팀장은 “심리안정실 관련 인원은 50명은 된다. 이 사태 책임을 위해 선배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거로 안다”며 “관리자들이 책임지고 해결하자는 회의에 참석한 적 있다”고 말했다. 생활인 규칙 위반 개정 시 생활인 동의를 얻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앞서 첫 공판에서도 김 모 전 총괄원장 신부와 박 모 성요한의집 원장은 심리안정실 격리 사실은 인정했지만, 공모 혐의는 부인한 바 있다.

희망원에 살기 위해 심리안정실에 갔다
“나가 봤자 살기 힘들다…”

희망원은 정해진 외출 시간을 하루 넘기면 자동 퇴소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규칙 위반 규정에는 무단이탈 후 재입소 시 4주 동안 심리안정실에 격리하도록 했다. 이 규정에 대해 염 판사는 “재입소하면 무단이탈은 과거 일이 되는데, 왜 과거 일을 징계하느냐. 한 번 희망원에 들어오면 못 나가게 만든 것 같다”고 되물었다.

▲희망원 생활인들이 식사하는 모습

김 씨는 희망원 생활 26년 동안 자활센터 등 교육을 받고 4차례 자진 퇴소했다. 하지만 번번이 자립생활에 실패했다. 월 80만 원씩 지급되던 연금 포기 각서를 쓰고, 희망원에서 지냈다. 김 씨는 무단이탈 후 복귀하면 심리안정실에서 벌을 받아야 희망원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퇴소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김 씨는 “나는 들어가려고 했는데 술 때문에 못 들어갔다”라고 답했다. 심리안정실 보호조치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김 씨는 “이유는 다른 거 없다. 내가 이왕 살 곳은 희망원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한 손을 못 쓴다. 나가 봤자 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검사는 “다시 입소해서 희망원에 살려면 희망원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런 거 때문에 (보호조치를) 당연히 따른 건가”라고 재차 물었고, 김 씨는 “그렇다.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따라야죠”라고 답했다. 시설에 벗어나 생활하기 힘들었던 김 씨는 희망원 통제에 따르는 쪽을 택했다. 시설은 생활인 통제를 당연시했고, 아무도 인권 침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는 4월 10일 오후 2시 30분 희망원 심리안정실로 운영된 생활관을 직접 방문해 현장검증에 나설 계획이다. 또, 5월 12일 2차 공판에 출석하지 않은 한국노숙인복지시설협회 관계자를 증인으로 다시 불러 증인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