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3일, 영국에서는 유럽연합(EuropeanUnion:EU) 탈퇴 여부(Britain+Exit=Brexit)를 묻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투표 결과는 놀라웠다. 찬성 51.9%, 반대 48.1%. 예상을 깨고 절반 이상의 영국민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국내의 EU 전문가와 언론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투표 당일까지도 “설마 영국이 EU에서 탈퇴까지야 하겠어”란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과반 이상의 영국민들이 브렉시트를 원한다는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브렉시트 찬성에 따른 대응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우리 정부는 당황했고, 언론도 앞다투어 브렉시트 이후 EU의 미래와 국제정세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한국과 EU 사이의 통상 이익을 다루는 FTA협정을 체결할 때도 언론이 이토록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언론의 이러한 태도는 다소 생경하기까지 했다.
EU 설립의 결정적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은 남북한이 동족의 가슴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1950년대 초반에 일어났다. 1951년 4월 18일 프랑스, 독일(서독), 이탈리아 및 베네룩스 3국(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은 그들 사이에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ECSC)를 설립하는 파리조약’(Treaty of Paris)에 서명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957년 3월 25일, 이들 6개국은 다시 유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EAEC or Euratom)를 설립하는 로마조약(Treaty of Rome)에도 서명했다. 이렇게 하여 ECSC, EEC 및 Euratom의 세 공동체로 이뤄진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ies:ECs, 혹은 European Community:EC)가 출범했다.
EEC설립조약은 전문(前文)의 맨 앞줄에서 공동체 설립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유럽인민들 사이에 보다 긴밀한 연합체의 기초를 설립할 것을 결의했다(DETERMINED to establish the foundations of an ever closer union among the European peoples).”
이 문언에서 보듯이, EC는 유럽대륙에서 더 이상 전쟁과 살육과 같은 야만적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생명 존중과 평화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유럽인민들의 염원 아래 탄생했다. 하지만 ‘보다 긴밀한 연합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EC의 심화와 확대 과정에서 통합에 대한 찬성과 반대, 도전과 응전은 되풀이됐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회원국의 가입과 확대는 이어져 EU는 28개 회원국을 가진 거대 연합체가 됐다.
지난 3월 25일은 로마조약을 체결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유럽전역은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을 것이다. 유럽통합체제 출범 후 회원국의 자발적 탈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둔 지금 브렉시트를 지켜보고 있는 EU의 다른 회원국들과 시민들은 착잡한 심경일 것이다. 최근 EU는 테러와 난민에다 브렉시트까지 여러 현실적 난제로 곤경에 처해있다(심지어 지난 3월 23일에는 런던의 심장부인 의사당 부근에서 일어난 테러로 범인을 포함한 4명이 죽고 40여 명이 다쳤기까지 하였다!). 과연 EU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물리적 국경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고는 해도 유럽과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유럽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실감나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대륙으로 이어진 유럽과는 달리 위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막히고, 아래로는 바다로 막힌 한반도에 살고 있다. 이 좁은 영토에서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 있으니 어쩌면 국가와 지역이 통합된 유럽체제가 가지는 의미가 언뜻 이해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필자는 오랜 세월 EU법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1992년 프랑스에 유학하여 EU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벌써 이십 년 이상 EU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주로 전문가를 대상으로 EU법에 관한 많은 논문과 책을 펴냈다. 학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학자가 쓰는 논문은 저자 한 명과 심사위원 세 명, 딱 네 명만 읽는다! 물론 학자로서 학문적 글쓰기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그와는 별도로 일반대중을 위한 글쓰기를 통해 EU의 법과 제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
개인이 가진 지식과 경험은 서로 나누고 퍼트려야 한다. 그래야 ‘지식 파이’가 커질 뿐 아니라 집단지성도 성숙할 수 있다. 대중 앞에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야 하는 부담과 두려움은 ‘지식의 사회 환원’이라는 공익적 가치로 갈음하고자 한다. 그리고 독자들과 의견 교환과 토론을 통해 오류와 독단을 바로잡고, 한층 숙성되고 세련된 글을 쓸 기회로 삼고자 한다.
필자는 다분히 ‘통합론자’이다. 지식과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사고와 인식은 물론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과 차이를 해소·경감·완화·철폐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연속되는 칼럼을 통해 EU가 어떻게 설립·운영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망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살펴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차별과 차이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나아가 사회 통합과 통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것이다.
다양성 속의 통합(Unity in Diversity)!
필자는 EU가 모토로 삼고 있는 이 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EU가 맞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브렉시트에 관한 국민투표 이후 EU체제에 대한 우려 섞인 평가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EU는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EU는 존속할 것인가, 폐지될 것인가? EU는 위기인가, 기회인가? 이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면서, EU는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과연 EU는 재구성(re-constructing)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필자와 함께 EU를 탐색하는 흥미로운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