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티모시 커프먼은 평범한 뉴요커였다. 뉴욕시 퀸즈 사우스 자메이카라는 동네에서 목사인 아버지와 간병인으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사우스 자메이카는 자메이카 에스테이츠라는 부유한 동네 바로 남쪽에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커프먼의 어머니는 자메이카 에스테이츠의 부유한 가정에서 간병인으로 일했다고 한다. 활달한 커프먼은 뉴욕에서 2년제 대학을 마친 후 여러 직업을 거쳤다. 은퇴 후에는 소일거리 삼아 거리에 버려진 재활용 병과 캔을 수집해 되팔아 살림살이에 보탰고, 유명인사의 사진과 싸인 모으기가 취미였다. 그의 트위터를 들여다보면 그가 음악과 영화를 즐기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언젠가는 캘리포니아를 방문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평범한 뉴욕 토박이 커프먼이 며칠 전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흑인 남성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뉴욕 현지 시각으로 지난 월요일인 3월 20일,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맨하탄 미드타운 자신의 원룸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길가에서 평소처럼 버려진 재활용 병을 수거하던 티모시 커프먼에게 한 젊은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길이 66cm 칼로 생면부지의 커프먼을 수차례 찌르고 달아났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커프먼은 가까스로 두 블럭 떨어진 경찰서에 도착한 후 쓰러졌다.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건 후 만 하루가 지난 수요일 새벽에 자수한 범인은 제임스 잭슨이라는 28세 백인 남성. 지난 2012년 8월 제대할 때까지 3년 반 육군에 복무한 전역 군인이다. 군 복무 중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적도 있다고 알려졌다. 잭슨은 지난 주말, 자신이 살고 있는 매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세 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다. 그가 뉴욕에 온 이유는 단 하나. 흑인 남성을 살해하기 위해서였다.
잭슨은 “어릴 때부터 흑인을 증오해 왔다. 특히 흑인 남성들을 증오한다”고 수차례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뉴욕을 범행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세계 중심지인 뉴욕에서 많은 사람과 언론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뉴욕타임즈에 전달할 선언문도 작성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커프먼을 “연습 삼아” 죽였고, 이후 타임스퀘어에서 더 많은 흑인을 죽이려 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잭슨과 백인우월주의 단체와 연관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얘기하듯이 그의 범죄 동기는 분명하다. 생면부지 흑인 남성을 무참히 살해한 이유는 인종 혐오 때문이었다.
이 끔찍한 인종혐오 범죄에 뉴욕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주말에는 인종혐오를 규탄하는 시위와 행진에 수백 명이 참여해 커프먼을 애도했다. 시장과 의원들, 주지사 등 정치인들도 잇달아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검찰조차 이 범죄를 테러리즘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테러 범죄에 침묵을 지키는 정치인이 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거나 인종혐오 범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등 어떤 말도 없다. 대통령으로서 여러 공무에 바빠서? 천만에. 잘 알려져 있듯이 트럼프는 수시로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목요일, 그는 트위터로 유럽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영국 런던 테러 차량 공격으로 희생된 유타 출신 커트 코크란이라는 미국인을 추모했다. 코크란을 위대한 미국인이라 칭송하면서, 그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뉴욕 한복판에서 백인우월주의자에게 목숨을 잃은 커프먼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대통령 트럼프가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의회에서 연설했다. 이 자리에 트럼프는 이민자들이 저지른 범죄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초대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범죄 내용을 주기적으로 공표하고, “미국인”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새로운 연방정부기관 VOICE(이민자 연루 범죄의 피해자들 Victims Of Immigration Crime Engagement)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언론이 무시해 왔고, 특별 이해를 가진 집단에 의해 침묵이 강요되어 온 사람들에게 목소리(voice)를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주장을 들어보면 “이민자 범죄”를 특별히 강조하면서 마치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커다란 사회악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 통계를 보면 이민자들은 일반 미국인들보다 범죄를 덜 저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자 범죄”를 강조하는 것은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선동에 불과하다. 이는 트럼프의 수석전략가이자 백인우월주의자인 스티븐 배넌이 대표로 있던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Breitbart)의 악명 높은 “흑인 범죄” 섹션을 떠오르게 한다. “이민자 범죄”를 강조하는 것은 제노포비아, 인종주의를 조장한다는 면에서 흑인들이 태생적으로 더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는 백인우월주의자들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흑인이 연루된 범죄에 대해 인종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사실 극우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주류언론들이 흑인 범죄를 부풀렸다. 흑인이 피해자인 경우 마치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식의 보도를 해왔다. 뉴욕 데일리뉴스와 뉴욕 포스트는 티모시 커프먼 살해 사건을 보도하면서, 커프먼이 마리화나 소지,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11번 체포된 경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죽음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피해자의 체포 경력을 논하는 게 얼마나 사건 맥락과 상관없는지는, 다른 매체들이 데일리뉴스나 뉴욕포스트를 인용해 가해자인 잭슨에게 11번 체포 경력이 있다는 오보를 낸 에피소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범죄 피해자가 흑인인 경우, 특히 가해자가 백인일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피해자 흠집 내기다. 피해자의 죽음은 어느 정도 자초한 일이라는 관점이다. 백인 우월주의자 손에 살해된 트레이본 마틴, 경찰의 손에 죽은 프레디 그레이, 마이크 브라운, 에릭 가너 등 수많은 흑인 희생자들이 있었다. 티모시 커프먼도 주말 항의집회에 나온 한 발언자 말처럼 “언론에 의해 다시 한 번 살해되었다.”
이러한 고질적인 인종주의와 함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자신감을 얻은 백인우월주의자 등 극우가 벌이는 혐오범죄가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 비영리 인권법률단체인 ‘남부빈곤법센터(The Southern Poverty Law Center)’가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1월 8일 선거 직후부터 12월 12일까지 한 달 동안 미 전역에서 1,000건이 넘는 혐오범죄 사건이 접수됐다. 보고서는 사건 가해자의 약 37%가 직접 트럼프를 언급하거나 그의 캠페인 슬로건을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흑인, 여성, 이민자, 무슬림, 성소수자들이 혐오범죄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혐오범죄 증가 추세는 미국에서 가장 리버럴한 도시 중 하나인 뉴욕에서도 우려할 만하다. ABC뉴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확인된 혐오범죄는 122건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두 배 이상이 늘었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범죄 피해자를 대변하고, 테러리즘에 맞서 미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고향 뉴욕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 테러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다. 그의 침묵은 그가 보호하겠다는 “미국인”이 모든 사람이 아니라, 일부만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한다. 미국을 다시 백인국가로 만들겠다는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광기어린 판타지에 힘을 실어 주면서 말이다.
백인우월주의 인종혐오 범죄야 말로 인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가 아닌가?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백인우월주의 테러리즘에 단호한 대처 요구에 트럼프는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답해야 한다. 대중의 분노에 대해 묵무부답, 불통으로 일관해 온 한국 대통령이 어떤 말로를 맞았는지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처럼 스스로 힘으로 대통령을 끌어 낼 날이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