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입을 떼기도 전에 “탄핵이다”, “탄핵됐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박수 소리도 들렸다.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도 보였다. 서승엽 박근혜퇴진대구시민행동 대변인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만세를 외쳤다. 10일 오전 11시 20분께, 최종 주문 선고까지 1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무색하게 선고는 빨리 났다.
이날 오전 10시 40분께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은 한산했다. 광장에 47인치 모니터를 설치 중인 대구시민행동 활동가들만 드문드문 모습을 보였다. 대구시민행동은 이날 동성로에서 시민과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고 곧이어 입장 발표도 하기 위해 광장에 모니터를 설치했다. 서승엽 대변인은 “언론에서 인용 안 될 경우도 가정해서 말해달라는데 할 말이 없더라”며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대구 동대구역 대합실 모니터 앞에도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중계를 지켜봤다. 중계를 지켜보던 이순남(60) 씨는 “탄핵이 안 됐으면 좋겠지만, 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벌은 받아야 한다. 국민을 위해 좋은 결과가 있으면 한다”고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반면 젊은 층은 명쾌했다. 노준수(21) 씨는 “대통령이 잘못했다. 탄핵이 되어야 한다.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11시 2분께부터 동성로 광장에 설치한 모니터에서 이정미 재판관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구시민행동 활동가들이 삼삼오오 모니터 앞으로 몰려들었다. 길을 지나치던 시민도 하나, 둘 모니터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11시 9분께, 헌재는 국회 탄핵이 각하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탄핵 사유의 중대성 여부가 다뤄지기 시작했다. 모니터 앞으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오전 8시부터 3시간짜리 공공근로를 마치고 퇴근하던 최경주(72) 씨도 모니터 앞에 섰다. 검정색 점퍼에 종이봉투를 하나 손에 든 채였다. 최 씨는 모니터를 통해 탄핵 선고를 끝까지 지켜보고, 대구시민행동의 기자회견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떻게 지켜봤냐는 질문에 최 씨는 금세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연히 탄핵이 되어야죠. 그 죄악을 다 감행하고도, 아무 죄가 없다고 그렇게 뻔뻔하게 그 자리에 앉아가지고 국민을 우롱한 건 아니지 않아요? 지가 국가를 위기로 몰아갔어요. 진즉에 내려왔어야죠. 직장에서도 대표가 책임을 지는데, 국가 총 책임 맡고 있는 총수가 그래서야 되겠어요? 4.19 때 고등학생이었어요. 경찰서고 뭐고 그땐 다 때려 부쉈지. 지금은 그때보다 더 위기에요. 4.19 랑은 비교가 안 돼요”
말을 이어가던 최 씨는 “내가 눈물이 다나요. 너무 기뻐서, 감사합니다”고 말을 맺곤, 환한 웃음을 보이며 뒤돌아섰다. 손에 든 종이가방을 조금씩 흔들며 그는 집으로 향했다.
최 씨 옆에서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조한솔(28) 씨는 한 손에 서점서 산 책이 든 종이봉투를 들었다. 취업 준비에 필요한 책을 사서 나오는 길이었다. 조 씨는 “어제부터 11시쯤에 결과 난다는 걸 알고 휴대폰을 검색했어요”라며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받았는데 국정농단에 권력을 이용했어요. 국민 입장에서 어이가 없고 화가 났어요”라고 탄핵이 정당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광장에서 모니터를 지켜봤던 60대 강 모 씨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판결해준 게 굉장히 기쁘다”고 소감을 전하면서 “개인적으론 성조기 흔드는 건 아주 안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미국 51번째 주는 아니지않냐”고 탄핵에 반대해온 친박 단체를 비판했다.
강 씨는 그들 때문에 혼란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물음에 “그런 분들은 일부라고 본다. 국민 70% 이상이 태극기 집회를 싫어하지 않나. 잘못된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부분적인 문제는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큰 우려를 하지 않았다.
11시 50분께, 시민행동이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시민행동은 “오늘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임을 자랑스럽게 선언한다”며 “국민들이 기어코 박근혜를 탄핵했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은 시작이다. 이제 우리는 낡은 정치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타협이 아니라 청산이 필요하다. 대구시민은 언제든 다시 촛불을 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호만 전교조 대구지부장도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손 지부장은 전교조가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가장 큰 패악질을 당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탄핵은 전교조 탄압 속에 힘들어하며 단합해 싸운 선생님들의 기쁨이자, 촛불을 든 시민들의 기쁨”이라며 “박근혜, 김기춘, 최순실 체제에서 교육 농단이 어떤 적폐보다 심각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적폐 청산의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손 지부장은 “다른 어떤 곳보다 대구 우동기 교육감이 박근혜, 김기춘 교육정책을 꼭두각시처럼 제일 앞장서 실현해왔다”며 “전교조에 많은 선생님을 탄압했고, 교육에 가장 안 좋은 모습을 대구교육청이 학교 현장에 자행해왔다.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에 의해 이뤄진 교육 농단을 척결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뒤늦게 대구백화점 앞 광장을 찾은 취재진이 시민행동에 재차 퍼포먼스를 부탁했다. 흔쾌히 다시 무대 앞에 선 시민행동 활동가들은 “국민이 이긴다”고 쓴 피켓을 들고 “박근혜 탄핵 만세”, “국민 승리 만세”를 외쳤다. 힘껏 팔을 들어 올려 만세를 외치며 “국민이 이긴다” 피켓도 내던졌다. “국민이 이긴다”가 나부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