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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희망원 문제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을까. 38년 묵은 대구시립희망원 내 인권침해와 비리 문제가 천주교 대구대교구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나, 대구대교구는 물론 한국천주교회마저 책임을 회피하자 대구시립희망원대책위원회(아래 희망원대책위)가 문제 해결 촉구 서한을 교황청에 전달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6일 오후 2시, 대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모인 희망원대책위 소속 단체들은 주한 교황 대사관 인근에 있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희망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서한을 교황 대사관에 전달했다.
희망원대책위는 대구시립희망원 사태에 책임이 있는 조환길 대구대교구장의 사퇴를 촉구했으나, 대구대교구는 희망원 사태를 ‘개인의 일탈 행위’라며 선을 그었고, 한국천주교회 역시 ‘대구대교구의 일이므로 간섭할 수 없다’는 방관적 태도를 보여왔다.
조민제 희망원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희망원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난 10월 이래 기자회견만 15회 했고, 성명서는 30번이나 작성했다”라며 “그런데도 희망원 사건은 대구대교구의 ‘꼬리 자르기’로 인해 제대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답답함을 표했다. 조 위원장은 “대구대교구뿐만 아니라 한국천주교회 역시 행동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고 싶은 우리의 절박한 심정은 교황님께 편지를 쓰기까지 이르렀다”고 전했다.
현재 희망원 사태 관련 혐의로 총 23명이 기소되었다. 여기에는 현직 신부인 전 희망원 원장 두 명과 수녀 한 명이 포함되어 있다. 은재식 희망원대책위 공동대표는 “현직 성직자가 기소된 것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으로도 유례없는 일”이라며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상황에 교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구대교구가 기소된 성직자들의 비리 행위와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는 점에 대해 은 대표는 “개인의 일탈이라면 교구 차원에서 해당 성직자들을 파문하는 것이 마땅할 텐데, 대구대교구는 도리어 이들을 감싸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 대표는 “현재 교구 차원에서 기소된 성직자들을 구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형 로펌을 통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며 “앞에서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뒤로는 비호하는 교구의 모순적 행태에 분노한다. 교황님께 이 사건이 꼭 전달되어 해결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로마에라도 가겠다”며 강한 의지를 전했다.
정중규 국민의당 희망원대책위원장은 “천주교계 위계조직 특성상, 교구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발령받아 재직한 사제가 비자금 규모만 7억 8천만 원에 이르는 대형 비리를 개인 차원에서 저지를 수 있다는 것에는 합리적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며 대구대교구의 ‘꼬리 자르기’ 행보를 비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을 인용해 발언을 이어갔다.
“우월한 신체를 가진 것이 대중의 신화가 되어버린 시대에 장애인들은 구석지고 외딴곳에 격리시켜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애인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인간다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으며 연대와 존중만이 사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프란치스코 교황, ‘병자와 장애인을 위한 미사’ 강론 중)
정 위원장은 “교황의 이런 지침에 따라 한국 가톨릭 교회가 수용시설이 아닌 ‘장애인의 사회 통합’으로 근본적 변화를 향해 나아가길 촉구한다”고 전했다.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희망원이 폐쇄되어야 한다며 구약성서에 나오는 ‘민수기’를 비유로 들었다. 박 대표는 “‘민수기’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를 지나는 38년간의 기록”이라며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 등으로 ‘개고생’ 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 ‘민수기’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그런데 광야가 아무리 힘들다고, 우리가 다시 노예로 돌아갈 수 있겠나. 희망원 안에서 아직도 ‘출애굽’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을 광야로 데려 나와서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약속의 땅’으로 함께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해 기자회견 참여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박 대표는 “저번에 교황님이 거대 수용시설인 ‘꽃동네’에 가시는 걸 말리려다 줄줄이 재판을 받았는데, 이번 희망원 사태에 관해서는 교황님도 자유를 갈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곁에 섰던 하느님의 마음으로 바라봐주시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희망원대책위는 주한 교황 대사관 직원에게 서한문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직원이 서한문을 기자회견 자리에서 받지 않으려 해 대사관에 직접 가려는 대책위를 경찰이 막아서는 등 실랑이가 벌어졌다. 대책위는 “오전에도 대책위가 서한문 전달 뜻을 전하자 ‘대사관에 우편함이 있으니 넣고 가라’고 해 황당했는데, 경찰 중재로 여기까지 나왔는데도 몇 발자국 안 떨어진 기자회견장 앞에서는 받지 않으려는 태도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사제휴= 비마이너 / 최한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