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북 경산시 문명고등학교는 한국사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됐습니다. 5,500개 전국 중·고교 가운데 유일한 학교입니다.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도 강하게 반발하며 국정교과서 신청 취소를 요구했지만, 교장(김태동)과 문명교육재단(이사장 홍택정)은 묵묵부답입니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서 발견된 오류는 이미 널리지 알려진 만큼, 생략하겠습니다. 왜 유독 경북지역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이 있었을까요?
이영우 경북교육감은 그동안 수차례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지지해 왔습니다. 정부가 국정교과서 전면 적용을 1년 유예하자, 쓴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절정은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기준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었습니다. 교육부가 보낸 공문에는 교원동의율 80%를 넘어야 한다고 했지만, 경북교육청은 2월 8일 “교원동의율은 관계없다”는 공문을 학교로 보냈습니다.
15일 신청 마감 결과 3곳‘뿐’이었지만, 교육감의 국정교과서 추진 의지는 상당했습니다. 이 때문에 경북은 1월~2월 사이 연구학교 신청을 추진하던 학교가 10여 곳이 넘었습니다. 기자가 취재 중 만난 경북지역 한 고교 교사 A는 “학교에서 연구학교 신청을 검토하다 중간에 그만뒀는데, 얼마 후 교육청에서 왜 그만뒀느냐. 신청을 해 보라”며 권유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역시 취재 과정에서 경북지역 한 고교 교장 B는 “교장 혼자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교육청에서 추진한 사항을 검토도 안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학교는 결국, 교사들의 반대 의견 속에 연구학교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교육감 의지가 강한 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추진 자체 보다는 과정이 문제입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토론 속에서 합리적 판단과 결정을 했다면 모르지만 말이죠. 15일 저녁까지 연구학교 신청을 놓고 팽팽하던 김천고는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고, 교장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김천고는 이영우 교육감이 민선 교육감에 당선되기 전 교장을 지낸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경산 문명고는 왜 5,500분의 1이 되려고 했을까요? 학교운영위에서 연구학교 신청 안건을 다뤘는데, 처음에는 반대 7명, 찬성 2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이 신청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결국 신청서를 제출하기에 이릅니다.
연구학교 추진을 반대하던 최 모 교사는 3학년 담임에 배정됐다가, 보직에서 해임까지 됐습니다. 학생들에 따르면 김태동 교장은 최 모 교사 보직해임 사유로 “졸업식에 염색하고 온 3학년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보직에서 해임된 최 모 교사, 다수 학부모 의견을 종합하면 김태동 교장은 평소 대화와 소통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기는커녕, 학부모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달라고 했던 분이랍니다.
이날 연구학교 신청에 항의 방문한 재학생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우리 교장 선생님은 그럴 분이 아닌데···”라고 했습니다. 그런 교장이 17일 오후부터 기자는 물론, 학부모 연락도 받지 않고, 학교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명고는 사립학교입니다. 1966년 경북 청도군에 중·고등학교를 설립한 이는 현 홍택정 이사장의 아버지인 홍영기 전 이사장입니다. 홍영기 전 이사장은 1960년 육군소령으로 예편한 이후 1966년 학교법인 문명교육재단을 설립하고, 1980년 경산버스(주) 회장에도 취임합니다.
홍 전 이사장은 1968년 ‘5·16 민족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는 홍 전 이사장을 ‘새마을운동 선구자’로 소개하며,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한 사진을 1층 로비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문명중·고는 1993년, 운문댐 건설로 기존 학교부지가 수몰되면서 경산시로 옮겨옵니다. 2008년 첫째 아들인 홍택권 씨가 경산버스를 물려받고, 둘째 아들인 홍택정(69) 씨가 문명교육재단을 물려받습니다.
홍택정 이사장은 현재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 경상북도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앞서, 국정교과서 보조교재를 추진했다가 취소한 대구 계성고 재단 계성학원 김태동 이사장이 대구시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사립법인협의회는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며 국정교과서 채택을 옹호해왔습니다.
홍택정 이사장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에 있는 남양 홍씨 가문입니다. 이곳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휘호와 선친인 홍영기 전 이사장이 함께 새마을운동을 둘러보고 있는 현장 사진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문명고의 연구학교 신청에 대해 그의 지인들은 고등학교 동문 인터넷 카페에서 “홍 이사장의 소신”, “문명고 잘하고 있다. 홍택정 이사장의 강한 의지”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가 살아온 삶과 정치적 입장 표명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학교는 여러 주체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공적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홍 이사장의 굳은 의지가 학교 주요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이사장이 모든 걸 결정하는 대한민국 사학재단의 고질적인 문제겠지요.
홍 이사장의 견해를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그는 “나는 그런 전화 받고 싶지 않아. 왜곡하는 전화 받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자가 “왜곡이 아니라, 반론을 듣고 싶어 전화드렸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습니다. 하지 못한 질문이 남아 있었는데 말입니다.
“학생·학부모·교사들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반영하실 계획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