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합니다” / 김현선

[기고] 학생 힘으로 국정교과서 신청 결정 철회 이끌어낸 경북 김천고

16:22

김천으로 가는 마음이 조급하다. 가속페달을 자꾸 밟았다. 지난주 김천고가 한국사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한다는 말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반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고, 14일 오전까지만 해도 채택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났다고 해서 ‘잘 되었구나’ 안심했다. 그런데 14일 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내일 학교 측에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신청한답니다. 학교운영위,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사회와 재단의 압력으로 신청한답니다. 학부모님들 오전10시에 학교에 모여서 항의 방문을 합시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무실과 교장실은 공사 중이었다. 임시로 사용하는 교무실에 교장 선생님 책상이 놓여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자리에 안 계셨다. 선생님들은 각자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계신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하고 평온하다. 하나, 둘 모이는 학부모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서로 눈인사만 나누었다. 오고 있는 학부모에게 재촉하는 전화를 하는 등 마음이 어수선하고 분주했다.

“선생님들은 업무를 보셔야 하니 강당으로 가입시다.”

교감 선생님이 소강당으로 학부모들을 안내했지만, 우리는 선생님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면담하기를 요구했다.

먼저 온 학부모 20여 명이 소강당에 모여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은 우리가 듣고 싶은 국정교과서 채택에 관한 말씀은 안 하시고, 자신의 교육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다. 우리는 속이 탔다.

“교육철학은 저희들도 압니다. 국정교과서 철회하신다는 말씀을 하세요.” 목소리는 커지고, 발언하는 어머니 한 분은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리신다. 다들 눈시울이 붉어진다.

“교장 선생님 학교의 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입니다. 우리들이 지키겠습니다. 철회하십시오.” 교장 선생님은 “좀 더 재고해보겠습니다”며 자리를 떠나셨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추진에 반대해 김천고에 항의방문한 학부모들. [사진=독자 제공]

점심시간이 되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마치고 학교식당으로 몰려갔다. 우리는 교장 선생님이 결제 사인을 못하도록 일부는 자리를 지키고 교대로 식사하러 갔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학생들이 하나둘씩 강당으로 모이더니, 어느새 서 있을 자리도 없이 꽉 차버렸다. 삼삼오오 국정교과서에 대해 머리를 맞대어 이야기 나누더니 사회자가 나왔다.

학생들은 질서정연하게 손을 들고 자신들이 준비한 자료를 들고 발표했다. 자율적으로 자유토론을 시작했다. 너무나 대견스럽고 놀라웠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고, 입시 문제에 찌들어 있는 줄만 알았는데, 자기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객관적인 자료를 준비해 토론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국정교과서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는 김천고 학생들 [사진=김현선]

“국정교과서 채택의 문제를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역사학자들도 문제가 많다고 한 왜곡된 역사를 우리는 배울 수 없습니다. 국정화교과서 채택을 반대합니다.”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은 넓게 사학을 경영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는 것입니다.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져야하는데 국정교과서를 채택한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건 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쓴 자보를 행정실장님이 떼어내며 학생들은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정치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께 왜 안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자유토론은 저녁까지 계속됐다.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했으며, 다른 학생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 또한 훌륭했다.

오후 내내 학부모들은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 생각을 나누었다. 퇴근 시간 후 학교에는 학부모 수가 점점 늘어났다. 두 차례나 동문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우리와 소란이 있었고, 경찰이 오는 상황도 있었다. 이사장과 교장 선생님과 만남이 있고 나서 교장 선생님은 우리를 모이게 한 후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철회하겠다는 소견을 발표했다.

“와~ 김천고 만세!”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고, 우리는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에게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수를 보냈다. 학생들은 학부모님들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며 서로 부둥켜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학교의 주체는 재단과 이사회가 아니라 교사, 학생, 학부모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는 김천고 학생의 말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우리는 세대를 넘어 그것이 정의로우면 아들딸에게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