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마치며, 올해 공연 계획을 물어보는 중이었다. 단장 이명희(47) 씨는 올해 4월 세월호 3주기 공연을 시작으로 5.18 광주 공연도 가능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앞자리에서 듣고 있던 합창단 솔리스트 이준형(41) 씨가 난처하다는 듯 깜짝 발표를 했다.
명희(47) 씨도, 지휘자 이보나(43) 씨도, 합창단원이자 자·타칭 후원회장 박신호(62) 씨도 모두 한목소리로 “정말?”이라고 되물으며 놀랐다. 또 다른 합창단원 남가을(43) 씨만 올 게 왔다는 듯 담담하게 웃었다. 준형 씨와 가을 씨는 오는 5월 결혼을 약속했다.
“합창단 하면서 연애한 거 맞제? 그렇게 이야기해라” _ 이명희
“(합창단 전에는)썸 타고 있었다고 하면 된다” _ 이보나
“(합창단 하면서)더 확실해진 거지, 연애가” _ 이명희
이들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자 명희 씨와 보나 씨는 합창단 활동으로 맺어진 인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신호 씨가 “에이, 그러면 안 된다”고 진화에 나섰고, 준형 씨가 능청스럽게 상황을 정리했다. “훈훈하게, 그런 걸로 정리하죠”
대구 중심가서 울려 퍼진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주인공
2015년 만들어진 달서평화합창단, 세월호 참사 이후 활동으로 인연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6일 저녁 8시께, 달서구 상인동 한 식당에서 달서평화합창단 단원들을 만났다. 달서평화합창단(평화합창단)은 지난해 12월 3일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일대에서 열린 ‘내려와라 박근혜’ 5차 대구 시국대회에서 “민중의 노래”(영화 레 미제라블 OST)를 선보여 3만 5천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라는 가사로 유명한 노래가 ‘보수적’이라는 대구에서 ‘떼창’으로 울려 퍼졌다. <한겨레>는 이 공연 동영상을 ‘횃불과 함께 울려 퍼진 대구 민중의 노래 떼창’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약 4만5천 명이 영상을 봤다. 지휘자 보나 씨는 “그땐 저도 손 떨렸잖아요. 이젠 무대에 서도 안 떨리거든, 그냥 늘 서던 무대라서. 그런데 그날은 딱 섰는데 손이 떨리더라고”라고 회상했다.
평화합창단은 지난 2015년 10월 만들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런저런 사회활동을 시작한 명희 씨가 주축이 됐다. 그해 11월 달서평화콘서트를 통해 처음 무대를 선보였다. 북녘어린이 영양빵공장 사업본부 통일 운동 사업에 공모한 것이 덜컥 당첨돼 생긴 일이다. 콘서트를 하기로 했으니 합창단도 필요했다. 단장 명희 씨는 주1회, 한 달에 4번 연습해서 공연하면 될 거란 ‘가벼운’ 마음으로 합창단원을 모았다.
명희 씨는 “세월호 활동을 같이하면서 서로서로 더 알게 됐고, 힘도 어느 정도 생겼다는 판단이 들어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동네에서 해보고 싶었어요”라며 “세월호도 단순히 배가 침몰한 사건에 머무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거니까, 주제를 좀 더 확대해서 주민들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라고 합창단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합창단이 해를 넘겨 운영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성악가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나 씨도 일회성 공연이 될 거라 생각하고 흔쾌히 지휘를 맡았다. 보나 씨는 “(11월 콘서트) 1회 공연을 위해서 저는 섭외가 된 거죠. 그거하고 끝나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준형 씨도 “저도, 저도”라며 “(한 번인데)그럼 함 하지 뭐, 그런 생각이었다”고 맞장구쳤다.
예상은 빗나갔다. 첫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다음 공연이 잡혔다.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는 그해 12월 4일 ‘세월호 참사 600일, 기억과 다짐의 날’ 시민대회를 준비하면서 합창단에 공연을 부탁했다. 곧이어 12월 26일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송년회 무대에도 섰다.
이 무렵 합창단은 ‘오합지졸’이었다(고 회상한다). 합창단 이름도 달서평화합창단이 아니라 ‘동네합창단 절대난감’이었다. 신호 씨는 “형편없다 해야 할까? 제창 수준의 합창이었다”며 “지난해 세월호 2주기 행사 준비하면서 한 번 더 힘을 합쳐보자 그러면서 ‘15년보다 훨씬 발전된 거”라고 말했다. 명희 씨 설명대로면 지금 합창단은 두 차례 재정비를 거친 ‘3기’ 쯤 된다.
오합지졸, ‘절대난감’에서 평화합창단으로
대구, 성주, 광주 종횡무진 공연 선보여
2015년 3차례 공연 후 재정비를 마친 합창단은 2016년 좀 더 바빠졌다. 사실 그해 4월 세월호 참사 2주기 공연 때까지만 해도 그리 바쁠 것이 없었다. 2015년처럼 11월 달서평화콘서트가 예정된 공연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로 옆 동네 경북 성주에 사드배치가 결정됐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다.
전국 곳곳에 그들의 음악이 필요한 곳이 생겼다. 현장 곳곳에서 그들에게 공연을 부탁했고, 자발적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약 1년 2개월 사이에 아홉 차례 무대에 올랐다. 광주에서도 요청이 왔다. 2017년 새해를 광주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맞았다.
광주 공연은 이들에게 꽤 큰 감동으로 남았다. 가을 씨는 “분위기가 대구랑 완전 다르더라구요. 사람도 많았고, 무대 구성도 대구에선 볼 수 없던 구성이었어요. 경상도에서 전라도 넘어가서 공연한다는 것 자체도 설렜어요”라고 말했다.
준형 씨도 “대학생 때 데모하러 가고, 작년인가? 광주 묘역 갔다 오고 이번이 세 번째였나? 공연은 처음이었거든요. 앞서서 여덟 번 공연하면서 긴장감은 거의 사라졌는데, 광주는 손이 막 떨리더라”며 “광주가 민주화 성지잖아요.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요”라고 말을 보탰다.
가을 씨는 다시 “다들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휘자 선생님도 정말 고생하셨고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 서로서로 힘이 돼서 평화합창단 이름으로 에너지가 생기는구나, 실력이 쌓이는구나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정점을 찍었던 순간이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명희 씨도 “89년에 가보고 이십몇 년 만에 광주는 처음 갔어요. 집에서 살림하고 그러니까 갈 기회도 없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었죠. 광주를 가기 전까지 준비하고, 공연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까지 우리 단원들한테 되게 감동이었어요”라며 “올해 5.18 때는 광주에서 차도 보내 준댔어요”라고 광주 공연을 기억에 남는 공연 중 하나로 꼽았다.
이보다 앞서 성주도 찾았다. 지난해 12월 11일 사드배치철회 152차 성주촛불집회에 참석해 그동안 연습했던 노래 여섯 곡을 모두 선보였다. 당시 보나 씨는 공연을 설명하면서 “위 셀 오버컴(We shall overcome)은 1963년 8월에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예 해방과 링컨 기념일을 맞아서 20만 명이 떼창으로 부른 노래”라며 “성주에서 미국 데모가를 부름으로써 저들에게 우리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특별히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신호 씨는 “우리가 연습한 노래를 전부 선보인 곳은 성주가 처음이었다”며 “호응도 좋아서 전 성주 공연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내려오면 더 이상 할 게 없는 걸까?”’
‘세계적인 동네합창단’을 향해서
2015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1년 2개월, 합창단을 바쁘게 만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나 사드배치 문제는 오는 3, 4월이면 마무리될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염원대로 탄핵당하고,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음악으로 현장에서 연대해온 평화합창단은 올해 단독 공연도 해보고 싶다.
명희 씨는 “박근혜가 내려오면 더 이상 우리가 할 게 없는 거냐,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세상은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거고, 사회가 한 번에 다 바뀌진 않을 거잖아요. 작은 무대도 있을거고 큰 무대도 있을 건데, 합창단하고 함께 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다”며 “중요한 건 합창단이니까 실력을 계속 올려서 단원들 전체 수준이 오르면 발표회도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보다 앞서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긴 하다. 바로 준형 씨와 가을 씨의 결혼 축하 공연이다. 두 사람은 축하 공연을 염두에 뒀다는 듯 “식장을 야외로 잡았어요”라고 말했다. 명희 씨는 “공연이 하나 늘었네”라고 했고, 준형 씨는 “4월에 공연도 보고, 음향도 체크해서 부실하다 싶으면 음향팀 불러야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보나 씨가 “웨딩 드레스, 턱시도 입고 솔로 하면 되겠네”라고 화룡점정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