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제 참고 넘기는 대구 특성화고생 절반…“해결 안 될 것 같아서”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특성화고 청소년 노동실태 결과 발표

19:40

청소년들은 일하다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기보다 참는 경우가 많았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참는 이유로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를 꼽았다.

대구 서구에 사는 조현아(18, 가명) 씨는 지난해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모두 4곳에서 일했지만, 한 번도 최저임금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현아 씨는 최저임금을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6,030원 받은 적이 없어요. 제일 많이 받은 게 6,000원? 최저시급도 못 받은 거잖아요. 우리는 시급을 안 쳐줘요.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돈이 필요하니까.”

어딜 가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현아 씨는 이를 당연한 듯 받아들여야 했다.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여겼다.

“한 달 수습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는 5천 얼마를 받았어요. 사장님이 ‘네가 잘해야 올려주지’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게 협박은 아니고 장난? 그렇다고 장난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같이 일하던 친구는 사장님이 시급 제대로 안 올려줘서 화나서 그만두고 그냥 나갔어요”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대구청노넷)가 19일 발표한 대구 특성화고 청소년 노동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노동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방법으로 ‘참았다’가 43.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유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가 56%로 절반이 넘었다.

▲자료=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자료=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청소년이 겪는 노동 문제는 주로 일하다가 다친 경험(32.1%),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27.5%), 임금을 적게 받거나 못 받은 경험(22.3%)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말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은 남녀 모두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지만, 다친 경험과 임금은 못 받은 경험은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시급을 안 줘도 되니까 일부러 더 학생 알바를 많이 쓰는 거 같아요. 반말하는 손님들도 있죠. 학생이라고 무시하는 거죠. 남자애들은 덩치도 좀 있고, 얼굴만 보면 나이를 잘 알 수 없어서 그런가. 여자라서 좀 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조사 결과에서도 청소년 노동인권 확대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76.1%) 다음으로 청소년 노동자 인격 존중(66.3%)이 꼽혔다.

근로계약서 미작성(38.4%), 최저임금 위반(19.6%), 주휴수당 위반(13.8%), 무급 초과근무(8.4%) 등 근로기준법 위반도 나타났다. 하지만 해당 항목에 모른다고 답한 경우가 2~40%가량 차지해, 기초적인 근로기준법 교육 필요성도 제기됐다.

대구청노넷, 청소년 노동인권 위한 9가지 정책 제안

대구청노넷은 이날 오후 4시 대구시 중구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대구 특성화고 청소년 노동실태 조사결과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에는 김현주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대표, 김웅석 전교조 대구지부 실업위원회 사무국장, 신욱철 대구고용노동청 근로개선2과장이 함께했다. 대구청노넷은 대구교육청 관계자에게도 토론 참석을 요청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조은별 대구청노넷 조사연구팀장은 “자신의 근로계약 사항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며 “청소년 노동자를 대상으로 근로계약 사항에 대한 교육이 필요함, 청소년 노동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담당자 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청소년 노동을 바라보는 교육청과 교사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청소년 노동은 비공식 노동이 됐고, 이를 악용해 노동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이미 많은 청소년이 노동시장에 진출했다. 학교 일상과 노동의 조화에 대한 고민과 학교에서도 청소년 노동의 공식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외에도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 ▲학내 안심알바신고센터 홍보 추진 ▲청소년 노동자 문제 체계적으로 지원할 상시적 기관 설립 ▲대구교육청 차원의 청소년 노동실태 전수 조사 등 9가지를 제안했다.

대구고용노동청은 청소년근로지킴이사업, 청소년권익센터사업 등을 통해 특성화 고교를 직접 방문해 상담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대구 19개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청소년 79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5월부터 한 달간 이루어졌다. 학교 방문 조사 및 온라인 설문조사로 진행됐으며, 전체 응답자 중 54.2%가 노동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