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쪽에 와서라도 살려줬으면···누가 알게 무엇이었겠소”
“민주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초등학교도 안 나온 그런 사람을 바로 저 골짜기에서 총으로 쏴 죽인 거라. 죽어도 억울하게 죽은 거라”
보도연맹(국민보호선도연맹)에 가입했다며 학살당한 민간인에 대한 기억이 스크린에서 쏟아진다. ‘빨갱이 무덤’을 뜻하는 영화 <레드툼>의 한 장면이다.
10일 오후 2시 30분 대구시 중구 오오극장에서 열린 상영회에서 스크린 속 등장인물과 관람객 40여 명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날 관람하러 온 이들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기 때문이다.
<레드툼>은 한국전쟁 전후 보도연맹원으로 모집돼 학살당한 민중의 이야기를 당대 사람의 입을 통해 증언한다. 식량을 준다는 말에 혹하거나 강제로 가입을 당한 이들의 주변인이 스크린 속에서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구자환 감독은 경상남도 밀양시·창녕군·의령군 등 지역을 순회하며 아직 당대 사람들의 증언을 모았다. “좌익분자로 몰려 죽었다. 억울하게 죽었다”, “철도경찰이 보도연맹이라고 형님을 무조건 끌고 갔다. 전부 일본놈 밑에서 일하던 놈들이 유지가 돼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보도연맹원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참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관람객들은 눈을 흘기고 코를 훌쩍였다.
이날 영화를 관람한 채영희(71) 10월항쟁유족회 회장은 “당시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우리 가창골 희생자 유가족들도 희생자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증언했다.
이어 “연좌제로 고통받으며 숨도 못 쉬고 살아왔다. 아직도 당시 생각만 하면 몸서리가 나온다.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레드툼>은 대구에서는 ‘오오극장’이 유일하게 상영한다. 상영정보는 공식 홈페이지(55cine.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도연맹은 1949년 6월 조직된 반공단체다. 1948년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이승만 정권이 국민의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조직했다. 한국전쟁후 이들은 ‘빨갱이’로 몰려 집단 학살당했다.
대구의 경우 1950년 가창골, 경산코발트광산, 앞산빨래터 등에서 학살이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창골에서는 1950년 7월 7일부터 9일까지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제주 4.3관련 440여 명, 여순사건 관련 242명이 경찰과 군에 의해 학살됐다. 이후 경찰과 군은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15년 이상 장기수 1,196명을 추가로 학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