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한 채 꼭꼭 누르고 살았던 죽음들의 역사. 이하석 시인이 10월항쟁 유족들과 함께한 신간 ‘천둥의 뿌리'(도서출판 한티재) 출판기념회가 지난 11일 대구 범물동 가락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이 시인은 유족들과 함께 수년 동안 10월항쟁 흔적과 민간인 학살 현장을 다녔다. 가창댐, 경산 코발트 등지를 다니며 기억을 찾아내고 기록했다. 시집에 1946년부터 올해까지 70년 동안 쌓인 역사와 아픔을 끄집어내 시 51편을 담았다.
이하석 시인은 “많은 죽음들의 상처가 곧장 버려지고, 망각될 수 없어서 계속 덧났던 죽음들의 역사인 10월항쟁을 핥고 되새김질하는 언어로 그려내길 바랐지만, 그래도 나 역시 여전히 죽음의 사랑을 제대로 말 못 한다”고 했다.
또한 죽음의 기억은
또한 죽음의 기억은
집 나온 길 같다.
구불구불, 구절양장의 소화력이 있다.
남은 우리 삶들을 곧잘
막다른 골목 끝에 뚝, 뚝, 세워놓는다.(전문)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은 “절절하게 우리의 아픔을 대변하는 우리의 이야기”라며 “‘우체부 안 오는 빈집의 뒤안 같다’를 읽을 때는 펑펑 울었다. 앞 사립문이 있는데도 지나다지지도 못했다.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뒤 쪽문으로 다녔다”고 회상했다.
빈집의 뒤안같이
빈집의 뒤안같이기억마다 죽음이 파랗게우거졌다.우체부 안 오는빈집의 뒤안 같다.(전문)
어머니는 말합니다아들아,목구멍 넘기는 침묵의가시가 자꾸 걸리는구나.어미는 아직도,무덤도 없는 죽음의 사랑을-사로잡히지 않는 말로도-말 못 한다.(전문)
애비의 죽음은그녀에게 애비의 죽음은구름 같은 밥의 질문 안에 있지요.꼬박꼬박 졸다 깨는자식 자리 윗목에 묻는 밥의식은 명백(明白)의 대답 같은 침묵이지요.목구멍 넘기기도 전에걸리는 사랑이라는 말의 뼈.그 속에서 늘 우레가수런거립니다.천둥의 뿌리는희디흰 생계 속에 있어서분홍 아이스크림의그 단맛 나는 길쯤이사에돌아왔지요.(전문)
이하석 시인은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6세에 대구사람이 됐다. 197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1980년 시집 ‘투명한 속’으로 이름을 알렸다. 1987년 대구민족문학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현재 예술마당솔 이사장, 대구문화예술회관 예술감독이다. 시집으로 ‘우리 낯선 사람들’, ‘녹’, ‘상응’ 등이 있고, 대구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도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광협문학상, 대구시문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