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울산, 불과 두 시간도 안 걸리지만 얼마나 아득하고 먼 거리였을까.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딸을 잃은 황명애 국장(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은 그날 이후 재난과 참사 현장에 찾아가는 일을 삶의 큰 기둥으로 세우고 산다. 2년 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팽목항으로 갔다. 그러나 그 현장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수십 번도 더 묶이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참사와 재난 현장을 보는 일은 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9월 12일 지진 이후, 여진으로 인해 울산에서 힘든 삶을 전한 내 문자에 그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했다. 부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하지 말고 미리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간절한 신념이 배인 답이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유족들과 대구안전재단 김태일 대표님이 울산에 왔다. 여전히 지진과 여진으로 피폐해진 삶 위로 태풍 ‘차바’가 지나 간 울산. 집을 잃었고, 고스란히 물에 잠긴 시장 상인들은 생존 터전을 잃었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태풍이 지나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피해를 위한 복구 작업은 아직 시작단계다. 언제 다시 집을 짓고 언제 다시 시장에 활기가 돌아올 것인가. 평생 모은 돈에 빚을 얻어 새로 집을 짓고 가게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무슨 새로운 삶이 될까. 무엇보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간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앓고 병이 든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희생자 유족들 중 많은 사람들이 병이 들어 생을 마감했다. 보이는 복구뿐만 아니라 무너진 마음 회복도 중요하다. 가장 피해가 컸던 울산 울주군 부군수를 만난 자리에서 무엇보다 우선 부탁한 일도 재난을 맞은 사람들 마음을 돌봐 달라는 거였다.
울주군청 마당에 내리는 햇살이 따뜻하다. 황명애 국장이 어린 시절 겪은 아픈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슨 운명인지 그때도 불 때문에 겪은 아픔이다. 안전재단 김태일 대표가 지진과 여진으로 힘들었을 아이들을 걱정한다. 무엇보다 아픔이 쌓이지 않도록 아이들 마음을 잘 돌보라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는다.
마음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울산시가 먼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울산이 유독 피해가 컸던 건 단순히 태풍 탓만이 아니다. 무분별한 난개발이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책임을 지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나라. 그 나라가 아니라면 마음의 병은 완치될 수 없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해서도 아직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