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진 출마’ 김부겸⋅이정현, 지역주의 벽을 넘다”(SBS)
“지역 타파⋯김부겸⋅이정현 ‘인간승리’”(KBS)
“상대 당 ‘심장’서 승리⋯지역주의 무너진 선거구”(JTBC)
“김부겸⋅이정현 지역벽 넘었다”(조선일보)
“김부겸, 대구서 31년 만에 야당 첫 당선⋯영⋅호남 철옹성 ‘균열’”(경향신문)
지난 4.13 총선이 끝난 바로 다음 날, 공중파, 종편,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김부겸-이정현 두 당선자에게 ‘지역주의 극복’이란 표현이 뒤따랐다. 정치적 행위가 공공연하게 지역 기반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상대 당의 정치적 심장부에서 이룬 승리를 표현하는데 그보다 적확한 표현은 없어 보였다.
총선 후 약 6개월이 지났다. 김부겸-이정현이 정말 지역주의 극복 신호일까? 29일 대구 동구 대구경북디자인센터에서 열린 2016 한국사회학회 지역순회 특별 심포지엄에서 그 답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김태일, “지역주의 약화? 섣부른 판단”
영⋅호남, 서로 비추는 거울 같은 정치 구조
선거제도 개혁으로 거울 깨야지만…
이날 심포지엄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태일 영남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는 “지금 상황에서 지역주의 정치 구도가 약화되고 있다는 판단은 섣부르다”며 “일종의 착시현상일 수 있다. 그렇다고 지역주의 정치 구도가 영구불변할 것이라는 판단도 이르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심포지엄 1부, 영남정치와 지역주의 섹션에서 ‘거울과 나비, 지역주의 정치구도는 약화되고 있는가?’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우선 김 교수는 지역주의를 “정치적 동원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인혁당 재건위, 민청학련 사건 등을 통해 유신독재를 강화하려 했던 이 대목이 이 지역(영남)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한쪽으로 기가 꺾여버렸고, 이 지역이 현재 보이는 보수적 행태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70년대 이후 대두한 지역주의가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을 계기로 호남에 대한 배제, 왕따로 강화되기 시작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확립된 소선거구제, 단순다수제 선거 방식으로 고착됐다고 봤다.
김 교수는 “지역주의는 영남지역의 선제적 공세로부터 시작됐고, 호남 지역주의는 수세적, 방어적 기제로 등장했지만, 지역주의란 한 번 생기고 나면 누가 먼저 시작되었느냐와 관계없이 서로를 강화한다”며 “마치 두 개의 거울을 마주 놓은 것과 같다”고 ‘거울 효과’가 지역주의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김 교수는 두 개의 거울을 깨는 구조적 변화가 지역주의 정치 구도를 해체하는 가장 효율적인 처방이라고 봤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적대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강화하는 것이 거울 효과고 그 거울을 동시에 깨는 가장 실효성 있는 방법은 선거제도의 개혁”이라며 “그러나 이미 정치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처지가 불안정해질지 모를 이런 제도 개혁에 나설 리 만무하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김 교수는 김부겸-이정현 같은 ‘나비’들의 날개짓에 큰 의미를 뒀다. 김 교수는 “김부겸의 득표는 (정당이 아닌) 후보 개인적 자질에 대한 인정이다. 그런 점에서 김부겸의 선전은 지역주의가 약화되었다는 신호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제했지만, “비록 김부겸 개인을 보고 지지했지만, 대구 유권자들이 새누리당 아닌 후보를 지지해본 경험을 한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춘, “지역주의, 일종의 도덕감성의 마비상태”
지역주의 강화, 근린공동체 영향 커
성주 사드 투쟁, 지역주의 균열 내는 변화의 씨앗 될 것
반면 김 교수 발표에 토론자로 나선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사회학)는 김태일 교수의 발표에 동의하면서 조금 다른 해석도 내놨다.
김동춘 교수는 먼저 지역주의를 반공주의 산물로 봤다. 김 교수는 지역주의가 지금 모습으로까지 강화한 것도 지역주의가 개발독재 물질주의와 강하게 결합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김 교수는 “자기 지역 출신, 정당을 지지하는 심리와 한국의 개발독재 물질주의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며 “일종의 도덕 감성의 마비상태에 있다고 보는데, 이걸 정상화하는 것이 지역주의 극복에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법 개정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저도 이 지역 출신이어서 와서 보면 지역주의가 강화되는 과정이 미시 정치의 영향이 있더라”며 “미시적인 조직, 네트워크, 근린공동체에 의해 지역주의가 강화되는 게 있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영남이든 호남이든 밑으로부터의 풀뿌리 정치나, 아래부터 건강성을 회복하면 패권적 지역주의든, 방어적 지역주의든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그래서 4.13총선보다 더 의미 있는 게 성주 사드 반대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성주에서 천 명, 2천 명이 새누리를 탈당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조금 다르지만 경주라든지 일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나 정부 일반에 대한 불신감이 지역주의를 균열시키는 밑으로부터의 큰 변화의 씨앗이 될지 모른다”고 전했다.
김태일 교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공감했다. 김 교수는 “성주에 가면 실제로 지역의 이해관계 불안감이 평화운동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쭉 나아간다”며 “그걸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건 작목반 같은 생산자 조직들, 미시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김태일 교수는 “김부겸 당선도 그렇다. 경북고 나오고, 여기서 초중학교 안 나왔으면 못 할 거다. 김부겸은 정치적으론 비주류지만 사회적으론 주류 출신”이라며 “여기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가치를 제시하고 비전에 공감을 얻으면 성공하는 것이 아닌가. 미시정치 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