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을 시작으로 철도, 병원 등 공공기관 파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구에 본사를 둔 한국가스공사노조도 지난 27일 오전 9시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 확대를 결정한 사측이 성과 평가 기준을 만들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가스공사 이사회는 지난 5월 31일 기존 1~2급 직원에게만 적용하던 성과 연봉 차등을 4급 직원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모든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6월까지 이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내년도 인건비를 동결하고, 도입 우수기관은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이다.
성과연봉제는 직급마다 성과를 평가해 연봉에 차등을 두는 제도다. 정부는 개인 능력에 따라 연봉을 받는 급여 체계라고 설명한다. 한국가스공사 직원들은 개개인 성과를 책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숙련도가 비교적 덜한 낮은 연차 직원들이 낮은 연봉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경쟁 유도가 아닌 직원 간 싸움 붙이는 꼴
같은 직급에서 최대 2,400여만 원 연봉 차이
팀워크 깨질까 우려…“해외와 경쟁해야”
대부분 공공기관은 1, 2급 고위급만 성과연봉제를 적용해왔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개정된 연봉제 규정은 3급 직원까지 평균 3% 기본 연봉 차등을 둔다. 연봉의 30% 이상은 성과 연봉으로 4급 직원, 연구원까지 성과 연봉제를 확대 적용한다. 전체 직원의 70%가량이 적용받는 셈이다.
이에 따라 공사가 제시한 직급별 기본 연봉 상·하한 변경 내용을 보면, 4급 직원은 고성과자와 저성과자 연봉 차이가 최대 2,400여만 원이다. 3급은 2천여만 원, 연구원은 1천여만 원 차이 난다.
한 지역 사업소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손흥민 씨(가명, 40대)는 “우리는 기술 집약적인 분야라 한 사람이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팀 전체가 잘해야 한다”며 “(성과연봉제는) 누군가는 고성과자, 누군가는 저성과자로 만들어야 한다. 팀 내에서 서열을 만드는 거다. 단순 작업이면 그런 평가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모든 팀원이 잘해야 성과가 나는 일이다”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지역 도시가스 업체에 가스 공급뿐 아니라 천연가스 공급, 해외자원 개발·탐사, 신에너지 기술 개발 등을 한다. 흥민 씨는 벌써 20년 차 직원이다. 전문 지식과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팀원 간 화합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가스공사는 국내 기술과 싸우는 게 아니라 해외와 경쟁한다. 왜 우리 직원들끼리 싸우게 만드냐”며 “팀 내에서 자기 성과만 위해 하다 보면 서로 기술 공유도 잘 안 할 수 있다. 신입 직원들은 당연히 선배들보다 기술이 없으니까 희생양이 되는 거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가스 많이 써달라고 해야 하나요?”
저성과자는 퇴출도 가능…“그게 무서운 것”
필수 공공재인 가스를 개발·공급하는 일에 성과 책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더구나 저성과자로 낙인되면 퇴출 우려도 있다.
본사에 근무하는 김영란 씨(가명, 50대)는 “공공재를 다루는 일에 성과를 어떻게 책정할 거냐도 문제다. 국민한테 ‘가스 많이 써주세요’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공공재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거다. 이익 우선이 아니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가져야 하는 건데 무슨 성과를 어떻게 측정한다는 말이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게 정말 생산성을 향상시키는지 의문이지만 결국 관리자 주관이 들어갈 거다”며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랑 전문가 의견이 충돌할 때 결과적으로 그 직원은 평가를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저성과자가 나올 테고, 그다음에는 퇴출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공사 인사규정은 ‘직무 수행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근무 태도가 불성실한 자’는 보직을 부여하지 않을 수 있고(제15조), 이 규정에 따라 무보직자가 3개월이 지나도 직무를 받지 못하면 직권면직할 수 있다(제33조).
황재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장은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평가가 이루어지고 소수겠지만 저성과자가 나온다. 그러면 별도의 노사 합의 없이 현재 시스템하에서도 퇴출시킬 수 있다”며 “현재는 저성과자를 선정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지만,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상황은 급변한다. 실제로 그게 더 무서운 거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에 참가한 2년 차 직원은 “(성과연봉제는) 쉽게 자르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첫걸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노조, 정부 인센티브도 반납… 무기한 파업
공사, “정부 방침 따라 문제없다”
노조는 지난 6월 이사회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정부에게 받은 인센티브도 모두 반납했다.
황재도 지부장은 “회사가 (정부 기한에 맞춰) 제도만 일단 강제로 도입했다. 이제 와서 평가 기준을 노사 간에 만들자고 하는데, 이사회에서 불법적으로 강행한 걸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노동자에 불리하게 변경하는 취업규칙을 과반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은 점(근로기준법 제94조), 취업규칙 등 노동조건 관련 사규 변경에 노조 동의를 받지 않은 점(단체협약 제5조) 위반 혐의로 공사를 고발한 상태다.
하지만 공사 관계자는 “(성과연봉제는) 공공기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거다. 노조 협의를 하지 않고 이사회에 결정했다고 노조는 불법이라고 한다”며 “(법적 문제는) 고용노동부 등에서 유권해석을 할 거다. 우리는 정부 방침에 따라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협조 아래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가스공사 직원 3,540여 명 중 85% 이상인 3,036명이 조합원이다. 지난 27일 오후 2시 조합원 중 필수유지인력을 제외한 1,600여 명이 본사 운동장에 모여 “성과연봉제 반대”를 외쳤다.
이들은 오는 29일까지 1차 파업 후, 10월 첫째 주 다시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