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청소년신문 요즘것들’에도 실렸습니다. ‘밀루와 미나리’가 뉴스민에 기고한 글을 동시 게재합니다]
9월 12일 경주 지진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안전에 대한 무능을 탈탈 털어 보여줬다. 하지만 그 중의 제일은 학교의 무능 아니었을까. 지진이 나도 학생은 가만히 야자를 하라던, 그리고 교사 역시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던, 그 이면에는 학교와 교육 체제의 무능함이 있다. 이에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든 두 사람, 자퇴 3년 차 청소년 밀루와 13년 차 교사 미나리가 나눈 대담을 공개한다.
학교는 재해 상황에서도 통제가 가장 중요한 규칙이구나
밀루: 지진에도 불구하고 야자를 강요하고, 학교를 이탈하면 벌점을 주겠다고 하고, 휴대폰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고발이 이어졌어요. 이런 상황을 접하고 가장 문제라고 느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미나리: 저는 ‘학교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설혹 재해 상황에서라도, 통제가 가장 크고 중요한 질서이자 규칙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있는 지역에도 야자를 강요한 학교가 있었고 다음 날 바로 교육청으로부터 문책을 당했는데요, 그 이야기를 전하는 다른 교사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어요.
어떤 재해가 터져도 학생은 통제되어야 하고, 그러니까 대피순간 직전까지는 열심히 야자하고 있다가 ‘자, 지금부터 대피한다!’라고 지시가 떨어지면 발딱 일어나 통제에 따라 줄 서서 대피하는 게 학교에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모습인 거죠. 그리고 대피하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되는 건 상급기관-교육청의 문책인 거예요. 아래로도 통제의 질서, 위로부터도 통제의 질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휴대폰 사용금지, 안부를 묻고 위험을 신고할 수단을 빼앗다
밀루: 아, 맞아요. 저는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라는 것도 충격이지만, 저는 휴대폰 사용을 못 했다는 게 가장 끔찍하게 느껴졌어요. 휴대폰이 재난 상황에서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 떨어져 있는 지인들의 안부를 확인할 수단, 재난 상황을 신고하고 현장 상황을 기록할 수단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학생들은 교실에서 공부하라고 하고 교사 혼자 핸드폰으로 가족들에게 전화했다’는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위험한 상황에서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건 누구나 갈구하게 되는 것일 텐데 왜 핸드폰을 돌려주지 않거나 쓰지 못하게 했을까. 또, 왜 대피훈련 때처럼 운동장으로 나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어요.
생각해보니 ‘질서’가 문란해 질까 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군대처럼 책임자가 휘어잡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통제하는 그런 질서요. 비행기, 기차, 대형 상점 같은 여느 공간의 질서처럼 책임자가 상황을 설명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안내’를 하는 질서는 학교에는 잘 없는 것 같아요.
미나리: 학교의 책임자는 보통 교사인데 교사에게 사실 제대로 된 정보를 거의 주지 않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상황을 설명할만한 정보도 역량도 없으니 그냥 때려잡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 거죠.
“일단 학생들 관리부터 해주시고” 이런 이야기 굉장히 많이 듣거든요. 뭐가 뭔지 모르지만 일단 관리 그러니까 통제하라고.
대피를 시켜도 안 시켜도 문책, 이도 저도 못하는 교사
밀루: 부산 어느 학교에서는 지진 때문에 학생을 귀가시켰다가 교장에게 문책당했다는 뉴스가 있었어요. 그 학교의 상황처럼 교장, 교감이 학교에 없고 연락도 안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미나리: 교사가 책임져야 하는 거죠. 교사가 교장, 교감에게 확인 없이 학생들을 대피시킨 건 문책사유가 돼요. 하지만 만약 대피 안 시켜도 징계나 책임사유가 되죠.
밀루: 정말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네요.
미나리: <384기동대>라는 드라마에서 계속 나오는 대사 중에 “살아남아야지”라는 말이 있거든요. 근데 그 말이 무슨 뜻이냐면, 공무원인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금 받을 때까지 짤리지 말고 근무해야지’라고 하는 인사말이에요. 엄청 공감되었어요. 교사들도 그런 인사 많이 하거든요. 교사들이 철밥통이라고 하는데 정규직 노동자로서 누리는 기득권이 많긴 하지만 짤리거나 징계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커요.
민주노동당 후원교사 해임사건부터 시작해서 시국선언이나 일제고사 거부 등 예전에는 징계가 정치적인 사안들에만 국한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아니거든요. 일상적이에요.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면,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올해 10명 가까이 징계를 받았어요. 교사들이 통제나 질서에 더 순응하고 침묵하게 되고,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더 심하게 요구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교사에게 전문가의 역할을 기대하는 건 오히려 위험해
밀루: 정말 그럴 것 같아요. 교사에게 그런 광범위한 책임이 지워지는 줄은 몰랐는데요. 교사들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미나리: 아, 고민되는데요 ㅠㅠ. 일단은, 교사에게 재해 상황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요구하는 게 전 무리라고 생각해요. 교사는 사실 좀 어정쩡한 전문직이거든요. 상담을 하지만 전문상담은 못해요. 그래서 학교에서 전문상담기관과 연계를 하죠. 사고 대처를 하지만 전문치료는 못하기 때문에 학교에 보건 교사가 따로 있죠.
대피훈련을 받고 재난 시 매뉴얼이 있지만 그건 그냥 일반 시민으로서의 대피훈련과 그리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교사에게 재난 상황에서 어떤 전문적 보호자의 역할을 기대하는 건 무리이자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학교의 관리자들은 대피 훈련 말고 다른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대피가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고 대규모 인원의 대피와 안전 확보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지휘훈련 같은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휴대폰을 뺏는다고 학생들의 입을 막을 순 없었다
미나리: 지진 상황에서도 휴대폰을 통제하는 학교를 겪고 학생들은 어떻게 변할 것 같아요?
밀루: 굳이 지진 같은 재난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는 폭력, 사고 등 위급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지요. 자신과 타인에게 닥친 위험을 고발하지 못하는 무력함 때문에 학생들이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이번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휴대폰을 뺏는다고 학생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결국 우리가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세 치 혀로 약을 파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
미나리: 모든 사람이 평생 잊지 못할 큰 사건을 학창시절에 하나씩은 겪는 거 같아요. 전쟁위기라던가, 세월호 사건이라던가, 지진이라던가. 저는 고1 때 HOT콘서트 장에서 청소년들이 깔려 사망한 일이 크게 남아있어요. 바로 옆 반 학생이 사망자이기도 했고 저 역시도 갈 수 있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나의 불안과 공포로 다가왔었어요. 그런데 같은 학교 학생이 죽었는데도 당시에 제게 제공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직 학생들끼리 서로 어쨌단다 저쨌단다 하는 전해져오는 말뿐이었어요.
학년 말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옆 반 선생님을 보고 안쓰러워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 교사가 되고 나서 그 교사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무엇이 힘들었을지 조금 더 알게 되었어요. 아무 지원도 대책도 없는 채 혼자 그 반 학생들을 달래고 격려하고 야단치고 짓누르며 “관리”해야 했겠죠. 저 역시도 그렇게 매일 매일 교직 생활을 하고 있고요. 제 세 치 혀로 약 파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요. 신뢰할 만한 정보가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 저와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단지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함께 외쳐요
밀루: 학생들이 지시를 무시하고 직접 대피했다는 사례도 있었는데, 용감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그게 과연 안전한 걸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시스템을 불신하고 즉석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 사실 위험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특히 위험상황인데다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이면 이성적인 판단이 힘들 수도 있고요. 학생들이 시스템을 불신할 수밖에 없게 했던, 안내는 없고 통제뿐인 질서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가 학생/청소년들을 단지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시선의 전환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에 터져 나왔던 목소리들과 함께,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