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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큰 슬픔에 잠기게 했던 두 참사, 대구지하철참사와 세월호참사 피해 가족이 함께 슬픔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2.18안전문화재단과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 두목회는 8일, ‘슬픔에게 길을 묻다’라는 이름으로 두 참사 피해자 가족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저녁 7시부터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2층 상상마당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한상임 씨의 엄마 황명애 씨와 아직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학생 조은화 씨의 엄마 이금희 씨가 참석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두 엄마는 두 딸의 삶을 되돌아보고, 남은 사람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두 엄마의 이야기에 앞서 간단하게 두 참사를 살펴보는 시간도 준비됐다. 최나래 대구참여연대 활동가는 지하철참사와 세월호참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마치면서 “두 참사는 상황오판, 안전불감증, 직업의식 부족, 정부의 사후 대처능력 부족 등 비슷한 점이 많다. 그중에서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느냐는 점이 가장 주목할 부분이다. 정부는 두 참사 모두 사건을 축소하고 숨기기 급급하다. 아무리 그래도 진실은 침몰하지도, 불에 타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명애 씨는 “대구에 멋진 생각을 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저희가 참 외로웠다. 이 자리가 저희 이야길 들어달라고 모인 자리이기보다, 여러분이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달라고 전하고 싶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어 이금희 씨가 인사말에 나섰다. 이 씨는 앞서 세월호참사 개괄 설명 과정에서 다시 세월호 침몰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탓에 마이크를 잡고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첫 마디를 뱉어냈다.
이 씨는 “이곳에 오기 전에 지하철역을 갔다 왔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우리가 같은 엄마가 보통 엄마였다. 보통 엄마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 우리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많지 않은 나라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3년, 아직 끝나지 않은 대구지하철참사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이면합의’의 진실
황 씨는 지난 7일 우여곡절 끝에 2.18안전문화재단이 출범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는 참사 이후 지난 13년 동안 추모 사업 추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역 주민들 반대가 심하다는 이유로 추모시설 건립도 망설였다.
결국 대구시가 유가족들에게 추모시설이 아닌 것처럼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추모시설을 설립하는 이면합의를 요구해 이를 관철했다는 것이 유족들이 줄곧 주장해온 이야기다. 하지만 이후 많은 언론이 이면합의 확인 요청을 할 때마다, 대구시는 이를 부정했다.
당시 대구시 행정부시장으로 근무했던 강병규 전 안전행정부 장관은 2014년 한겨레의 확인 요청에 “이면합의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고, 실무를 맡았던 대구소방본부 직원은 “추모사업 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황 씨는 “공무원들이 유족을 상대로 거짓을 할 거라고 어떻게 알았겠느냐. 공무원이 가장 잘해줄 거라고 믿던 소시민이었다”며 “추모시설이 혐오시설이라고 주민들이 반대를 많이 했다. 유족들 참 힘들었을 때, 대구시에서 이면합의를 제의했다”고 설명했다.
황 씨는 “당시 유족들이 노발대발했다. 이 많은 죽음을 어떻게 거짓으로 할 수 있느냐, 그렇게 못한다고 난리가 났다”며 “그런데 소방본부 담당자가 와서 ‘저희들은 생명을 걸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셨다. 그 말에 우리는 그분이 그렇게 우리가 바라던 정의로운 분이라고 생각하고 이면합의를 받아들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이후 이면합의에 대해 인정한 적이 없다. 그 때문인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지하철참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시민안전테마파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지 못한다.
황 씨는 “시민안전테마파크는 2.18 기념공원으로 병기해준다고 했고, 안전상징조형물도 추모탑으로 해준다고 했고, 나무 192그루를 심어 수목장해준다고 했는데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인양 3개월, “100% 올라온다는 사람 없어”
“877일 동안, 4월 16일을 살고 있다”
877일 째(8일 기준) 세월호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는 이 씨 역시 세월호 참사 수습에 남은 일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 6월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월호 인양 작업은 더디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한 달이면 완료될 거라던 것이 벌써 석 달이나 지났다.
이 씨는 “배가 100% 올라온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기서 9명을 다 찾을지, 못 찾을지도 모른다. 877일 동안 4월 16일을 살고 있다”며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 안에 뭐가 있겠냐고 그러는 분들이 있다. 만약에 지금 말씀하시는 분 가족이면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한다. 그 끔찍한 걸 877일째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미수습자가 마무리 안 되면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없다. 우리말이 어렵다. 헷갈린다. 진상규명을 위해 배가 필요한건지, 배가 올라와야 진상규명이 되는건지⋯”라며 “배가 올라와서 사람을 찾고 진상규명을 했어야 한다. 특조위 기간이 끝났다고 하지만, 아홉 명과 배는 여전히 맹골수도에 있다. 진상규명을 위한 첫걸음이 인양”이라고 강조했다.
이 씨는 이야길 하는 동안 많이 울었고, 자주 첫 마디를 떼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약 80여 명이 참석한 상상마당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두 엄마는 참석자들과 손을 잡거나 포옹을 나누고, 미리 준비한 화분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