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선언 / 채형복

19:35

선언 

채 형 복

한여름에도 피어나지 못한 이 땅의 풀들이 통곡하는
염천의 정오,
빛을 잃어버린 태양의 이름으로 이글거리는 염원을 쓴다.

녹슨 철사줄로 동여맨 자유여!
해방되지 못한 사산된 광복이여!
단 한 번의 입맞춤으로 깨진 나라 사랑이여!
사상충으로 파고드는 쪼그라든 민족의 심장이여!

창칼을 녹여 쟁기로
폭력을 쳐서 정의로
분열을 넘어 평화로

나라 지키는 대안을 묻는 당신에게 선언하노니

사람에게 묻기 전 성밖숲* 왕버들에게 물어보라.
노거수 가지에 깃든 숲의 정령에게 물어보라.
그들의 친구 우리에게 물어보라.

바람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결정은 무효다.
바람이 위임하지 않은 권력은 허구다.

우리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결정도 무효다.
우리의 위임을 받지 못한 권력도 허구다.

농민의 땅 성주에서 권력은 흙에서 나오고
우리는 흙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는 흙의 명령에 복종하고
흙의 지시를 따른다.

이 땅의 주인은 흙이다.
그 흙에서 태어나 살다 죽는
우리는 흙의 동지다.

땅을 무시하는 자의 허리를 꺾고
흙을 경멸하는 자의 무릎을 꿇려
주인을 종복삼아 군림하는 못된 버릇 고쳐놓자.

분명하게 이르노니,

누가 주인인가-나와 우리가 주인이다!
누가 종복인가-너와 당신이 종복이다!

땅의 명령을 따르라.
흙의 지시를 따르라.
주인의 요구에 따르라.

평화를 씨실로, 연대를 날실로
서로의 어깨를 얽어매고
우리는 흙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

성주는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킬 것이니
땅의 자식들이여,
각자 자신의 무기로 싸우자!

학자는 날카로운 펜으로-글이 무기가 된다면,
주부는 딱딱한 주걱으로-밥이 무기가 된다면,
노동자는 억센 주먹으로-땀이 무기가 된다면,

들끓고 들끓어 쉬어버린 우리의 목소리를 제물 삼아
하늘 땅 위아래 막히고 닫힌 불통의 벽 녹여 내자.

오늘도 우리는 밤새도록 촛불을 든다.
꺼지지 않는 연대의 촛불을.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사드 배치 결사반대의 촛불을.

*경북 성주 경산리에 있는 숲으로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노동자대회에서도 "평화위협 사드반대"
▲노동자대회에서도 “평화위협 사드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