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 앞둔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전국에서 희망버스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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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구미 4공단로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입구에 40인승 버스와 승용차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조용하던 공장 앞마당이 서로가 서로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로 떠들썩해졌다. 민주노총, 진보정당, 교회부터 퀴어, 동물권, 대학생단체까지 각양각색 깃발이 행사 시작 전부터 힘차게 휘날렸다.

따가운 햇빛 아래 간간이 흔들바람이 불었다. 박정혜(40), 소현숙(43) 두 사람도 옥상 가에 자리 잡고 손을 흔들었다. 이들은 25일 뒤면 고공농성 500일을 맞는다.

▲박정혜, 소현숙은 475일째 고공농성을 진행 중이다. 500일을 앞두고 공장 앞마당에서 ‘고용승계로 가는 옵티칼 희망버스’ 문화제가 열렸다.

2022년 10월 불에 타 가동을 멈춘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기업 닛토덴코가 지분 100%를 소유한 외국투자기업이다. 2003년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뒤 토지 무상임대,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았다. 회사는 노동자 193명을 명예퇴직으로 내보낸 뒤 남은 노동자 17명마저 정리해고했다. 이 중 7명은 닛토덴코가 지분 100%를 소유한 평택의 니토옵티칼로 고용승계를 요구했다. 옵티칼하이테크가 생산하던 물량이 니토옵티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복직투쟁 중인 7명의 노동자 중 박정혜, 소현숙 두 사람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 옥상에 올랐다. 하지만 닛토덴코는 고용승계 대상 기업인 니토옵티칼에서 지난해부터 직원 87명을 신규 채용하는 걸로 답을 대신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봄은 만인에게 평등했는가” 물으며 “회사에 의해 버려진 것들 가운데 우리의 청춘, 삶, 노동이 있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2시 30분부터 5시까지 ‘고용승계로 가는 옵티칼 희망버스’ 문화제가 열렸다. 서울, 부산, 청주, 대구, 밀양, 전북, 전남,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연대의 발걸음을 더 했다. ‘고용승계로 가는 옵티칼 희망버스 기획단’과 금속노조가 준비한 이날 문화제에는 주최 측 추산 1,000명이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공장 입구에는 흰색, 분홍색, 빨간색 꽃이 폈다. 박정혜, 소현숙은 두 번의 봄을 옥상에서 맞이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봄은 만인에게 평등했는가. 니토덴코는 화재를 핑계로 집기, 책상, 작업복, 볼펜 모든 걸 버리고 갔다. 버려진 것들 가운데 우리의 청춘, 삶, 노동이 있다”며 “광장에서 터져 나온 우리의 존재 선언은 언어를 넘어선 절규였고, 우리가 살고 싶은 민주주의였다.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동지들, 알바생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실업자인 말벌동지들을 보며 나는 민주노조운동을 다시 생각한다”고 밝혔다.

희망뚜벅이에 참여했던 김민지 씨는 “희망뚜벅이로 하루 18km를 걷다 보면 너무 힘이 들어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친해지고 계속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3월 희망뚜벅이가 끝나고도 구미역으로 와 공장까지 무작정 걸어왔다. 공장 바닥에서 낮잠 자기, 식사 만들어 고공에 올리기 같은 걸 한다. 별거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며 “여기에 오면 존재 자체만으로 환영받는 사람, 존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희망은 계기다. 우리도 누군가의 편이 되어 주자”라고 말했다.

▲김민지 씨는 “옵티칼에 오면 존재 자체만으로 환영받는 사람, 나도 존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누군가의 편이 되어 주자”고 말했다.

고공에 있는 노동자들은 영상 생중계로 인사했다.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수석부지회장은 “이건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노동자의 존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우리의 싸움이며,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가치”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고공에서,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동지들, 함께 싸워 반드시 승리하자”고 말했다.

소현숙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조직부장도 “우리가 고공에서 투쟁하는 동안에도 닛또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고용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중한 인적자원이라던 노동자를 물건 버리듯 거리로 내몰았다”며 “150명 넘는 인원을 고용하면서도 닛또는 왜 일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를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 절대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청산인의 말은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괴롭히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2월 서울 세종호텔 앞 구조물에 오른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 지부장도 연대발언을 했다. 고 지부장은 ‘노동악법에 의해 정리해고 당한 세종호텔지부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전국 곳곳에 노동권을 빼앗긴 채 생존권의 벼랑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넘쳐난다. 새롭게 들어설 정권이 또다시 경제위기를 들먹이며 반복적인 반노동 행태를 보이기 전에 조직 노동의 힘으로 온전한 노동3권 쟁취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문화제에는 주최 측 추산 1,000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박정혜, 소현숙을 비롯한 7명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는 2년 넘도록 복직 투쟁 중이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아 이달 11일 공개한 ‘한국니토옵티칼 고용보험 취득자 현황’을 보면, 지난해 니토옵티칼에 취업해 고용보험에 가입한 이는 7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10명의 직원이 니토옵티칼에 취업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로 가는 옵티칼 희망버스 문화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로 가는 옵티칼 희망버스 문화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로 가는 옵티칼 희망버스 문화제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