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 해고자가 겪은 12.3 내란···말벌 시민 모인다

새로운 광장,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26일 희망버스, 전국 시민 연대 예정

15:27
Voiced by Amazon Polly

지난해 1월부터 472일째 불탄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소현숙, 박정혜 씨다. 이들은 지난 12월 3일 시작된 윤석열 내란 사태를 공장 위에서 지켜봐야 했다.

첫 번째 조항부터 집회, 시위를 금한다고 한 계엄사 포고령 1호를 공장 위에서 확인했다. 해고노동자들은 남다른 공포와 긴장 속에서 기나긴 내란 사태를 맞이했다.

지상보다 이르게 밤이 찾아오는 고공농성장.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당시만 해도 이들은 잠에 들어 있었다.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 이지영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장이었다. 얼른 일어나서 만일을 대비하라고 했다.

비상계엄을 실제로 겪어본 적 없었던 해고노동자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이들의 안위를 묻는 전화가 몰려왔다. 포고령 1호에서 금지하고, 위반 시 ‘처단’하겠다는 엄포를 보면서 해고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쉴 틈 없이 긴장 상태로 뉴스를 확인했다. 비상계엄은 예상보다 빨리 해제됐다. 짧게 안도했지만, 그다음에는 다시 막막한 심정이 됐다.

12월 3일, 그날은 해고노동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고 온 날이다. 박정혜, 소현숙 씨는 이날 우 의장과 영상통화도 마쳤다. 고공농성 시작 1년을 목전에 두기까지 꿈쩍도 하지 않는 한국옵티칼과 니토덴코를 국회가 움직여주기를 기대하는, 또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도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로 전 세계의 이목은 윤석열을 향했다. 박정혜, 소현숙 씨는 긴장된 나날을 보내는 동안 평소보다 더욱 지쳐갔다. 그때만 해도 이들은 시민들이 내란 사태에 어떻게 맞서갈지 알 수 없었다.

광장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내란’에 갇히지 않았다. 광장에서 우리 삶의 진정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한국옵티칼 고공농성장을 찾는 발걸음으로도 이어졌다. 고공농성 1년을 맞는 지난 1월, 전국의 ‘말벌 시민’들이 텐트를 들고 고공농성장을 찾았다. 박정혜, 소현숙 씨는 이들을 기다리며 종이학을 접었다. 지상에서 9m, 고공농성장과 시민들의 거리를 좁히지는 못했지만, 종이학은 농성장에서 시민들에게 날아갔다. [관련 기사=고공농성 1년, 소현숙·박정혜 향한 응원봉·키세스단의 위로(‘25.1.11.)]

시민의 연대는 한 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았다. 종이학을 받은 시민들은 고공농성 400일을 앞둔 즈음, 한국옵티칼에서 국회까지 약 250km 구간을 걷는 ‘희망 뚜벅이’에도 함께 나섰다.

윤석열 내란은 분명 해고자들에게 공포스러운 일이었지만,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일상을 넘어, 문턱을 넘어, 광장을 넘어 공장에까지 향하도록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어려운 시기에, 비상계엄 때문에 더욱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항상 저희와 함께 목소리를 내던 분들이 옆에 있었어요. 남태령에서 시민의 연대가 확인됐고, 바로 다음에는 연대의 마음이 저희 희망텐트로도 향했어요. 그다음 희망 뚜벅이를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죠.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저희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또 연대에 나섰다는 걸 느껴요.” (박정혜)

시민의 연대는 오랜 시간 고공농성을 버티는 힘이 됐다. 시민의 힘을 집중하는 행사 말고도, 일상적 연대가 늘었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고공농성장을 방문한 뒤로도 해고자들과 온라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22일 이들은 세 번째 줌 모임을 열었는데, 여기에는 윤석열 탄핵 광장에 응원봉, 깃발을 들고 나서던 이들도 참여했다.

▲한국옵티칼 해고노동자들과 활동가, 시민들의 줌 모임 장면 (사진 제공=대경여연)

“500일 가까이 이렇게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죠. 몸도 마음도 나약해진 상태이고. 어떻게 싸워나가야 할까 하는 막막함도 있고. 많이 힘들어요. 마음도 계속 왔다 갔다 하죠. 최근에는 살펴보니 공장에 불난 이후부터 한국니토옵티칼이 신규채용한 사람만 156명이더라고요. 7명 고용승계는 안 하면서, 물량 가져가고, 영업이익 내고. 너무 화가 나죠. 그래도 함께 하는 시민들 덕분에 힘은 얻어요. 위에 있으면 외롭거든요. 누가 우리를 생각해 줄까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데 줌 회의에서 한 시민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우리는 항상 동지들을 생각하고 있다. 일상에서도 기억하고 연대하려 하고 있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항상 응원한다는 걸 기억해달라’라고요.” (박정혜)

지명희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광장에 향하던 시민들은 한국옵티칼 상황에 대해서도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 농성 중인 해고자들과 가깝게 소통할 기회가 돼 의미 있었다”며 “희망텐트, 희망뚜벅이를 했던 기억을 공유했다. 집회 후 농성장만 덩그러니 남았을 때의 외로움도 아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응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광장에서 ‘현장’으로
한국옵티칼 찾는 ‘말벌 시민’

▲3일 박정혜, 소현숙 한국옵티칼 해고노동자가 연대 버스 행사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12.3 내란에 맞선 시민들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들과 연대에 나서고 있다. 말벌에게서 꿀벌을 지키려는 ‘말벌 아저씨’처럼 한국옵티칼로 향하고 있다. 고공농성 500일을 앞두고, 광장에서 윤석열을 파면한 시민들은 이제 ‘박정혜, 소현숙 씨가 고용승계 되고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정의’라고 외치고 있다.

이들은 오는 26일, 해고노동자들을 응원하고 고용승계를 이루기 위해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모아 고공농성장으로 향한다. 26일 당일 서울, 부산, 대구, 전북, 전남, 대전, 경남, 강릉, 창원, 울산 등 지역에서 희망버스를 탈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옵티칼 희망버스 투쟁지도(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