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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할머니의 황혼을 묵묵히 기록하다
낡은 시골집에 할머니가 홀로 산다. 집 안과 밖 할 것 없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잡동사니가 한가득 쌓여 있다. 어르신들이 흔히 그렇듯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노인은 잔뜩 구부정한 등에 허리엔 복대까지 차고 힘겹게 일상을 보낸다. 카메라는 그런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해 담고 있지만, 카메라 너머의 누군가는 피사체인 할머니와 일절 대화를 하지 않고 그저 기록만 할 뿐이다. 아마도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을 노인의 하루가 천천히 흘러간다.
노인은 불편한 몸에 약을 달고 살지만, 절대로 일과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홀로 살아가는 티가 역력한 할머니는 손수 끼니를 차리고, 집 안 구석까지 이것저것 손대며 일정한 ‘운동’을 이어간다. 곡식을 체로 쓸어 낱알을 거두고, 멀리서 보면 별반 차이도 없는 것 같으나 그만의 정리정돈에 집중한다. 카메라는 그런 노인을 바로 곁에서 꾸준히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이 화면 중앙을 메운다. 그동안 무표정하게 일만 하던 그가 활짝 웃는다. 무심코 보고 있던 관객이 화들짝 놀랄 법한 순간이다. 곧 노인은 손수레를 의지해 집 밖으로 나온다. 구부정한 걸음이지만, 쉬지 않고 이동하던 그는 기다란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이제는 숫제 산길을 오른다. 한참 수풀을 헤치며 오르막길을 걸어온 할머니 앞에 평지가 출현한다. 노인은 별다른 도구도 없이 땅속에 뿌리를 내린 잡초를 잡아 뜯으며 오랫동안 주변 언저리를 정돈한다. 산소에 있는 봉분을 공들여 손보며 종종 입이 움찔거리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마치 단락을 끊고 잇듯 또다시 화면 가득히 할머니의 얼굴이 들어온다.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수행의 옆모습이다. 다시 일상은 반복된다. 삶을 위해 밥을 차리고 약을 먹은 다음 송달된 서류를 살핀다. 텔레비전에선 왁자지껄 방송이 나오긴 해도 딱히 관심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저 백색 소음으로 활용하면 족하다.
그렇게 영겁의 시간이 이어질 것만 같은데, 문득 노인이 카메라 너머 촬영자를 향해 말을 건넨다. 짧은 대화를 통해 지금껏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던 할머니의 정체에 아주 약간의 단서가 주어진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목격하는 활짝 웃는 표정, 다시 곧 화면에 새겨지는 영화의 제목. 30분의 시간이 천천히 하염없게 흐르던 것만 같은데 끝나고 나니 순식간이다.
개입하지 않고 관찰하되, 친밀함을 숨기지 않는 카메라
단편 다큐멘터리 <늙은 연꽃>은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에서 조역으로 등장했던 감독의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래서 전작을 유심히 봤던 이들이라면 반가운 기분이 들 법하다. 하지만 그런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 본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사전 정보 없이 그저 쭉 따라가야만 하는 작업이다.
주인공에 관한 아주 약간의 단서조차 영화의 맨 마지막이 되어야 등장하기 때문에 마치 (중국 독립영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꼽히는) 왕빙이 선보이는 일련의 작업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별도의 음성해설이나 자막 설명 없이 관찰 위주로 전개되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외국에선 이런 ‘관찰 영화’가 흔하지만, ‘다큐멘터리’라 하면 친절한 소개가 전제된 ‘방송 다큐멘터리’가 정석이라 여기는 국내에선 생소한 방식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도 관측할 수 있다, 왕빙의 작업이 촬영을 위한 최소한의 상호신뢰 형성 이상으로는 당사자와 굳이 관계를 심화할 생각이 별로 없는 데 반해, <늙은 연꽃> 속 카메라는 훨씬 더 근접해 친밀함을 의지하는 점이다. (짐작은 가지만 물증은 제시하지 않고 시치미 뚝 떼다) 거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해서야 말문을 틔는 감독과 주인공은 실은 할머니와 손녀 관계임이 확인된다.
전작에서 독립 후 1년에 단 2번, 설과 추석에만 고향에 내려온다던 감독은 (이 작품에서는 드물게 영화 초반 주소 명패로 확인할 수 있는) ‘경북 예천군 개포면 동송리’로 발걸음을 옮겨 할머니를 방문했다. 굳이 대도시에 소재한 본가가 아니라 대중교통으론 찾기도 힘든 시골까지 향한 이유가 뭘까?
말미에 작은 단서가 제시된다. 노인은 60년간 살아온 이 집에서 점점 기억을 잃어 가는 중이다. 본인도 깜박한다며 너스레를 부리고 감독 역시 웃으며 응대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게 쉽지 않은 걸음의 이유일 테다. 기왕 찾아가는 김에 ‘카메라를 든 사람’의 본능이 발현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가족 연작이 서서히 윤곽을 갖춘다. 영원히 그곳에 머물러 계실 줄만 알았던 할머니의 노쇠함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씁쓸한 뒷맛과 함께 다가왔을 법하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에 담긴 영상에는 그런 애잔한 감정이 거의 엿보이지 않는다. 굽은 등과 허리에 화면 가득 잡히는 주름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묵묵히 영겁의 반복처럼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잡동사니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는 집안 어른들의 면모를 겪은 이들이라면, 영화 속 시골집의 답답함도 어느 틈에 친숙한 풍경으로 바뀔 만하다. 지독한 현실의 풍경을 애써 미화하거나 감출 생각이 없다.
제목 <늙은 연꽃>은 어떤 경로로 작명한 걸까? 감독은 분명히 할머니를 대입했을 테다. 그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목의 전반부를 구성하는 ‘늙은’도 누구나 쉽게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연꽃’은 바로 와 닿지는 않는다. 후반부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 작품은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몇 가지 추리를 해보자.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은 채 황혼을 맞이하는 노인의 주변은 겉으로만 보면 고물상을 방불케 하는 초라한 모습이다. 온갖 세월의 손때가 묻은 살림살이는 거의 폐품 더미와 구분하기도 어렵다. 그런 틈바구니에서도 은연중에 기품과 꿋꿋함을 간직한 노인의 존재가 감독에게는 ‘진흙’ 위에 핀 ‘연꽃’처럼 보였던 걸까? 아니면 할머니 & 손녀의 내밀한 시선으로 포착 가능했을, 평온하지 않았던 세월의 무게 속에도 단아한 일상을 지켜온 할머니의 삶 자체가 그렇게 이해된 것일까?
또 다른 가능성도 살짝 엿보인다. 감독의 카메라가 순간적으로 포착한 몇 번의 극단적 Close-Up 장면에서 자신의 현재가 그저 쇠락으로만 이해되길 거부하는 어떤 의지가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가 자연 수명을 다할 때까지 변치 않고 자손들을 맞이할 것을, 손녀가 다음번 명절에 찾아오겠다고 다짐할 때 환하게 반기되 집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순수한 기쁨의 표정이 오래도록 감독의 뇌리에 잔상으로 남지 않았을까? 문득 머릿속에서 떠올릴 법한, 그리운 재회의 대상이 허물어져 가는 시골집에 피어난 연꽃처럼 보이는 어떤 풍경을 떠올리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전작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에서 중년에 배움에 재도전한 어머니의 분투를 기록하던 감독은, 그런 기회도 더는 기대하기 힘든 할머니의 초상에 마음이 쓰였으리라. 며느리가 손녀를 과외선생 삼아서 진땀을 흘려가며 만학도의 길을 걷지만, 그것이 자신에겐 허용되지 않음에 쓸쓸한 표정을 한 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을 카메라에 기록된 영상을 통해 확인한 감독은 할머니의 초상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던 지점이 문득 궁금해졌을 테다.
현실의 한계에 발딛되, 머릿속에 추억의 사진첩을 그리다
21세기 한국의 독립영화 주요 창작집단을 이루는 청년세대에게 조부모란 어떤 존재일까? 손자와 손녀를 예뻐하며 부모가 혼내거나 꾸지람을 할 때 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는 인심 좋은 존재가 아니면 그저 막연하게 명절이나 경조사 때에나 상봉하는 낯선 친족의 모습으로 대개 각인되는 대상에 가깝다. 조부와 조모에 관한 인식도 꽤 차이가 날 테지만, 이는 지극히 개별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날 법하다. 물론 다양한 시도가 조부모 세대를 소재로 한 작업이 양적으로 늘면서 엿보이지만, 상당수 작업은 여전히 ‘객체’에 머무는 한계를 보인다. 물론 이는 창작자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세대 차원의 인식에 가깝다.
그렇게 2010년대 이후 한국 독립영화는 영화적 경향보다는 세대론적 인식에 기운 조부모 세대 표현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종종 목격되는 어떤 징후, 부모세대와의 불화와 반목 너머 일종의 목가적 이상향으로서 조부모 세대를 향한 친근함의 표현이 두드러진 작업을 ‘판타지’라 비판하는 주장을 경청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와는 대비되는, 주로 소외되고 빈곤한 노인층의 애환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저 늙고 병들어 연민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 아닌가 고찰해봐야 한다. 두 방향 모두 조부모 세대의 실체와는 거리감이 확연한 편향을 띤다.
<늙은 연꽃>은 아주 단순해 보이는 구성의 소품이다. 하지만 기존의 익숙한 경향과는 차별화한 독자적인 시각이 확연히 묻어나는 작업이라 할 만하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그들이 기약하는, 다시 재회할 미래의 전망은 아련하고 애틋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제약을 간과하지도 않는다. 할머니와 손녀의 상봉은 이제 몇 번 남지 않았음을 관객도 문득 깨닫고 만다. 하지만 천천히 이별을 예비하며 어떻게 기억을 간직하고 추억할지 다짐하는 카메라 너머 감독의 심지가 어느새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모락모락 구름 마냥 피어나듯 뒷맛을 남길 작업이다.
<작품정보>
늙은 연꽃
The old lotus
2015|한국|다큐멘터리
미개봉|30분|전체관람가
감독/제작/촬영/편집 장윤미
음향 정성환
주연 박노연김상목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