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는 죽음, 이주노동자 산재···93.6%는 원인불명

김승섭 교수 15일 대구서 강의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률, 현실은 숫자보다 훨씬 심각
이주민이 건강보험 재정 잠식한다? 오히려 흑자
위험한 일 하는 이주민이 더 많이 써야 하지 않나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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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죽거나 다친 이주노동자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 정주민(한국인)은 인구학 3대 요소(출생, 사망, 이동)가 꼼꼼히 기록되지만, 이주민에 대한 기록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

보건학을 전공하면서, 산업재해를 연구하던 한 교수는 필연적으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해 연구하게 됐다. 한국에서 이주민 유입은 점차 증가했고, 위험한 산업 현장의 안전은 개선되지 않았으며, 이 현장을 자연스럽게 이주민이 채웠다. 산재에 대한 연구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구에 필요한 기초적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이주노동자 사망과 관련 연구는 처음부터 큰 벽에 가로막힌 듯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연구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2024)’는 딱딱한 연구보고서임에도 여러 사람의 입길에 올랐다. 김승섭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부교수(환경보건학과)가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하고, 다양한 이주민 관련 단체 활동가들이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사회적 원인을 다각도로 추적한다. 이 연구는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규모를 추정한 최초의 연구가 됐다.

15일 오후 3시, 김승섭 교수는 해당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서 숨진 이주노동자 93.6%는 왜 죽었는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강의를 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열린 이번 강의는 대구경북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 연대회의, 민주노총 경북본부, 대구본부가 주최했다.

이번 연구는 다행스럽게도 법무부에서 이주노동자 사망과 관련한 일부 자료를 취득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법무부가 2022년 자체적으로 이주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비자 여부, 국적 등의 정보를 포함한 자료를 수집해 둔 자료다.

김 교수는 “비극을 비극으로 인식하려면 비극임을 보일 자료가 필요한데, 이주노동자 사망은 자료가 부재하다”며 “이 기록이 없었으면 예방 계획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 사망 93.6%, 원인 불명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률, 현실은 숫자보다 훨씬 심각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신고된 사망자 중 이주노동자 수는 3,340명이다. 이중 산재로 인정받은 사람은 137명으로, 전체 사망의 4.1%다. 산재 사망을 신청했으나 인정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는 32명, 산업재해가 아닌 이유로 사망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45명이었다. 즉, 사인이 파악된 이주노동자는 이들을 다 합친 214명(137+32+45)으로, 전체 이주노동자 사망의 6.4%에 불과하다. 나머지 3,000여 명, 93.6%는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즉, 변사자다.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 분류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 통계를 분석하면서, 이주노동자 업무상 사고 사망자 비율은 전체 업무상 사고 사망자 통계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 반대로 업무상 질병 사망자 비율은 월등히 낮은 점에 대해서도 해석한다. 이주노동자 사고 사망은 그나마 집계되지만, 질병 사망은 이주노동자 입장에서 인정받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증명이 어렵고, 인정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묻는다. 정주민 노동자 100명 중에 5명이 산재로 죽고, 이주노동자 100명 중 10명이 죽으면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률은 2배 더 높은 것이냐고. 정답은 “비교 전제가 잘못되었다”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일하다 죽는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으로 건강검진을 통과한 젊고 건강한1 사람들이다. 게다가 질병을 얻으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사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며 “사망해도 산재로 바로 인정되지도 않고, 연고가 없는 경우도 있어 신청조차 어렵다. 이 때문에 수치만으로 산재 위험을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즉,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 위험은 수치가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그래서 김 교수는 한국의 산재 발생이 개선되고 있다는 통계도 의심한다. 어렵고 위험한 일자리는 특별히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었고, 사망 또는 질병, 부상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이주민이 1년에 몇 명 죽는지 아시나. 없을 거다. 국가가 이를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다”며 “어떤 나라가 그 사람을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건 그 사람의 출생, 이동, 죽음을 기록하는 것인데 사망을 기록하지 않고, 미등록 이주민의 출생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주민이 건강보험 재정 잠식한다? 오히려 흑자
위험한 일 하는 이주민이 더 많이 써야 하지 않나

김 교수는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을 이주민이 축낸다는 혐오적 인식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건강보험 재정은 이주민 가입자들로부터 흑자를 내고 있다. 김 교수는 이주민으로부터 건강보험 흑자를 이루는 것이 옳은지 물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주민은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많이 아픈 게 정상이다. 그러면 이주민이 건강보험을 당연히 더 많이 써야 한다. 그게 사회보험의 정신”이라며 “언어 장벽도 크고, 일하는 지역상 의료접근성도 좋지 않아서 건강보험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흑자라고 좋아할 일이 아니고, 보험료를 내고 왜 병원에 못 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이주민을 소외시키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도 비관하지 말고, 지치지 말자고 북돋았다. 김 교수는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그래도 한국에서 꾸준히 줄고 있다. 여전히 한국은 이주민에게 적대적이고 그 흐름이 유지될 거 같지만,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나아갔다”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똑같이 20년 후의 우리는 조금 더 나을 가능성이 크다. 지치지 말자”고 말했다.

▲김승섭 교수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1. 만 39세 이하인 사람만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