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데···” 함께 대피할 수 없는 동물들, ‘재난 동물 구호’ 입법 요구 목소리

반려견 차에 두고, 대피소 오가는 사람들
민간 동물권단체 중심 구조 활동 이뤄져
'반려동물 동반 피난법' 제정과 관련 매뉴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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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산불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청송군 진보면 주민대피소 진보문화체육센터 인근에는 자신의 차에 반려견을 두고, 오가며 보살피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트럭에 커다란 삽살개를 묶어두거나, 작은 믹스견 3마리가 케이지 안에 분리돼 있기도 했다. 봉고차에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던 또 다른 견주는 전소된 자신의 집보다 강아지 집 마련에 먼저 나섰다. 동물단체는 견주의 부탁을 받고, 견사를 지었다. 견주는 단체에 감사를 전하면서 반려견이 주인인 자신만을 따른다며 ‘개조심’이라는 팻말도 써붙였다.

▲동물단체 관계자가 산불 피해지역에서 발견한 강아지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루시의 친구들)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구조대응팀장은 지난 3월 22일 경남 산청 산불부터 시작해 26일 경북 의성으로 이동해 4월 3일까지 안동, 청송, 영양 일대에서 단체 차원의 동물구조 활동을 펼쳤다. 송 팀장은 재난 현장에서 가족과 다를 것 없는 반려견과 대피소 생활을 함께하지 못해 대피소 주변에 차를 세워두고 반려견을 보살피는 풍경을 전했다.

송 팀장은 “청송에서만 봤던 풍경은 아니다. 의성에선 대피소로 작은 반려견을 안고 들어갔다가 민원이 들어왔는지 쫓겨난 경우도 있어서 저희가 마침 인근에서 반려견 쉼터를 운영하던 중이라 맡아 드렸다”며 “의성 체육관 쪽 대피소에는 대피소에 안 가시고, 아예 진돗개 한 마리와 같이 차에서 숙박하는 분도 봤다. 반려인들에게는 쉼터 자체도 중요하지만 반려견과 함께 또는 가까이 지낼 수 있는지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산불로 화상 피해를 입은 개가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루시의 친구들)

동물권행동 카라, KK9레스큐, 코리안독스, 도로시지켜줄개,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TBT레스큐 등 5개 단체도 ‘루시의 친구들’ 연대체를 꾸려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4일까지 동물 구조 활동에 나섰다. 27일부터는 안동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응급진료도 병행했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변화팀장은 참혹했던 산불 피해 현장을 떠올리면서, 동물 구조가 민간단체 중심으로 이뤄지는 현실을 짚었다. 신주운 팀장은 “동물 대피와 관련한 정부 차원 가이드라인이 ‘개는 목줄을 풀어주세요, 농장에서는 문을 열어두세요’ 정도밖에 없다”며 “이번 현장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와 만났는데, 동물 담당 부처라도 예산을 마련하고 정책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신 팀장은 단체 쪽으로 진돗개 2마리와 대피할 곳을 묻는 연락이 와서 수소문에 나서기도 했다. 신 팀장은 “대피소에는 동물과 같이 못 들어가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셨고, 사시는 곳 면사무소 쪽으로 연락을 해보니 대피소 한 켠에 목줄을 해놓고 지낼 수 있다고 답변을 받아 연결을 시켜드리기도 했다”며 “과거 전례가 있어서 그쪽에서도 유연하게 재량권을 발휘한 거다. 다만 그분들은 결국 지인집으로 피신하긴 했다”고 말했다.

동물권단체들은 재난 시 동물 구조와 보호, 대피소 동반 등에 대한 재난 대응 매뉴얼과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8일 동물보호연합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 동물 구호 체계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경북과 경남 등에 집중 발생한 산불로 최소 수 만 마리의 동물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마당에 묶인 채 불타 죽은 개, 대피소에 주인과 입소가 안 되어 버려진 개, 개 농장 뜬장에서 수 백 마리의 개들이 갇혀서 불타 죽었다. 소, 돼지, 닭, 염소 등 농장 동물들과 야생 동물들도 이번 산불로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현행법에 재난 동물 구호 및 대피에 관한 제대로 된 내용이 없다”며 “현행 재해구호법은 구호 대상을 사람으로 제한하고, 행정안전부 국가재난안전포털 비상대처요령에도 ‘애완동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다’고 되어 있다”고 짚었다.

이들 단체는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작한 ‘반려동물 가족의 안전을 위한 재난 대피 가이드라인’에 ‘반려동물을 이동장에 넣고, 준비된 재난 키트를 챙깁니다. 대피소에 여유 공간이 있는지 확인한 후 출발합니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구체적인 동물 구호 및 대피소 제공이 없다”며 “동물들의 희생이 최소화되도록 법과 제도의 정비와 실행을 촉구한다”고 했다.

▲ 동물자유연대 등이 경북 의성에 마련한 반려동물 쉼터 (사진=동물자유연대)

‘루시의 친구들’은 구체적으로 국회에 ‘반려동물 동반 피난법’ 제정을 요구하며, 온라인 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권리 보장 ▲지자체 및 대피소에 동물 수용 가능한 시설·장비·인력 확보 의무화 ▲재난 대응 매뉴얼과 훈련에 반려동물 포함 ▲유실·유기 방지와 긴급 보호를 위한 공적 구조체계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는 재난 시 반려동물과 동반대피를 명시한 공식 지침을 즉각 수립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루시의 친구들은 “재난 속에서도 동물은 공동체의 일원이며, 이들의 생명을 함께 지켜내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의 의무”라며 “반려동물 동반 대피 제도, 재난대응 동물보호 매뉴얼 마련, 그리고 ‘반려동물 동반피난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