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폐지되나···공대위 꾸려져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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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5.4.10 20:18
계명대 사회학과 측에서 추가적인 설명을 해와 보충

35년 역사를 가진 계명대학교 여성학과가 폐지되고 사회학과에 흡수될 예정이다. 대학본부가 충원율 저조를 이유로 여성학과가 소속돼 있는 정책대학원 자체를 폐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내 세부전공으로 남게 됐다. 여성학과는 지난해부터 “일반대학원에 별도 여성학과를 개설해달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역 여성단체와 학생·연구자 중심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한강 이남 유일 여성학과를 사회학과에 흡수하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계명대학교 대학원 학칙에 따르면, 여성학과 대학원 과정의 역사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여성학대학원이 별도로 있어서 가족복지학과, 여성학과 등이 속해 있었다. 2007년에는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내에 여성학 박사 과정을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여성학대학원이 폐원되면서 여성학과 석사과정은 정책대학원으로 소속을 옮겼다.

15년이 흘러 올해 상반기에는 정책대학원마저 신입생 지원 감소로 폐원이 결정됐고, 여성학과는 폐과 위기에 놓였다. 이에 여성학과는 “일반대학원에 여성학과 석사과정을 개설해달라”고 대학본부에 요구했다. 지난 2월부터 3월 초까지 동문을 제외한 936명이 연서명에 참여했다.

하지만 지난 8일 대학본부는 일반대학원 개설이 불가하다는 공문을 여성학과에 보내왔다. 대신 사회학과 내 여성학을 세부전공으로 두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사회학과와 여성학과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사회학과는 2010년 여성학대학원이 폐지되면서 이미 그때 여성학 전공 석·박사 과정이 사회학과 세부전공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성학과는 일반대학원에 박사 과정만 있었고, 석사 과정은 정책대학원 여성학과에서 담당했다는 입장이다.

학과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인 ‘계명대 여성학과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준비위원회’는 10일 오후 카드뉴스를 통해 “사회학과는 지난해 10월 여성학과와 협의 없이 사회학과 대학원 홈페이지에 두 세부전공으로 사회학·여성학을 추가하고, 이후 여성학과 개설 논의 과정에선 기존에 존재했던 것처럼 주장했다”며 “지난해 10월 교수회의에서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여성학과 신설을 구두로 결정했으나 12월 일방적으로 번복했으며, 이달 9일에는 여성학과 박사과정 학생에게 문자로 ‘논문 심사위원장을 사회학과 교수로 교체하라’고 사전 논의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학과장은 “사회학과 내에 세부전공으로 여성학 석박사 과정이 있다. 다만 정책대학원 여성학과 학생수급을 위해 사회학과에 지원한 여성학 전공을 희망한 석사과정을 정책대학원 여성학과로 안내한 것이다. 하지만 정책대학원 여성학과가 모집중지되어 이런 협력을 지속할수 없게 된 것”이라며 “정책대학원을 유지해 달라고 학교와 싸워야 하는 문제인데 사회학과를 대상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여성학과가 유지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여성학과 재학생, 졸업생들은 ‘여성학과가 별도 분과로 존재하는 것’의 의미가 크다고 본다. 계명대 여성학 석사과정 중인 김민정(대구여성주의그룹 나쁜페미니스트 활동가) 씨는 “대구대 사회학과가 지난해 폐지될 때는 ‘그 학과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학과에 대하선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온다”며 “우리 사회엔 여전히 성차별과 사회정치적 소수자 배제의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성별, 젠더의 시선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논의하는 여성학과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사과정 중인 배현주 대구여성노동자회 정책국장도 “여성학을 배우며 지역을 기록하고 공부할 수 있는 학과가 가까이 있어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며 “여성학 안에도 세부적으로 배울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사회학과 세부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보니 사회학 과목을 듣지 않고선 졸업할 수 없다. 여성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긴 어려운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송경인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대구여성의전화 대표)는 “계명대 여성학과는 지역 여성운동에 큰 역할을 해왔다. 실제 대구는 전국에서도 여성운동이 탄탄한 지역”이라며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공부나 성장이 필요할 때 여성학과에 입학해 현장과 연결된 연구를 하며 활동의 동력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지방대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는 여성학과를 별도 학과로 개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학생들이 공부가 더 하고 싶어도 갈 수 있는 학교가 제한적이었다. 대학원생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여성학과는 계속 수요가 있던 상황”이라며 “대구경북에선 학생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고 공부를 지속할 수 있는 거점으로 계명대 여성학과가 존재했다. 여성단체 활동가 출신, 또는 활동을 하고 싶은 이들이 지역에 적합한 연구를 하고 네트워킹을 해왔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권 소장은 “젠더사회학과 여성학은 다르다. 서울대 사회학과에서도 젠더사회학을 하는 연구자들이 ‘여성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아 여성학 협동과정을 만들었다. 계명대의 결정은 이와 반대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학문에 열려 있지 않고 학과 이기주의에 빠져 있으면 오히려 신입생을 놓칠 수 있다. 그게 바로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다. 지방대학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여성학과를 별도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