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㉜ 안동에서 8년 만에 또 촛불 든 엄마, 딸 둘 크는 동안 사회는 진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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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정신영(41) 씨는 2016년 안동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을 들었다. 8년이 흘러 다시 윤석열 퇴진을 외치며 광장에 나왔다. 신영 씨는 두 집회 모두 딸 둘의 손을 잡고 나왔다. 딸들이 부쩍 크는 동안, 우리 사회는 진전된 걸까. 신영 씨는 고개를 젓는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불거진 사회 갈등은 우리 사회가 오히려 전보다 퇴행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민들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건강하고 올바른 교육을 받으며, 정치권력은 좀 더 발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문화를 키워나가야 했다.

하지만 당장 12.3 내란 사태 속에서 확인한 우리 세상은 서로를 증오, 혐오하고, 아이들의 교육 환경은 더욱 숨 막히게 변했으며, 정치권력은 양당이 대결로만 일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신영 씨는 퇴행적 사회 속에서 기대를 걸어볼 것은 여전히 정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후퇴해 온 기존의 대결적 양당제에서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다. 윤석열 파면 이후, 기성정당은 소수정당에 대한 제도적 장벽을 무너뜨리고 다당제를 실현하는 데에 나서 우리 사회의 협의의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결혼 후 정착한 안동, 정치적으로 답답한 도시

인천에서 태어난 신영 씨는 20대 중반 결혼 후 안동에 정착해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타지 사람으로서 느낀 안동은 ‘정치적으로 답답한 도시’였다.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투표 결과를 보면 특정 정당이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인지 살펴봤다. 지역에서는 대안적인 선택을 고민해 볼만한 다른 정당이 전혀 세력화되어 있지 않았다.

안동에서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 이외의 다른 정당 소속 정치인을 만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선거구제라 소수정당 당선 가능성이 높은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다른 정당 후보자조차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1

“20대에 안동에 처음 왔는데, 여기에서는 다른 정당은 왜 후보를 안 내는지 이해가 안 됐죠. 당이 있기는 있다는데 특별히 활동하는 사람은 안 보이고. 지역에서 다른 정당이 뭔가 정치를 해서 세력화한다는 분위기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7회 지방선거부터는 다른 정당에서도 여성 후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실제로 당선도 됐어요.

저는 허승규 녹색당 후보 선거를 도왔는데요. 더불어민주당 소속에서 기초의원 당선자가 나오니 변화도 느꼈죠. 느리지만 바뀌고는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수가 적어도 견제하는 세력이 있다는 건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당선인들이 여성이라서 내 일처럼 기쁘기도 했어요. 저는 이런 변화가 안동에서 시민사회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런 변화 때문에, 내가 여기에서 아이를 키우기에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겠다고 생각도 했어요.”

여성, 학생 뛰쳐나온 안동 집회
사회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양쪽으로 변화해

▲2016, 2017년 안동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석한 정신영 씨와 딸(사진=정신영)

‘아이들과 살기 좋은 지역’은 신영 씨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신영 씨는 결혼 전부터 하던 사회활동을 일부 단절하면서도 육아에 전념했고, 지역에서도 육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했다. 여유가 생기면서는 안동녹색당에 입당해 활동도 시작했다. 육아 커뮤니티에도 정치 이슈에 대해서는 다소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긴 했다. 하지만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는 그 육아 커뮤니티도 뒤집어졌다. 비상계엄 선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안동에서는 계엄 선포가 있던 그 주 주말(12월 7일)부터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단연 여성과 학생이 높은 비율로 채워나갔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유발언에도 나섰는데, 급기야 집회 사회를 신영 씨가 고정적으로 맡기에 이르렀다. 여성이 자유발언하고, 또 여성인 신영 씨에게 집회 사회를 제안한 것도 안동, 적어도 안동 시민사회의 변화라고 느껴졌다.

변화는 긍정적인 쪽으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듯 여겨졌고, 자녀들이 속한 교육 현장도 도둑을 체포하는 ‘경찰 놀이’와 같은 놀이가 유행한다든지, 또는 친구를 향해 ‘너 탄핵이야, 계엄 한다’라는 말도 유행처럼 떠돌고 있어 걱정됐다.

“아이들이 도둑 잡는 경찰 놀이를 유행으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경찰들이 진압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자주 보잖아요. 그런 영향이 있지 않나 싶고. 또 정치 이야기도 한쪽으로 많이 한다는데, 윤석열이 계엄을 어쩔 수 없이 했다느니 하는 말을 남학생들이 많이 한다더라고요. 교육 현장은 또 교사가 적극적으로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고요. 아이들은 윤석열 내란 때문에 역사 공부를 할 게 더 늘었다고 하는데, 저는 역사책에는 윤석열이 오랜 시간 갈등이 이어졌지만 결국엔 탄핵됐고, 또 법의 심판을 받아 처벌을 받았다고도 기록됐으면 좋겠어요.”

▲안동 시국대회에 참석한 정신영 씨. (사진=정신영)

파면 이후 한국사회 나아지려면
양당의 대결적 정치구조 바뀌어야

신영 씨는 윤석열 파면 이후 한국 사회와 지역 사회가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겹도록 이어진 양당의 대결적 정치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여긴다. 시민의 정치적 선택지가 다양해질 수 있도록 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양당의 정치나 정책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울며 겨자 먹기로 어느 한쪽을 찍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 말고, 소수정당의 문턱이 좀 더 낮춰져서 정당의 정책 활동이 우선시되도록 해야 답답한 정치도 나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토론이라는 걸 점점 배우지 못하고 있어요. 큰소리치거나, 민원을 넣거나 하는 식으로 귀결되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정치적인 이야기는 점점 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상대 의견이나 인격을 말살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토론할 수 있어야 해요. 대결적인 분위기가 조금 더 바뀌려면 이 정책은 어떻고, 저 정책은 어떻다고 쉽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건 여러 정당이 정책으로 활동하는 상황이 돼야 가능한 거죠. 조금씩 바뀌어서,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는 좀더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1. 안동에서는 국민의힘 계열이 아닌 정당의 후보자가 당선된 사례는 제5회 지방선거 비례대표로 친박연합 소속 후보자가 당선된 것이 최초다. 지역구 출마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으로 치러진 6개 선거구 69명이 대거 출마한 제4회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소속 후보 4명이 출마하긴 했으나, 그 이후부터 제6회 지방선거까지는 국민의힘 계열 후보 외에는 지역구 출마자 자체가 없었다. 소수정당 지역구 출마자는 제7회 지방선거에서 확인되는데, 이때 더불어민주당 1명, 바른미래당 1명이 당선됐으며, 녹색당 소속으로 출마한 허승규 후보가 1,395표(16.54%)를 득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