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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는 시민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윤석열 탄핵 심판이 지연되는 동안 대통령은 구속됐다가 풀려났고, 대통령실과 여당은 극단주의적 지지층과 거리를 두지 않고 오히려 자극하면서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극우적인 집단은 법원 폭동과 같은 사례에서 확인 했듯 사회 전면에서 가시화됐다.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일이 4일로 정해지면서, 이번 사태의 출구도 어렴풋이 보이고 있다. 출구를 통과하면 마주할 세상은 어떠할까.
<뉴스민>은 시민의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하고, 또 윤석열 파면 이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을 담기 위한 기록 모임 ‘윤석열 내란에 맞선 기록, 광장 해방일지’를 기획했다. 신청을 받아 뉴스민 광장통신원(시민 기록자) 7명을 모집했고, 이들의 이야기를 4월 2일부터 하루 1편씩 공개한다. 광장통신원으로 활동하진 못했지만 스스로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시민도 환영한다. 문의는 nahollow@newsmin.co.kr.
1) 김민지: 광장에 나온 우리,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다
2) 김아영: 나를 살게 한 ‘광장’
3) 권지현: 대구 광장에서 뿌린 씨앗, 과실은 모두의 것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며 들은 대구에 대한 이야기다. “곱창이랑 막창이 유명하지?” 맛집 이야기. “김광석이 대구에서 살았어?” 향수 어린 질문. “대프리카는 이제 사과는 없어지고 아스팔트에서 달걀 프라이 굽는다며?” 우스개. 하지만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화두가 입에 오르면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대구 사람들은 다 똑같이 보수적이야.” “대구가 대구했다.” 같은 말들이 툭툭 던져졌다. 술자리. 친한 친구도 “너희 지역은 왜 항상 그쪽만 지지하냐”며 무겁게 물었다. 사과가 단순히 ‘빨강’으로만 기억되듯, 대구도 ‘빨간 정치’라는 단색으로 압축되는 것 같아 답답했다.
2025년 2월 8일 열린 동대구역 탄핵 반대 집회는 그 단편의 정점이었다. 그날 이후 대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혐오로 가득 찼다. 한 SNS 게시글엔 “다음부턴 대구만 계엄 해야겠어요. 대구가 계엄을 이렇게 좋아할 줄은 미처 몰랐네요”라는 글이 조회수 100만 회를 넘겼고, 1만 회 이상 공유되었다. “대구는 정말 딴 나라다”, “대구 폐쇄해야 함”이라는 혐오 댓글로 가득했다.
지인의 SNS에 대구 여행 사진이 올라왔을 땐 “저런 곳 가서 뭐 하냐”는 댓글이 달렸다. 그 순간, 내가 사랑하는 대구의 풍경이 혐오의 언어에 짓밟히는 것 같았다. 그 단어들이 내 가족과 친구, 이 도시의 수많은 이야기를 지우는 듯해 아팠다. 모두가 단순한 ‘빨간 보수’로 묶여 폄하되던 모습이 허탈했다. 빨간 혐오의 렌즈를 쓰고서는 언제나 실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혐오의 렌즈를 벗어두고 대구를 바라보면 사뭇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2.3 윤석열 내란 초기부터 대구 동성로 광장에도 사람들이 모였다. “TK 똥강아지 연합”, “탄핵하러 귀환한 SSS급 용사모임”, “대구경북 딸래미 연합회”, “내 손에 있는 막대가 막대 같냐 죽창 같냐”.
시민들은 다양한 깃발로 자신이 광장에 나온 이유를 표현했다. “내란 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피켓을 든 청년 옆에 선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해고자는 “노동권 보장”을 외쳤다. 하늘에는 소수자 인권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한 남성이 조용히 연단에 올랐다. “저는 50년 넘게 대구에서 살았어요. 현실을 이렇게 만든 것이 우리 세대인 것 같습니다. 미안하고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지치지 맙시다”고 외쳤다. 서울의 거대한 집회만큼 대구의 광장이 크진 않았지만, 메시지는 명확했고 울림이 있다. 대구를 모르는 사람들은 “대구는 보수적이라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대구의 광장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빛깔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진짜 대구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집회를 나가면 양옆과 앞뒤로 앉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챙겨온 간식을 건네곤 한다. 짧은 감사 인사와 집회에 나온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시험 기간이라 못 나왔는데,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거 같아서 끝나고 나왔어요. 이 자리 지켜주신 분들에게 감사해서 저도 목소리를 내려고 나왔어요.”, “주위에서 이야기 나눌 수 없는 사람이 많고, 대구에 하나의 색깔만 있는 게 아닌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사처럼 서로 광장에 나온 이유를 말했다. 빨간 단색으로 덧칠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구는 너무 많은 얼굴을, 색깔을 지녔다. 대구를 손쉽게 매도하는 이들은 이 도시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목소리를 외면한다.
12.3 윤석열 내란 이후, 한 네티즌이 이렇게 썼다. “대구를 비난하면 뭐가 달라지나? 당신이 혐오하는 그곳에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 산다.” 정말로 대구의 변화를 바란다면, 더디더라도, 어떤 긍정적인 것도 이루지 못하는 혐오와 배제 말고, 대화와 공감으로 함께 걸어가야 한다. 혐오는 상대를 가릴 수 없다. 자신의 시야만 가릴 뿐이다. 하나의 현상을 불변하는 본질처럼 확대하는 것은 손쉬우나, 실체를 이해하는 길로부터는 점점 멀어진다. 대구에서 특정 정당이 우세한 배경에는 지난한 역사가 있다. 대안 정당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분투했지만 아직 지역에 뿌리내릴 만큼 지역민의 삶에 와닿지 못했다.

대구에서도 민주주의를 일구고 있어
대구의 변화를 원한다면 비난 말고 응원을
우리는 광장에서 이렇게 외쳤다. 윤석열 파면 이후 세상은 달라야 한다고.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혐오와 배제를 걷어내고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는 곳이어야 한다고. 이곳에 모인 우리는 앞으로 일상에서도 광장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 한다. 정말로 대구의 변화를 원한다면, 단색 렌즈로 손쉽게 재단하지 말고 우리를 응원해 달라.
대구에서도 아침마다 상인이 시장 문을 연다. 예술가는 창작에 몰두한다. 직장인은 출근하고, 또 서울에서 그러하듯, 또 다른 어느 광장에서 그러하듯, 대구의 광장에서도 시민들은 정의를 외친다. 그렇게 우리도 민주주의를 하루하루 만들어간다.
‘사과 도시’라 불리던 대구는 이제 다른 열매를 맺을 것이다. 광장의 외침이라는 새로운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그 열매를 수확하려면 낡은 편견과 혐오를 거름으로 묻어야 한다. 껍질이 붉다고 손가락질하는 그 편견도 거름으로 묻는 그날, 마침내 열매는 맺을 것이고 우리는 그 열매를 수확해 함께 나눠 먹을 것이다. 그날을 고대한다. 이곳 대구의 광장에서.
권지현 광장통신원
nahollow@newsmin.co.kr
